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笑門) 만복래(萬福來)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0/09/04 [05:36]

소문(笑門) 만복래(萬福來)

새만금일보 | 입력 : 2020/09/04 [05:36]

 

 

옛말에 웃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했던가. 슬픔이 왔는데도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 그 뜻의

의미는 아래의 고독이란 시 한 편을 통하여 이해를 할 수가 있다.

*고독(孤獨)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하리라. 울어라 너 혼자 울리라.

슬프고 오래된 이 세상은 즐거움을 빌려야 할 뿐,고통은 자신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노래하라 산들이 화답하리라. 한숨지으라. 그러면 허공에 사라지리라.

메아리는 즐거운 소리를 되울리지만 근심의 목소리는 움츠러든다.

환희에 넘쳐라 사람들이 너를 찾으리라. 비통해 하라 그들이 너를 떠나리라.

사람들은 너의 기쁨을 남김없이 원하지만 너의 비애는 필요하지 않는다.

기뻐하라 그러면  친구들로 넘쳐나리라. 슬퍼하라 그러면 친구들을 모두 잃으리라.

너의 달콤한 포도주는 아무도 거절하지 않지만 인생의 쓰디쓴 잔은 너 혼자 마셔야 한다.

잔치를 열라 너의 집은 사람들로 넘쳐나리라. 굶어라 그러면 세상은 너를 지나치리라.

성공하고 베풀면 너의 삶에 도움이 되지만, 너의 죽음을 도와줄 사람은 없다.

환희의 전당은 넓어서 길고 화려한 행렬을 들일 수 있지만, 좁은 고통의 통로를 지날 때는 우리 모두 한 사람씩 줄서서 지나가야 한다.>  -엘라 휠러 윌콕스

                                               

위의 시는 미국의 *엘라 휠러 윌콕스(1850-1919)라는 처녀농부의 시다. 그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그래서 시를 썼다. 시란? 일상생활과 인생과정을 적나나()하게 표현하는 마치 연극배우처럼 허상을 진실처럼 연출 해 내는 기법이다. 그래서 중세기에서는 궁중예술인들은 귀족과 왕을 즐겁게 하기위한 광대노릇을 하였다. 시와 글에서 실재 행동으로 보여주는 무대를 꾸며 놓고서 시연을 하는 연극이 점차적으로 발전하여 호화로운 거대한 극장과 경연장을 꾸며 놓고서 귀족과 왕들은 즐겼다. 그것이 요즘의 서양의 오페라며, 우리나라에서는 광대들이 꾸민 마당극과 창으로 발전해 국악이라는 독특한 민속예술을 도출해 낸 것이다. 조물주가 사람을 빚었는데 각자 한 가지씩 달란트(재능)를 부여 했다고 한다. 고급예술을 꿈꾼 밥벌이 광대들이 민중의 호응을 얻게 되자 새로운 것을 창안해내려고 애를 쓰면서 대중들의 인기와 함께 예술가란 대우와 칭호도 높아만 갔다.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는 주지사의 취임식에 초청을 받아 기차를 타고서 가는데 앞자리에 앉은 검은 상복을 입은 한 여인의 슬픈 통곡에 목적지를 가는 내내 위로를 하였으나 울음은 끝이 없었다. 목적지에 내려 시인은 자기얼굴을 거울에 비쳐보았다. 조금 전의 통곡한 그 여인의 모습 그대로 자기의 얼굴에 슬픔과 고통스런 표정이 그대로 복사판처럼 나타나 보였다. 그 순간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되리라’는 시가 번쩍 떠오른 것이다.  *윌콕스는 영적 세계에 관심을 가진 시인으로써 윤회를 믿었다. 그의 시 <보상>에서 이렇게 읊었다. <운명은 나를 비천하게 사용했다. 그러나 나는 운명을 향해 웃었다. 내가 얼마나 쓴잔을 들이켜야 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어느 날 기쁨이 찾아와 내 곁에 앉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왜 웃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왔다>

또 하나의 그녀의 시<가치 있는 사람>를 소개 하련다. <삶이 노래처럼 흘러갈 때 즐거워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가치 있는 사람은 모든 일이 잘못 흘러갈 때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 인간은 늘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라 회자정리(會者定離)란 말처럼 만나면 반드시 슬픈 이별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생길을 흔히들 고해(苦海)라고 부른다. 상대의 고통의 아픔이 아무리 클지라도 내 고뿔보다 못하다는 말처럼 끝내는 고통과 슬픔, 기쁨마저도 혼자 감당해야만 한다. 타인의 위로가 잠시 힘을 줄 수는 있어도 대신 지고 갈 수는 없기 때문에 슬픔과 고통을 함께 지고 가자는 위로의 말도 거짓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기쁨의 파티에는 모여들지만 눈물과 슬픔의 장소에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고독’ 이란 위의 시는 1883년 그녀가 30세에 발표한 것으로 평이한 단어를 구사한 그녀의 시를 비평가들은 평가절하 했지만 대중에게는 인기가 높았다. 시인은 가고 없지만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애송되는 시로써 한국에서는 영화 <올드 보이>에서 시의 앞부분을 인용하였다. 우리민족은 한이 많은 민족으로 희극보다 비극을 좋아한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고 슬퍼도 낙천적인 밝은 웃음과 긍정과 희망을 노래하는 이에게 행운과 행복이 뒤따른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인생은 그렇게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니라는데, 단 한번 밖에 주어진 자기인생을 고통과 슬픔의 눈물만 흘리며 징징거리며 살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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