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섬 대만(臺灣)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9/03/08 [09:23]

진주 섬 대만(臺灣)

새만금일보 | 입력 : 2019/03/08 [09:23]

중국본토와 백두산을 다녀 온 것은 벌써 20여 년 전의 팔팔 했던 50대 이었다. 몇 번이나 벼르던 대만을 공자가 별세한 같은 나이에 건강이 따라줘 여행을 하게 되어 다행한 일이다.

대만 면적은 36,700km2 인구2300만 명, 연중 260일 흐리고 비가 내려 고온 다습한 나라로 3모작까지 쌀농사가 가능한 오끼나와 태평양과 이어진 포르투칼인이 처음 상륙해 포르모사(Formosa)즉 진주 같은 아름다운 섬이라 극찬했다 한다. 대만의 원주민은 말레이계 아미족으로 1540년대에 세운 과족군집왕국(跨族群集王國)으로 모든 족속의 대표로 대두번왕(大肚番王)을 선출했다. 이 부족연맹의 국가는 청나라 옹정제까지 이어가다가 1732년에 끝이 난다. 타이완 섬에 진출한 네덜란드와 스페인 간 세력다툼으로 네덜란드인들은 1642년에 스페인 상인을 타이완 밖으로 몰아내고 식민지화 하여 중국, 일본과 동남아 등지에서 무역우세를 점하고, 타이완을 거점으로 화란의 동인도회사가 동아시아 전역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거점 확보지로 38년간 통치를 한다. 1662년 청군에게 쫓기던 정성공(鄭成功1624-1662)이 타이완에 상륙해 네덜란드 인들을 몰아낸다. 1644년 청에 멸망한 명나라 황제의 유신(遺臣)들은 반청복명(反淸復明)으로 청나라에 대한 저항을 계속한 정성공은 그 지도자 중 하나다. 그의 아버지 정지룡은 타이완 해협 해적의 우두머리로 일본과의 교역 중 일본의 *다가와 시치자에몬의 딸과 혼인하여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이 정성공이다. 정성공은 청나라 군대와 9개 월 간의 싸움 끝에 타이완으로 쫓기게 되는데 1662년 2월 1일 네덜란드 세력에게 항복을 받아내어 타이완 섬 최초로 한족 정권을 세워 청나라와 대항하는 거점지로 삼아 명경(明京)으로 동도(東都)라 칭하고, 펑후 제도를 포함한 타이완의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자기 휘하의 군사들과 함께 타이완으로 온 푸젠 성 주민들을 정착하도록 하였다. 그는 이를 기반으로 명나라 본토를 수복하고 필리핀을 정복하여 스페인 사람을 퇴치하려는 야심까지 가졌다. 1662년 6월에 정성공이 급사하자, 그의 아들 정경(鄭頸1642-1681)이 뒤를 이어 1664년에 동도를 동녕이라고 개명하여 동녕왕이 된다. 정성공의 반청 유지를 받들어 특히 삼번의 난에 적극 동조하여 한때 푸젠성의 일부 지역을 공격하여 장악하기도 했다. 그 후 정성공의 손자 대에 내부분열로, 청 정부는 뇌물로 붕괴시켰는데, 정성공으로부터 시작한 정씨 왕국은 3대(代)에 이은 21년 만인 1683년에 청나라에 먹히고 만다. 정씨왕국의 통치 시기 당시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정씨 정권과 상업협정을 맺으려 했는데, 당시 영국인들은 동녕왕국을 타이완 정씨왕국(台灣鄭氏王國) 또는 명경왕국(明京王國)이라 불렀으며, 청국이 대만을 251년 간 지배를 했다. 민비시해를 했던 을미사변 그해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만을 51년간 식민지로 삼는다. 성씨개명과 일본어 상용을 강요한 반세기 동안 왜색문화에 길들여진 대만은 조선과는 대조적으로 반일보다 친일에 순응한 지금도 왜색이 짙다. 만주족이 그러했듯 대만인들은 독립운동 자체를 모르는 외세에게 굴종만하는 민족이다. 1949년 12월에 국공내전으로 장개석은 모택동 공산당에 쫓겨 타이완으로 왔는데, 세계4대 박물관인 고궁박물관은 697,000점을 장개석이 본토에서 가져다가 전시한 술잔 하나에 380억 원 가는 진귀한 보물급들이 즐비하다. 박물관 입구에는 장개석의 손윗동서 손문(孫文)총통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또 한 70m의 중정기념관에는 아들 장경국이 장개석(中正1887-1975)을 기념하기 위한 25톤의 장개석 동상이 안치되어 있다. 대만은 우리나라처럼 동고서저로 3000m 고산이 수 십 개나 있으며 태로각 협곡은 직각에 가까운 산모퉁이를 장개석군은 퇴로 167km를 순 인력으로 4년 만에 뚫어낸 도로 밑 협곡이 장관이다. 본토에서 패전한 부정부패 원인을 뼈저리게 느낀 장개석은 부정을 저지른 며느리를 자결케 하는 철권  통치를 하였다. 1996년 3월 23일 직접총통선출로 타이완은 국민당 일당독재 시대를 마감하고 2000년 민주 진보당의 *천수이볜 정권이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 장개석은 1919년 상해임시정부 김구 주석을 불러 안중근,윤봉길의사의 거사는 자기네100만 대군활약보다 큰 성과라며 상해임시정부를 도와 1937년 난징대학살 만행을 저지른 일제와 맞서 싸웠다. 1992년 중국과 수교를 맺자 한국은 의리가 없다며 단교를 선언한 대북 거리에는 한국 자동차 한 대를 볼 수가 없고 일본차와 독일의 벤츠,아우디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대만은 중앙아메리카,남태평양, 일본 등 섬나라 17개국에서 벗어나 이제 점차로 수교 국가를 확대하고 있다. 2016년에 민주 진보당의 *차이잉원 여성 최초의 총통이 되어 ‘대만을 밝혀라’라는 구호로 대만독립을 원하고 있는가 하면, 5성기를 흔들며 중국본토와 합하자는 데모대를 101층 타워 광장에서 심심찮게 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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