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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숨겨진 그림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9/11/29 [08:33]

 

 

예술의 나라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그림전시관은 가히 세계적이다. 정복 왕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이라지만 세계 각국의 예술품을 훔쳐다가 전시한 것이 상당수다.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1377)인 고려 때의 직지심경(直旨心經)1866년 프랑스가 수교 때 가져가 돌아올 줄 모르는 우리의 보물도 그 한 예이다.

나는 레오나르드 다빈치 작 *모나리자 진품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그 여인의 미소를 직접 볼 수 있는 행운에 잠시나마 행복감에 도취한 적이 있다. 현대 20세기의 그림의 거장 피카소의 그림은 모나리자와는 정 반대로 한 시대를 반영하는 거칠고 사실적인 입체파 그림이다. 파리를 뒤흔든 스캔들의 주인공 피카소(Pable Ruiz Picasso1881-1973)는 스페인 말라기 출생이다. 1907년 파리에 정착한 가난한 예술가 피카소는 몇 달 간 매달린 충격의 문제작 ‘아비뇽의 처녀들’이란 여인들의 나체그림을 공개했는데, 거장 *마티스를 비롯한 예술계의 외면을 받았을 뿐이다. 피카소의 화풍을 지지한 단 한 사람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입체파를 창시하고 점차 돈과 명성을 얻게 되지만 첫사랑 *페르낭드 여인과의 사이가 삐걱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피카소의 절친한 친구 *기욤 아폴리네르가 모나리자 도난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파리 전체가 발칵 뒤집힌다. 피카소는 92세란 장수를 누리면서 일곱 여인과 열애를 할 만큼 새로운 것에 호기심과 도전정신으로 창작을 한 열정적인 화가였다. 피카소는 불과 15세의 나이에 ‘첫 영성체’란 작품은 피카소의 천재성을 알 수 있는 그림이다. 피카소는 말을 시작하기 전에 그림을 먼저 그렸다고 할 정도로 그의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피카소의 부친 역시 화가였으며 그의 천재성을 일찍이 눈여겨본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예술의 도시인 바르셀로나로 이사를 갔으며 왕립 아카데미에 보내 그림을 배우게 했다. 하지만 틀에 박힌 학교 수업을 싫어했고 피카소는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 미술계의 혁명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피카소가 그림을 그리던 시기인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유럽은 산업화로 인한 급격한 변화와 *칼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아 모더니즘 운동이 전개되었다. 1934년 모국인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투우를 소재로 그렸고, 1936년 스페인 내전 때 인민전선을 지지하고 다음 해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에 대한 적의와 증오를 시와 판화로 나타낸 <프랑코의 꿈과 허언>과 나치 독일에게 무차별 폭격으로 황폐화된 게르니카의 참상을 그린 세기의 대벽화 <게르니카>를 완성하였다. 1937년 작품인 ‘우는 여인’은 현재 영국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 소장돼 있는데, 우는 여인을 그릴 당시 피카소는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도라 마르  라는 여인을 만난다. 도라 마르는 유고슬라비아 출신으로 갈색 머리에, 약간 어둡고, 온화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피카소는 도라 마르와 동거할 때, 세상의 비극을 본격적으로 화폭에 담기 시작했는데, 그의 첫 번째 작품이 *우는 여인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스페인 공화국 정부가 내전을 통해 프랑코 파시스트에 패하면서 민주주의가 꽃을 제대로 피지 못한 시기로 이에 피카소는 시대의 비극성을 이 작품에 담아 낸 것이다. 피카소는 1904년부터 젊은 여인과 연애를 하면서 그림의 색조가 청색에서 장밋빛 시대로 색상이 밝아진다. 이 무렵 파리에서 인정받는 화가가 되었고, 1907년 그의 대표작인 <아비뇽의 처녀들>은 아프리카 흑인 조각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는 형태 분석이 비로소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피카소의 대항마로 불린 20세기 프랑스의 거장 *베르나르 뷔페는 스무 살의 나이에 프랑스 최고 권위의 비평가상을 받았으며 그의 작품 ‘닭을 들고 있는 여인’은 당시 피카소에게도 영감을 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1928년에 태어난 뷔페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참혹하고 열악했던 상황을 작품에 담았다. 피카소의 전. 전기기사가 피카소의 그림 271점을 집 차고에 40여 년 간 보관한 *피에르 루게넥에게 리옹법원은 장물 보관 혐의로 이들 부부에게 집행 유예 금고 2년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루게넥은 2010AFP통신과 인터뷰에서 “어느 날 저녁 일을 마쳤을 때 피카소의 부인이 선물로 작은 꾸러미를 건넸는데 그 속에는 스케치와 연필 소묘가 들었으나 그 가치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피카소 작업실을 정리하다가 그에게 가져가라고 건네 준 한 낱 쓰레기봉투 속에 숨겨진 피카소의 그림이 세상에 빛을 봐 진귀한 보물이 될 줄이야...피카소는 1973년 사망할 때까지 이 집에서 작품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블로 피카소는 20세기 현대 미술의 족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데, 지금도 그의 작품은 초고가로 경매되는 미술품의 목록에는 피카소의 이름이 늘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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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9 [08:33]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