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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호남정맥, 천황지맥의 남원 금지 광무봉廣武峰(142.0m)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사대수가 주둔했던 천혜의 군사요충지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9/11/28 [16:53]

  

▲ 광무봉서 본 천황지맥 능선     © 새만금일보

   

  광무봉은 명나라 장수 사대수査大受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영사정에 지휘본부를 설치한 뒤 장소가 좁아 군사를 나누어 주둔시켰던 곳이다. 안상현(69세, 사제공 문중) 회장은 “광무봉은 순흥 안 씨 족보와 비문 등에 등장하는 선산으로 1593년 명나라 장수 사대수가 영사정에 지휘본부를 두고 광무봉과 성안산성봉에 군사를 주둔시켰던 곳이다.”고 고증했다.

 

▲ 내기마을 앞에서 본 광무산,앞쪽 작은산     © 새만금일보



 <<용성지>>에는 “영사정은 금안방(현 금지면)에 있다. 죽암처사 안전安?이 선영을 바라보기 위해 세운 것이다. 중국의 사신 주지번朱之藩의 글씨로 편액하였다. 명나라 왜총병倭總兵 사대수를 비롯한 판서 안위安瑋, 김인후 등이 영사정에 대해 시 한 수를 지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경남 장군의 <<난중잡록>>에도 “명나라 장수 사대수가 1593년 7월 6일 남원에 왔다.” 는 기록이 있다.


  <<영천서원 창건 400주년>>과 순흥 안 씨 문중에서 한국학중안연구소에 의뢰해서 연구한 <영사정 팔경도>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제7경인 폐성낙조廢城殘照 그림의 상단은 영사정을 묘사하였고, 하단의 남원 금지면 성안마을 북쪽에 있던 성안산성으로 추정된다. 산성 위에서 내려다보면 금지면의 넓은 벌판과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와 방어 상 중요한 입지조건을 갖추었다. 성벽은 200m 내외의 산정상과 능선을 따라 축조하였다. 성안산성은 임진왜란 때 사대수가 영사정을 구축할 때 명나라 군사를 주둔시키던 성터로 추정된다.

 

▲ 상귀리정류소서 본 광무봉     © 새만금일보


 하지만 안상현 회장은 “<영사정 팔경도>의 제7경인 폐성낙조에 그려진 지형을 18개월 동안 면밀하게 답사해 본 결과 상단의 그림은 영사정이 맞지만, 하단의 그림은 영사정의 남쪽에 위치한 성안산성이 아니라, 영사정과 대기마을의 북쪽에 위치한 광무봉이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영사정 팔경도> 중 제7경인 폐성낙조의 옛 성터 위치를 잘못 판단한 나머지 교룡산성으로 발표했다가 안상현 회장이 지적하자 성안산성으로 고쳤으나 이마저도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순흥 안 씨 문중에서 펴낸 <<영천서원 창건 400주년>>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의뢰해서 발표한 연구 논문인 <<영사정팔경도永思亭八景圖의 문학적 함의와 회화적 특징>>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약 70명이 명군을 이끌고 조선의 원군으로 들어왔다. 그 중 부총병 사대수는 기병과 보병 3천을 이끌고 선조가 머문 행군을 호위하며 의주에 오래 머물렀다. 그 뒤 제독 이여송이 조선으로 오자 그의 표하에 예속되어 교양 벽제 전투 때 미륵원 앞 들판에서 선봉에서 왜적 1백여 급을 베었다.

▲영사정서 본 금지들녘 ©새만금일보

 

  1593년 수천의 왜적이 경상도 악양의 촌락을 불태우고 약탈 후 곡창지대인 전라도에서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 함양으로 향하였다. 이에 명장 부총병의 선봉으로 사대수査大受가 수천 명의 명군을 남원까지 인솔하였다. 그리고 1593년 7월 6일 영사정에 진을 쳤으며 그 해 10월 이여송 제독을 따라 명나라로 귀국하였다. 명군이 남원에 진을 치게 된 계기는 영남과 호남의 관문이자 남북으로 연결하는 십자로의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사대수가 남원에 머문 것은 불과 3개월 정도로 영사정에 진을 쳤을 때 소회를 담은 시가 남아 있다.
 
