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연비지맥의 남원 백장봉百丈峰(867.0m)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0/11/05 [15:45]

백두대간 연비지맥의 남원 백장봉百丈峰(867.0m)

새만금일보 | 입력 : 2020/11/05 [15:45]

▲ 백장봉 능선의 형제바위.     ©

 
<개요와 자연경관>
 백장百丈은 ‘평상심이 도이며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한 8세기경 활동했던 마조도일 선사의 제자인 백장 선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백장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라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백장 청규를 만들고 실천하였다.
백장암은 실상사 소속의 암자이며 백장선원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에서 가장 먼저 문파를 이루어 한국 선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곳이다. 백장봉은 산악인들이 백장암에서 따 온 이름이다. 백장봉 봉우리가 아닌 전망이 좋은 능선의 소나무에 수청산 백장봉水淸山 百丈峰의 표지판이 걸려있다. 인터넷에 백장봉은 검색되지만 수청산은 검색이 안된다.

 

▲ 백장암 위에 있는 새바위.     ©

 
 <<신운성지>>에는 수청산은 인월면과 산내면의 경계에 있으며 서룡산의 서쪽 줄기로 백장암의 주봉이 된다는 기록이 보인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백장암의 주봉은 백장봉(867.0m)이고, 수청산은 백장봉의 서쪽의 삼각점이 있는 768.8m 봉우리가 옳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전라북도 전도>, <남원시 행정지도>, <<한국 지명총람>>, <<남원의 마을유래>>, <<남원지>> 등에는 백장봉에 대한 기록이 없다.     

 

▲ 백장암.     ©

 

  <산경山經과 수경水經>   
  1769년 여암 신경준이 편찬한 <<산경표>>의 우리전통지리서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 등으로 살펴본 백장봉의 산줄기와 물줄기는 이렇다.
 백두산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이 무주의 덕유산, 장수 남덕유산, 영취산, 백운산을 지나 봉화남원의 백두대간 시장점인 삼계봉에 닿는다. 삼계봉에서 동남쪽으로 갈려나온 연비지맥은 삼계봉, 옥잠봉, 비조봉, 왕령봉, 두류봉, 배골산, 진양치, 연비산, 오봉산, 팔량치를 지나 투구봉에 닿는다. 투구봉에서 연비지맥은 동쪽의 삼봉산으로 뻗어 간다. 투구봉에서 서쪽으로 나뉜 서룡분맥은 서룡산을 지나 백장봉을 이르키고 수청산으로  뻗어간다.
 백장봉의 물줄기는 북쪽은 위천을 통하여 낙동강의 지류인 경호강으로 흘러가고, 남쪽은 광천과 만수천이 임천을 통하여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전북 남원시 인월면 상우리, 산내면 대정리와 경계를 이룬다.

 

▲ 백장암과 수청산 갈림길 이정표.     ©

 

 <지리적 위치>
 지리적으로 백장봉의 북쪽은 오봉산의 다섯 봉우리, 동쪽은 서룡산과 투구봉 너머로 삼봉산이 우뚝 서 있다. 동남쪽은 백운산과 금대산 너머로 지리산 능선이 용틀임한다. 남쪽은 삼정봉과 영원봉, 남서쪽은 덕두봉과 바래봉, 서쪽은 황산 너머로 고남산이 손짓한다.

 

▲ 백장암서 본 백장봉.     ©

 

 <주변문화와 인문지리>
<<남원의 마을유래>>, <<한국지명총람>> 등으로 살펴본 백장봉의 주변문화와 인문지리는 이렇다.
 본래 운봉현 산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 때 유평리· 대전리· 묘동·매계리· 중기리를 병합하여 대정리라 하고, 남원군 산내면에 편입했다. 1995년 1월 남원시·남원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가 되었다. 중기마을, 대정마을, 매동리마을의 3개 행정리가 있으며, 산내면사무소가 있다. 대정리가 처음으로 형성되었던 솔고개에 큰 샘이 있어 ‘큰 샘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큰샘몰’이라 하였다. 솔고개는 고개에 소나무가 많이 있어서 솔고개라고 하였다.
  중기마을은 사방이 병풍을 둘러놓은 것처럼 높은 산으로 포위되어 있다. 가운데 중中 자와 터 기基를 쓴다. 또 마을 터가 중앙의 길지라 해서 중기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 백장봉서 본 덕두봉·바래봉.     ©

 
  매동리는 매계리와 묘동리를 병합하여 취한 이름이다. 마을 앞에 고양이 모양의 바위가 있어 괭이골이라 해서, 고양이 묘猫를 써서 묘동猫洞이라 했다. 그 뒤 묘동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마을의 위치가 명당이라 하여 무덤 묘墓를 쓰는 묘동墓洞으로 불렀다.
 매계리는 1870년경부터 땅 모양이 매화꽃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두 마을이 병합되면서 마을 이름을 매동梅洞으로 바꿨다.
 중기리는 1600년 경 남원 양씨 양정원이 함양에서 임진왜란을 피해 지리산으로 가다가 정착하였다. 그 후 상중기에 몇 집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여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되어 있다.
지리산의 초입 부분으로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과 접경을 이루며, 뱀사골계곡과 백무동계곡의 갈림길인 산악 지대이다. 사방이 지리산의 줄기로 둘러싸여 삼봉산·백운산·삼정산·덕두산·바래봉이 위치하며, 마을 서쪽으로 람천이 흘러 산내면 장항리와 경계를 이룬다.
     

▲ 산내서 본 백장봉 능선.     ©


<문화유적과 명소>
[실상사 백장암]
백장암은 실상사 소속의 암자다. 백장선원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에서 가장 먼저 문파를 이루어 한국 선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곳이다. 백장百丈은 ‘평상심이 도이며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한 8세기경 활동했던 마조도일 선사의 제자인 백장 선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실상사의 부속 사찰로 원수사와 장계사, 그리고 백장사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세 사찰이 실상사의 말사였음을 알 수 있다.

 

▲ 수청산 백장봉 표지판.     ©

 
 백장암의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원래 명칭은 백장사였다고 한다. 1679년(숙종 5)에 화재를 당하자, 대중들은 백장사에서 10년간 두 번이나 화재가 일어났고, 장소도 협소하므로 화재로 소실된 실상사 터에 몇 칸의 작은 건물을 지어 백장암百丈庵이라 하였다.
 1868년(고종 5) 10월에 세 번째 화재를 당하여 이듬해에 운월 대사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1901년에 네 번째 화재로 남호 대사가 중건하였다. 백장암에는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삼층석탑, 보물 제40호인 백장암 석등, 보물 제420호인 청동은입사향로 등이 있다. 

 

▲ 실리봉 묘소서 본 백장암·수청산.     ©

 

<산행안내>
 o 1코스 : 백장공원(한밭, 60번 도로)-(1.0)백장암-백장암갈림길-수청산(백장봉)-서룡산-투구봉-(3.1)투구봉 삼거리(북쪽)-(1.3)팔량치(5.4km, 2시간 40분)
 o 2코스 : 백장공원(한밭, 60번 도로)-백장암--백장봉)-백장암 갈림길-서룡산-투구봉-감투봉-상봉-(2.75)삼봉산(서쪽)-큰까끔-(3.0)등구재-(1.5)상황마을(11.4km, 5시간 30분)
<교통안내>
o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나들목-인월-24번 국도-팔량치
o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린산 나들목-인월-60번 도로-하우-한밭(백장공원)-백장암
o 순천완주고속도로 오수나들목-남원(17번도로)-운봉(24번도로)-인월(60번 도로)-하우(인월농공단지)-한밭(백장공원)-백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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