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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촌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9/02/12 [09:36]

 가까운 곳에 예술촌이 있어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봄 내음이 풍성한 푸성귀도 사 올 겸 아내와 같이 나섰다. 삼례에 도착해보니 역 주변 오래된 통운 창고였다. 일제강점기 삼례평야에서 벼를 도정한 쌀을 보관했다가 화물열차로 군산항으로 수탈해간 생각을 하니 제복을 입은 일본 순사들이 얄미웠다.
  예술촌에 도착해보니 허름한 창고를 개조하여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니 아이디어가 빛났다. 평일이라 관람객이 없어서 인지 창구에 안내 도우미가 없어 두리번거리니 한쪽에 65세 이상은 무료입장이라 쓰여 있어 어린이와 동반한 부모들과 20여 명이 관람을 시작했다.
  첫 번째 디자인 박물관에 들러보니 봄 직한 전자제품들이 진열해 있었으며 모든 안내는 영어로 되어있어 눈으로만 확인하였다. 한가지 돋보인 것은 자전거를 간단히 조립해서 들고 다닐 수 있고 쉽게 펼 수도 있는 아이디어 제품과 각종 의자 제품들이었다.
  두 번째 김상림 목공소에는 오래전에 썼던 공구들과 각양각색의 나무들 수입 목도 많았다. 옛날 큰 나무를 켤 때 썼던 줄톱을 비롯해 가짓수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여러 가지 쓸모 있게 만들어 놓은 가구들도 많았다. 끌을 유심히 살펴보니 순수국산은 전체 쇠붙이만으로 만들어져 망치로 내려칠 때 손 울림이 클 것 같았다. 일본제품은 망치가 닿을 곳에 나무를 잇대서 손 울림이 줄어들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아트미술관에 들르니 티브이만 돌아가고 지킬 사람도 안내할 사람도 없었다. 빈총 맞은 사람처럼 한 바퀴 돌아보고 그냥 나왔다.
  네 번째 문화카페 부스에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없어 그냥 돌아 나왔다.
  마지막으로 책 박물관과 헌책 파는 곳을 들렀다. 6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들이 진열되었는데 내용은 같으나 표지들이 달랐다. 인쇄소가 다른지 아니면 회사가 다른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진열된 책들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월간지, 주간지 책들이 있었다는 것에 놀랐고 농촌 벽지에서 살다 보니 읽을거리가 없었던 점 너무 아쉬웠다. 이곳을 주마간산으로 끝냈다.
  다음은 인근에 막사발 세계축제장에 갔었다. 이곳도 안내자가 없어 그냥 돌아보았다. 세계축제라 그런지 이웃 나라 중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 미국, 터키 말레시아, 호주,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태국, 인도, 이집트, 러시아, 캐나다 등 많은 나라에서 출품했는지 사 왔는지 모르겠으나 각양각색의 진열품이 2만점이 넘게 진열되어 감명 깊게 보았다.
 
 막사발은 막 사기로도 불리며 우리 선조들이 밥그릇, 국그릇, 막걸리 사발 등 생활 그릇으로 쓰이던 것이다. 막사발은 주로 서민과 머슴들에게 쓰였던 그릇으로 대접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벽면은 곧게 솟아 올라있고 아가리는 넓게 바지라 진 형태를 보인다. 살이 두껍고 겉면이 부드럽지 않으며 까칠한 것이 특징이다. 우리 땅에서 채취된 황토로 빚어낸 막사발은 밝은색의 장식이 없는 자연스러움이 담긴 사치스럽지 않은 그릇이다.
 막사발은 그릇에 금이 가면 있는 그대로 놓아두고, 옆이 터지면 그것도 그대로 놓아둔다. 밑으로 유약이 흐르면 그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릇 모양만 인위적으로 만들고 그다음부터는 자연에 맡겨놓는다. 한국 미학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가능한 대로 인위적인 손길을 줄이는 데에 있었다. 이 그릇들에서도 그런 정신을 느꼈으며 그런가 하면 모습은 당당하였다. 자연과 인공의 솜씨를 절묘하게 배합한 작품이 바로 이 막사발인 듯하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약탈해가고, 이후 교역을 통해 가져간 막사발의 가치를 높이평가하여 국보와 문화재로 지정하고 수 만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나고야 여행시 전시회를 관람했었는데 한점에 50만 엔에 팔리는 막사발도 보았다. 우리나라의 것을 본받아 발전시킨 결과라고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에 삼례오일장에 들렀다. 현대식으로 개량하느라 공사를 하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지만 머위, 상추, 미나리, 딸기 등이 가게마다 진열되어 있었다.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면서 푸성귀를 사기로 했다. 안쪽으로 돌아가니 어물점, 정육점, 철물점이 고향 오일장과 흡사했다. 옥수수를 삶아 파는 곳에서 2개를 사 먹으며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향수에 젖어 보았다. 
  
정병남 (전 철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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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12 [09:36]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