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연비지맥 남원 아영 왕령봉王嶺峰(왕재봉 624.0m)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0/08/13 [15:09]

백두대간, 연비지맥 남원 아영 왕령봉王嶺峰(왕재봉 624.0m)

새만금일보 | 입력 : 2020/08/13 [15:09]

▲ 두락리 뒤에서 본 왕령봉.  © 새만금일보


 <개요와 자연경관>
  임금을 상징하는 왕령봉(왕재봉)을 품은 아영면 두락리는 가야의 기문국의 도읍지가 있었으며 한때는 신라의 땅이었다고 한다. 군산대학교 곽장근 교수와 마을 주민들의 고증에 의하면, “두락리는 서울을 의미하며, 1500년 전 가야 기문국의 도읍(서울)이 있었던 곳으로, 왕령봉은 왕이 넘었던 왕령이란 고개 옆에 있는 산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문화재청에 의하면, 가야와 백제 고분 축조 특징을 지닌 ‘남원 두락리와 유곡리 고분군’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42호로 2018년 10월 26일 지정했다고 한다. 이 고분은 백두대간 삼계봉에서 뻗어온 연비지맥의 연비산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을 따라 성내마을 북쪽에 있는 40여 기의 왕릉급 고분 고총이다.

 

▲ 두락리 앞에서 본 왕령봉, 두류봉.  © 새만금일보


  두락리(세종시 거주) 출신 한상근(72세) 씨와 유명희 씨의 고증에 의하면, 왕재봉은 한자명으로 왕령봉王嶺峰으로 쓰는데, 주변에 왕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고 한다. 예컨대 왕령봉의 주봉을 왕으로 설정하고 마을을 서울의 지명인 서울(별 두斗), 서울落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또한 주변의 지명 또한 왕과 연관되었다. 예컨대 성주聖主골, 오룡동五龍洞, 각전各殿, 선덕宣德골, 사신使臣골 등 임금과 서울을 상징한다는 것은 가야의 기문국 도읍지였음을 암시한다. 또한 왕령봉은 두락리의 주산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며, 왕령봉 아래에는 왕이 넘었던 왕령이란 고개가 있다.

 

▲ 두락 앞에서 본 왕령, 두류. 배골산  © 새만금일보


  <<한국 지명 총람>>에는 두류봉頭流峰은 두락리 동쪽에 있는 산이고, 두루봉(두두봉)은 큰 두류봉 북쪽에 있는 산, 큰 두류봉은 두류봉의 큰 산, 작은 두류봉은 작은 산으로 표기되었을 뿐 왕령봉이나 왕재봉에 대한 기록은 없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전라북도 전도>, <남원시 행정지도> 등에는 왕령봉이나 왕재봉이 등재되지 않았다. <<한국 지명 총람>>, <<남원의 마을유래>>, <<남원지>> 등에도 왕령봉의 기록이 없다.

 

▲ 두락 앞에서 본 연비산.  © 새만금일보

 

 <산경山經과 수경水經>
1769년경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우리 전통 지리서인 《산경표》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로 고찰해본 왕령봉의 산줄기와 물줄기는 이렇다.
백두산을 출발한 백두대간이 무주의 덕유산, 장수의 남덕유산,  육십령을 지나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금남호남정맥을 나뉘고 백운산, 월경산을 지나 남원의 삼계봉에 닿는다. 삼계봉에서 동남쪽으로 가지 친 연비지맥은 806.1봉, 옥잠봉, 비조봉, 왕령봉을 일으킨다. 왕령봉에서 연비지맥은  두류봉, 배골산, 연비산, 오봉산, 팔랑치, 투구봉, 삼봉산으로 뻗어간다.
왕령봉의 물줄기는 남쪽은 풍천이 람천과 임천에 합류하여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으로 흘러든다. 북쪽은 위천이 낙동강의 지류인 경호강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아영면 두락리, 경남 함양군 백전면 오천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 두락 앞에서 본 왕령봉, 두류봉.  © 새만금일보

 

<지리적 위치>
지리적으로 왕령봉의 북쪽은 비조봉 너머로 백운산과 덕유산 연봉이 용틀임한다. 동쪽은 경남 함양군의 천련봉과 함양읍이 다가온다. 남쪽은 연비지맥의 연비산과 오봉산 너머로 지리산 연봉이 하늘금을 그린다. 서쪽은 백두대간 아막성산 너머로 천황지맥의 만행산 천황봉이 다가온다.

 

▲ 두락리 왕령봉 앞에서 남원산사 답사단.  © 새만금일보

 

<인문지리와 주변문화>
<<한국 지명 총람>>, <<남원의 마을유래>> 등으로 살펴본 왕령봉의 주변문화와 인문지리는 이렇다.
이영면 두락리는 본래 운봉의 북하면지역으로 두래기, 두락斗落이라 했는데 1914년 일제강점가에 행정구역 통폐합 때 월성리와 의지리, 이동의 일부가 병합되어 두락리라 하고 남원군 아영면 편입되었다. 1995년 남원시 . 군이 통합되면서 남원시 아영면 두락리가 되었다. 두락斗落마을 대체로 신라시대에 경주 김 씨 20여 호가 마을을 형성하여 살다가 모두 괴질로 죽고 한동안 폐촌이 되었다. 그 후 고려 중엽(1200년경) 전주 이  씨가 들어와 살다가 경주 이 씨와 기타 성씨가 다시 정착하여 마을이 번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성내마을 고분 발굴현장.  © 새만금일보


아영면 일대가 다 그러하듯이 이곳도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와의 국경지대로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때마다 젊은 남자들은 싸움터에 끌려갔다. 여자들만 농사를 지으니 연속 흉년이 들어 하늘에 기도하여 고사를 지내자 그해부터 풍년들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마을 이름을 콩과 팥을 의미하는 두豆와 물을 의미하는 락洛을 써서 두락豆洛이라 지었다.
그 후 다시 흉년이 들어 뒷산에 있는 이화사梨花寺의 부처님께 빌었다고 한다. 기도가 효험이 있었는지 도사가 강림하여 마을 앞에 향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우물을 파고 마을 이름을 말 두斗로 고쳐서 두락斗洛이라 부르면 재앙이 없어진다고 했다. 도사의 계시대로 따랐더니 풍년이 들어 마을이 번창해져서 두락斗洛이 되었다. 일설에는 논이 많아 두래기 또는 두락이라고 한다.

 

<문화유적과 명소>
[두락리 고분]
아영면 두락리 가야의 고분군은 1989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총 34기의 대형 고총 고분 중 5기에 대한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된 고분은 구덩식 돌덧널무덤 4기와 굴식 돌방무덤 1기다. 이 고분군은 종래에 백제 고분군으로 알려졌으나 발굴 조사를 통해 가야계 고총 고분군으로 새롭게 밝혀졌다. 고분군 중에는 봉토 규모가 직경 30m 이상 되는 대형 고분이 있으나 대부분 개간된 밭에 위치하여 원형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1호분과 2호분은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는 상태다.

<산행안내>
o 1코스 : 복성이재-봉화산-삼계봉-옥잠봉-비조봉-광주대구고속도로(11.9km, 5시간)

<교통안내>
o 광주대구고속도로 동남원 나들목-산동면 태펑리(19번 국도)-번암(751번 도로)-철쭉단지 주차장-역적재-복성이재-아영면 성리-구상리
o 익산대구고속도로 장수 나들목(19번 국도)-장수읍-번암(751번 도로)

 

 
   <아영면 두락리와 유곡리 32호 고분군, 출처 문화재청>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김정길의 호남명산 순례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