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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타기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9/01/10 [10:42]


  가까이 지내던 부부가 떨어져 살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어렵지 않은 사람 어디 있다고 조금 더 참지 싶었다. 결혼이란 상대방을 이해하는 극한점이다. 그만큼 상대에 몰입되어 보살피며 살아가야 한다. 오랜 시간 방심하면 시들어가는 게 부부애다. 결혼 생활이 힘들다지만 부부가 손을 맞잡고 걸으면 꽃길뿐 아니라 가시밭길도 즐겁다. 요즘 결혼윤리가 퇴색해저 헤어지기를 다반사로 여기니 문제다. 도덕적 의무가 강조되던 효가 엷어져 가는 지금 세태엔 부부의 정이 제일이다. 모두 사정들이 있지만 초심을 잃지 말고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며 살 일이다.
 
 즐겁게 두 시간 수업이 끝나면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시골집'으로 무리지어 간다. 아늑한 내실에 들어가 노파의 정성이 깃든 밥상을 앞에 두고 마주 앉으면 가슴이 훈훈해진다. 혼밥이나 단출하게 식사하다가 어울리면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식사하면 마치 시골 잔치집에서 식사하던 그 옛날 생각이 난다. 
 
 오늘도 G는 동부인해 다정스럽게 자리한다. 바늘과 실 같다. 어쩌면 저리도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필까? 부럽다. 요즘 보기 드문 아내바라기다. 그래서 질투어린 시선으로 좀 떨어져 다니라면 빙긋이 웃는다. 식사를 마치고 먼저 일어서며 ‘마누라 심부름 때문에!’ 란 핑계를 대니, 그때가 좋은 줄 알라며 K교수가 거든다. 어서 가서 말 잘 듣고 눈치밥 먹지 말라는 잔소리가 등을 떠민다. 괜히 쑥스럽다. 
 
 모임에 다녀오며 ‘저녁이나 합시다.’고 K를 이끄니 손사래를 친다. 오늘 저녁은 아내와 집에서 식사하기로 한 날이라며 미안해했다. 성격이 남달라서 결혼 후 지금껏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외식을 하지 않았다니 알만하다. 음식 만들기를 좋아해서 집에 온 손님이나 자녀들에게도 직접 음식을 장만해서 대접하기를 좋아한단다. 그러기에 가능하면 집에서 같이 식사하자고 조른다고 한다. 음식점 음식은 입에 맞지 않고 청결감이 떨어져서 싫다니 존중해 줄 수밖에 없어 불편하다며 푸념을 한다. 그래서 퇴직 후 아내의 외고집에 따르기로 하니 집안이 조용해 졌다며 고개를 숙인다. 벌써 국내산 삼베를 구해서 수의壽衣 일체를 준비해서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다니, 요즘 보기 드문 남편바라기다.
 
 친구 M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을 끌며 식사 시간에 맞추려 할 때가 많다. 어느 날 하소연 비슷하게 아침도 못 먹고 나왔다고 한다. 왜 쌀이 떨어 졌나 돈이 없냐고 핀잔을 주면 겸연쩍게 웃고 만다. 요즈음은 아침에 음식 파는 집이 드물어 고구마나 달걀에 우유 한 잔을 마신다며 K를 부러워도 한다. 곡절을 알고 보니 처가 젊어서부터 지금껏 뒷바라지 했으니, 이제부터는 각자 자기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결하자고 해서 따르기로 하니, 오히려 편하더란다. 그래서 한때 졸혼 생각도 했으나 자식들 체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답답하다며 한숨이다. 어느 땐가는  나에게 부러움을 주던 부부인데!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은 황혼이혼을 당하는데 무슨 배부른 흥정이냐며 그렁저렁 살라며 위로해 주었다.
 
 옛날 고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60년 가까이 지난 촌부의 실화다. 당시 그는 한량으로 소문난 멋쟁이였다. 산림관리소에 촉탁囑託으로 다녔는데 그 위력이 대단해 이웃들이 벗하기를 어려워 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땔감이 부족하거나 집안에서 사용할 나무를 구하려면 그분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어여쁜 색시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 부인은 식사 때마다 밥상을 잘 차려 첩에게 올리고 세숫물도 떠다 바치니 3일 만에 줄행랑을 치더란다. 이런 소식을 들으신 어머니는 그 여자 머리가 좋다며 칭찬하셨다. 당시엔 흉이 될 일도 아니지만 지금 생각하면 뉴스거리다. 그 부인은 얼마 전 90을 넘기고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느 전업주부는 사별한 망부 생각에 해가는 줄 몰랐다. 글을 쓰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그 생각뿐이었다. 못 잊어하는 그 마음 오죽하랴. 고운 정 가시고 미운 정 가꾸려는 순간 곁을 떠났으니 몹시 안타깝고 그리울 것이다. 왜, 함께 지낸 나날들이 모두 행복한 날만 있었을까? 떠나고 홀로되니 아옹다옹 살던 그 시절 그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리라. 지나고 나면 모두 그립고 애절한 법이다. 그래도 쓴맛 단맛 다 본 구관이 명관이다. 있을 때 잘할 일이다. 과부가 홀아비 심정을 아는 법이라 하지 않던가? /곽창선
 
 모두가 나름대로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살아가는 방법은 다르나 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과 느낌이 다를 뿐이다. 지나온 삶은 미운 정 고운 정 쌓여 미쁨을 얻었다. 인내 속에서 행복도 자란다. 크산티페도 여자요 성모 마리아도 여자다. 크산티페 때문에 오늘 날 소크라테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서로를 위로하며 살 일이다. 삶은 내 사정 네 사정의 묘미를 서로 달래며 즐기는 외줄타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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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10 [10:42]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