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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론(征韓論)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9/09/05 [17:11]

 

 

일본이 한국을 정복하자는 것이 바로 정한론이다. 원래는 정조론(征朝論) 이라 했는데 일본 조정을 손상하는 말이라 하여 정한론으로 바꿨다고 한다. 에도막부시대 후기부터 한반도를 지배하자는 설이 있었는데, 26세 때 정한론을 편 야심가 청년 요시다 쇼인(1830-1859)을 가장 존경한다는 아베 일가는 그의 부친과 2차 대전의 1급 전범자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등의 피를 이어받은 아베를 일본 대다수의 국민들은 추종과 더불어 지금도 조선식민지시대의 향수에 젖어있다. 본격적으로 정한론이 대두된 것은, 메이지 유신시대(1868-1912)를 전후로 하여 대륙진출이라는 미명으로 전쟁론이 시작되었는데, 거슬러 올라가 보면 1592년 임진왜란 때 풍신수길은 조선의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내세워 명나라를 정복하여 천자가 되겠다는 야망이 후대까지 이어온 섬나라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시발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초기의 정한론에 반대하던 이들 또한 근대화가 일정 부분 진행된 이후에는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진행하였다. 초기의 정한론은 일본의 부국강병론을 주창한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등장하게 된다. 그 당시 조선정부는 국제 정보가 캄캄하여 일본사신의 접견을 거부하는 등 국교 교섭에 난항이 거듭되자 이를 계기로 일본 내에서 정한론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1870(메이지 3-고종 7)에는 사다 하쿠보(佐田白茅)가 조선을 방문한 후 강경하고도 구체적인 정한론의 건백서(建白書)를 제출하는 등 정한론이 유력하게 대두되었다.

1872년에는 외무대신 하나부사 요시모토가 군함을 이끌고 부산에 도착했지만, 조선 측은 일본의 사신이 군함을 이끌고 온 것에 대해 문제를 삼았는데 수개월간 체류하였다. 한편 조선 정부는 부산 등지에서 성행하는 일본 상인들의 밀무역을 방지하기 위한 전령서를 내렸는데 이것이 일본 정부를 자극하였다. 특히 사이고 다카모리는 무력 침공을 주장하고 스스로 책임을 맡겠다고 자원하였다.18738월에 메이지 정부는 사이고 다카모리 등을 사절로 파견하기로 결정했지만, 같은 해 9월에 귀국한 이와쿠라 사절단의 오쿠보 도시미치, 이와쿠라 도모미, 기도 다카요시 등이 내치에 충실해야 한다며 시기상조를 이유로 이를 반대하자,  정한론을 주장하던 극렬한 대신들이 하야하였으며(메이지 6년 정변), 이때 하야한 사이고 다카모리와 사쓰마 번 무사들이 사족 반란을 일으키며 1874년의 사가의 난부터 1877년의 세이난 전쟁까지의 반정부 운동을 이끌었다가 신정부군의 우세에 의해 참패로 사이고가 패전 도중에 야마가타 아리토모(과거 사이고 부하, 당시 신정부군)의 칼에 베이고 자결하였다. 1880년대의 정한론은 자유주의자들에게서 등장했다. 1880년 이후 후쿠자와 유키치 등 일본의 자유주의자들은 군국주의자들에 반대, 조선의 개혁을 일본이 적극 지원하자는 견해를 펼쳤으나 갑신정변 실패 이후 조선의 멸망을 바란다는 시각으로 변모하였다.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정변 관련자와 그 일가족에 대한 연좌제, 혹형 등을 시행하면서 후쿠자와 유키치 등은 크게 분노하여 조선의 멸망을 기원하였다. 이후 정한론은 다시 대두되었으며,1880년부터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을 방문하는 조선인 청년에게 부국강병론과 신분 제도와 문벌 특권층의 타파 등을 역설하였다. 그는 박규수에게도 지지를 줄 만큼 개혁파 김옥균, 서재필, 윤치호, 유길준 등의 청년들이 조선을 개혁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였다. 그러나 조선정부는 개혁의지는 커녕 더욱 수구적인 왕권강화에 박차를 가하였으며 탐관오리와 부정부패로 나라가 망하는 것을 구하려던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났는데 고종은 청국을 끌어들여 동학군을 진압 하려다가 일본군이 들어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손안에 넣게 된다. 1905년 을사늑약 시 일본의 가쓰라와 미국의 태프트 조약은 일본이 조선을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자는 비밀협약이 이뤄진다. 정한론을 주창한 요시다 쇼인의 수제자 이등박문이 조선통감부를 세워 조선을 삼키고 말았다. 1909년 조선을 삼킨 이등박문을 안중근의사가 저격 피살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여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계의 만방에 알리게 된다. 그로부터 36년 간 일제의 만행은 수없는 조선독립군을 처단하고 조선의 말과 글, 문화까지 말살하고 쌀 수탈은 물론 연간 금을 20-30톤씩 도적질해갔다. 2차 대전 시 조선학도병을 성전(聖戰)에 나가라고 한 이름 하여 민족지도자란 자들은 변절하여 친일파로 둔갑한 그 후손들이 지금도 기득권 행세를 하고 있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은 한국전쟁 6.25로 다시 일어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 아베의 경제전쟁 선포는 잔인하기 그지없다. 과거 일제침략수탈 만행과 같은 한국을 다시금 경제속국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35세의 일본 중의원 마루야마 호다카는 ‘독도를 전쟁으로 뺏어 와야 한다’고 아베의 심중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선진국문턱에 서서 일본과 당당히 맞장을 떠볼만하다. 이웃 나라와 서로 돕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반성과 신뢰가 없는 일본과는 더 이상 상종할 수가 없게 됐다. 경제자립을 위해 홀로서기를 하겠다고 선언한 문재인정부에 온 국민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 힘! 힘을 키우소서!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겼다는 도산 안창호선생의 유언 같은 선열들의 말씀을 지상명령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눔을 실천한*테레사 수녀는 지구상에 기아지대가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아프리카며 또 하나는 일본이다. 아프리카는 물질적인 기아고 일본은 정신적인 기아의 나라다. 라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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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05 [17:11]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