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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김성수일가의 비화(秘話)(15)
일장기 말소사건(2)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9/09/20 [09:37]

 

,만 국경을 사이에 두고 한 쪽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겠다고 목숨을 건 독립투쟁을 했는가 하면, 다른 쪽은 일제에 빌붙어 독립군 가슴에 총탄을 쏘아댄 같은 동족으로써 매국적인 행위자들은 일제 36년이 진행되어 영영 조선의 독립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8.15라는 감격적인 해방을 맞은 우리민족은 매국노와 친일파를 척결해야 하는 고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아일보사의 일장기 말소 사건을 아전인수로 왜곡하고 과장하여 선전해온 일도 이러한 맥락으로 보면 민족 앞에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적인 행위였다.

동아일보는 제호(題號)만 가려놓고 보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每日新報)와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친일 매국언론으로 치닫고 있을 때였다. 오늘 날의 조,,동이라는  언론사의 기득권자들은 이권에 눈이 어두워 힘 있는 정부와 검찰의 시녀노릇을 한 타성은 일제 때와 별반 다름없다 하겠다. 독일의 독제 자 히틀러는 천하를 호령하려던 게르만민족의 우세 성을 과시하기 위해 1936년에 역사상 유례없는 베를린올림픽을 계획했던 것이다. 일본은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였는데 조선인 마라톤 선수 손기정과 남승룡을 출전시켜 1위와 3위를 하였다. 30여 개 국이 참가한 가운데 시상대에 오른 이들의 가슴에는 일장기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어 나라 잃은 슬픔을 더해 주었다. 손기정의 가슴에 일장기를 지운 최초의 신문은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로 발행인은 패기만만한 우국지사 여운형(運亨)이었다. 민족을 배신한 총독부의 앞잡이로 활약한 박희도, 최린 등의 방종한 사생활을 과감하게 폭로 규탄하여 시들어가는 민족정기를 세워준 신문이었다. 그 당시 조선중앙일보는 요미우리신문이 보내 준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워 보도한 체육부 유해붕 기자인데 동아일보가 먼저 일장기말살을 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동아일보는 그 뒤에 11일이 지나 조선중앙일보를 모방하여 게재한 동아일보의 체육부 기자 이길용은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로 배일감정이 강한 것으로 일려진 인물이다. 일장기 말소작업에 동참한 사람은 석간 편집책임자 장용서,미술부의 이상용, 체육부의 이길용 기자 등 3인으로 이길용이 단독으로 실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장기말소로 동아일보가 경찰에 입건되어 조사가 시작되자 조선중앙일보는 간부회의 결정으로 폐간을 면키 위해 유해붕 기자를 자수를 시켜 구속 수사를 받았는데 운영난 등으로 영영 폐간이 되고 말았다. 또한 동아일보는 이길용 기자 등 관계자 10여명이 경기도 경찰부로 연행되어 문초를 받았는데 잡혀간 지 33일 만에 모두 재판 없이 풀려났다. 동아일보가 후일 이 사건을 거사적인 항일투쟁이라고 주장하나 사주 김성수나 사장 송진우는 이길용 기자의 사전 행동을 알았다면 반드시 제동을 걸었을 것으로 본다. 일장기말소사건에 관한 김성수의 회고 편‘인촌 김성수전(P388)’에는 <이 사실을 전화로 연락받은 인촌은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낀다. 점점 험악해지는 시국을 계산해 넣지 않는다 해도 무기정간이 내릴 것은 틀림  없었다. 2,3차 무기정간 처분의 이유가 되었던 외국인의 메시지나 축사의 비()가 아니었다>중략... 급히 동아일보사로 오는 자동차 속에서 인촌은 히노마루(일장기) 말소는 몰지각한 소행이라고 노여움과 개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리는데서 오는 순간의 쾌()와 동아일보가 정간되거나 영영 문을 닫게 되는데서 나는 실을 생각하여 그 답은 분명했다.(중략)  민족의 정기가 위축되어만 가고 변절하는 유명무명의 군상이 늘어가는 세태로 볼 때 히노마루 말소는 잠자려는 민족의식을 흔들어놓은 경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다소 가라앉는 것 같았다.>... 요즘 한국에 대한 경제침략과 도쿄올림픽을 앞두고서 각종메달이나 제2차 세계대전시 일본제국주의를 표방한 욱일승천기를 도안하고 내세우는 것은 기회만 되면 또다시 정한론(征韓論)에 의한 대륙침략의 망상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친일파들은 천황폐하 만세를 매일같이 외쳐대고 징병, 학병을 성전에 나가라고 대대적으로 동아일보 일면에 실어 총독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온갖 교태를 부리면서라도 동아일보는 살아남아야 하고 그것이 민족운동의 길이라고 굳게 믿은 것이 인촌 김성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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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20 [09:37]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