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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라면과 언론 오보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9/03/13 [19:27]



1989년 삼양라면 우지파동이 있었다. 1989년 11월 삼양식품이 공업용 우지(牛脂-소기름)로 면을 튀겼다는 익명의 투서가 검찰에 날아들면서 조사가 시작된다. 삼양라면이 20년간 써온 2등급 소고기 우지가 노태우 정권 시절 `공업용 우지'로 보건사회부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것이다.

이 익명의 투서라는 것은 조작일 가능성이 높다. 그 뒤 오랜 세월이 지나서 이 사건의 내막이 밝혀졌다. 당시 삼양식품이 수입해 사용하던 2~3등급 우지는 몸에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 식용기름이었다. 문제의 공업용 우지는 미국 고급 식당이나 가정,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용하는 2등급 고가 우지였다. 결국 공업용이라는 단어가 문제였다.

삼양이 수입한 우지(소기름)의 원산지인 미국에서는 우지를 비식용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이를 공업용으로 표기한다. 미국에서는 먹지 않기 때문에 공업용이라고 쓴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를 먹고 있으니 식용이라고 표기를 하는 게 맞는 것이다.

공업용 우지라는 말은 미국식 표현이다. 한국에서는 식용 우지가 맞다. 사건 당시 80년대 후반은 각종 유해물질과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과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다. 라면에 공업용 기름을 썼다는 말에 국민들은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삼양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러나 언론사들은 이것을 마치 폐기물로 쓰는 쓰레기 오일로 보도했다. 결국 라면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던 삼양 라면은 이 사건 직후 5퍼센트까지 매출이 감소했다. 80년대 당시 4000여억원의 손실을 입게 되었다. 직원 80퍼센트가 실직했다.

160만 박스의 라면을 폐기처분하였다. 결국 라면 시장은 롯데 농심에게 전부 내주었다. 마가린과 쇼트닝 회사마저 롯데에게 내주게 된다. 그로부터 5년 후 식용 우지가 고급 기름이고 미국 가정에서도 쓰이기 때문에 무해하다는 법원 판결이 났다.

삼양라면은 이미 식물인간이 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기사조차 언론에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우지파동 때는 앞 다투어 1면에 선정성 기사를 내걸었다. 그러나 무혐의가 드러나자 꼭 보도할 의무는 없다며 외면한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삼양라면 하면 떠오르는 게 공업용 우지다.

당시 문제가 된 우지는 2등급 우지였다. 미국 우지 분류 등급은 12단계였다. 1등급 우지는 단독 식용도 가능한 등급이고, 2등급 우지는 가공용이다. 쇼트닝, 마가린 등에 2등급 우지가 들어갔다. 그 당시에는 일본을 포함해 농심을 제외한 국내 모든 라면 회사가 우지를 사용했다.

식용이 아닌 공업용이라고 표기했던 것은 미국에서 수입해 올 때 공업용으로 등록하면 식품으로 등록할 때보다 수입절차가 간단하기 때문이다. 세금도 혜택을 본다.

그러나 검찰은“삼양식품공업이 식품 원료로 사용할 수 없는 공업용 쇠기름을 각종 라면을 튀기는 데 사용했다. 공업용 우지는 제조 과정에서 각종 불순물이 섞이거나 도살장에서 나오는 부산물 등을 첨가한다.”며 마치 먹어서는 안 되는 식품으로 매도를 해 버렸다.

이어 공업용 우지를 썼다는 대대적인 언론 보도가 잇따르며 삼양은 엄청난 이미지 타격을 입게 된다. 검찰은 삼양식품 등 5개사 대표 10명을 구속하고 100억 원 가량의 라면 재고가 수거되었다. 3개월의 영업정지 및 수천억 원의 벌칙금을 부과 받게 된다.

이후 삼양식품은 8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1997년 검찰이 밝혔던 모든 혐의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게 된다. 1963년 국내 최초로 라면을 내놓았던 삼양식품이 사용한 우지는 농심이 사용한 팜유와 포화지방 비율이 별 차이가 없다.

인체에도 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미 소비자의 신뢰는 무너졌고 최초의 라면회사 삼양라면의 명성은 잃어버리고 만다. 우지파동 당시 검찰 총장은 김기춘씨였다. 그는 2016년 9월 농심의 비상근 법률고문으로 옮겨 월 1000만 원 정도의 보수를 받았다.

비난이 있자 자진 사임했고, 농심은 김기춘과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언론이다. 검찰이 써준 그대로 공업용 우지는 나쁘다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도했다. 세월이 지난 후 국민들을 기만했던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멀쩡한 기업만 무너졌다. 이후 쓰레기 만두 파동도 있었다.

‘쓰레기’라는 표현을 쓰면서 당시 만두 제조업체 상당수가 도산하고 말았다. 진짜 쓰레기는 언론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삼양라면 우지 파동은 기레기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1960년대 중반 한국보다 더 배고픈 나라는 없었다. 1967년 당시 창업주 전중윤 사장은 남대문 시장을 걷다가 꿀꿀이 죽이라도 얻어먹으려고 기다리던 가난한 어린이들을 보았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다. 결국 잘 나가던 제일생명을 팔고 그 돈으로 일본에 구걸하여 기술을 이전받아 만든 유일한 양심적 먹거리 기업이다. 전중윤 사장은 일본의 `묘조라면' 사장을 직접 찾아갔다. 궁핍한 한국의 식생활을 호소하며 기술 이전을 부탁했다.

수개월에 걸친 호소에 결국 감동한 `묘조라면' 사장은 노하우 전부를 이전해주었다. 삼양식품은 묘조라면의 기술을 이전받아 라면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한국인들에게 가장 부족했던 단백질 보충을 위해 소고기를 원료로 한 스프로 국물을 만들었다.

일본에서 쓰던 식물성 저가 팜유가 아닌 값비싼 소 우지로 면을 튀겼다. 당시 식물성 팜유를 쓰던 일본조차 원가 상승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이 우지는 미국 패스트푸드점이나 식당에서 사용하던 고급 기름이다.

라면 시장이 커지자 조선일보, 동방유량, 롯데(농심), 럭키(엘지)가 라면사업에 뛰어들었다. 빙그레, 야쿠르트, 오뚜기까지 라면 사업에 뒤늦게 합류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까지 `청보식품'이라는 라면 회사를 만들었다. 화학조미료인 MSG를 사용하면서 매운맛, 짠맛, 단맛을 내는 라면도 등장했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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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13 [19:27]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