  1769년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우리전통지리서인 <<산경표>>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로 고찰해 본 광무봉의 산줄기와 물줄기는 이렇다.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의 팔공산에서 서쪽으로 갈려나온 산줄기가 마령치를 지나 백운산(갈미봉)에거 천황지맥을 이루며 개동산, 상서산, 상사바위, 만행산 천황봉, 연화산, 왕묘산, 왕묘산 남봉, 노적봉, 풍악산, 응봉(매봉), 십자산, 비홍산성봉, 문덕봉, 고정봉, 송내봉, 그럭재, 두바리봉, 삿갓봉, 문덕봉, 고리봉, 천장군묘봉을 지나 401.4봉에서 동남쪽으로 갈려나온 광무봉을 일으킨다. 광무봉의 물줄기는 섬진강에 합류하여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금지면 택내리 내기마을이다.

  지리적으로 광무봉 북쪽은 두류봉과 매화봉, 동쪽은 금지들녘과 섬진강, 암쪽은 섬진강 너머로 청계계곡을 품은 동악산, 서북쪽은 천황지맥의 천장군묘봉과 고리봉이 에워싸고 있다.
 
  <<한국 지명 총람>>과 <<남원의 마을 유래>>로 살펴본 광무봉 주변문화와 인문지리는 이렇다. 내기마을은 남원부 금안방에 속했던 마을로 약 500년(1,521) 전 순흥 안 씨가 정착 한 후 안 씨의 터라하여 안터로 불렀다. 그 뒤 다른 성 씨들이 이주해 오자 안터와 뜻이 같은 안 내內, 터 기基를 쓰는 내기마을로 개칭하였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택촌과 내기마을을 병합하여 택내리가 되었다. 1972년 다시 택촌과 내기로 분리되었다.

  
<문화유적과 명소>


 [영사정永思亭]
  영사정은 남원시 금지면 택내리 내기마을 야산에 있는 누정으로 <기묘제현 수필>과 기묘제현 수첩>의 주인공인 안처순을 기리는 곳이다. 또한 안전安?이 선영을 향해 망배하기 위해 세운 정자다. 영사정은 1553년 건립하였으며 1590년 중수하였다. 영사정의 이름은 하서 김인후가 짓고, 편액과 주련의 글씨는 명나라 주지번이 썼다고 한다. 하지만 주지번은 영사정에 오지 않았고 글을 받았다는 게 학계의 주장이다. 영사정은 순흥 안 씨 가문의 효의 상징이자 조선 중기 호남사림의 교유장소였다. 명나라 장수 사대수의 시가 있다. 


[영사정 팔경도]
 전체 8폭 중 1폭과 8폭이 누락되어 6폭만 남아 있다. <<영사정 팔경도>>의 일부 화제가 양대박이 지은 <<영사정 팔영>>의 시제와 일치해 <<영사정팔경도>>라 명명되었다.
 <제1경> 창송냉월蒼松冷月 : 푸른 솔에 걸린 쓸쓸한 달빛
 <제2경> 수죽청풍脩竹淸風 : 대숲에 이는 맑은 바람
 <제3경> 순강모우?江暮雨 : 순자강에 내리는 저녁 비
 <제4경> 방장청운方丈晴雲 : 방장산에 피는 청운
 <제5경> 야도고주野渡孤舟 : 나루터의 외로운 배
 <제6경> 단안쌍루斷岸雙樓 : 단안의 쌍루
 <제7경> 폐성잔조廢城殘照 : 황폐한 성터의 낙조
 <제8경> 장교효설長橋曉雪 : 장교에 내리는 새벽 눈발

 

▲ 광무봉 정상     © 새만금일보

 

<산행안내>
o 1코스: 택내리 내기마을-3번 도로-임도-광무봉-임도-3번 도로-내기마을(2.0km, 1시간)

 

<교통안내>
o 완주순천고속도로 서남원 IC-730번 도로-상귀교(북쪽)-3번 도로-택내리-내기마을
o 광주대구고속도로-남원분기점(JC)-서남원IC-730번 도로-상귀교-3번 도로-택내리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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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8 [16:53]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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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 김정길, 수필가, 숲 해설가, 전통지리연구가 주요약력-전북산악연맹 부회장/숲사랑운동 서부연합단체 대표/모악산지킴이 회장/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회장/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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