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시 한 줄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3/08/02 [09:28]

백석의 시 한 줄

새만금일보 | 입력 : 2023/08/02 [09:28]

 

 

백석(白石)의 본명은 백기행(白驥行1912.7.1-1996.1.7)으로 평북 정주 갈산면 익성동에서 태어나 일본 야호야마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한동안 함흥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시 요정에서 진향(眞香김영한1916-1999)이란 기생을 만나 첫눈에 반해 사랑에 푹 빠지게 된다그 당시 요정의 기생과 결혼은 이뤄 질 수가 없었다백석은 양가집 규수와 혼인은 했으나 진향에게 사랑의 눈이 멀어 흰 눈이 푹푹 내리는 아무도 없는 둘만의 이상향만주 벌판 설국으로 가 한 백년 같이 살자고 제의를 한다그러나 나타샤(진향)는 백석의 앞날을 위해 함흥에서 서울로 떠난다백석은 나타샤와의 기쁜 재회를 하여 애모한 시 한편을 선물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산골로가 마가리에 살자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는 아니 올리 없다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 응앙 울을 것이다.>

요즘의 지루한 장마와 찌는 듯한 3복 더위를 잠시나마 식혀주는 북쪽의 시원한 눈 나라를 상상해본다나타샤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작 ‘전쟁과 평화’의 여주인공의 이름이다평북 정주의 동향 시인 김소월은 민요가락의 토속적인 민족시인 이라면백석은 서구적인 러시아 문학에 심취한 그 당시에는 이름 없는 시인으로 천재시인 윤동주만이 그의 시를 알아봤다일제식민지가 끝나고 해방을 맞았다그리고 6.25가 발발하여 백석은 북에 남아 김일성대학 교수가 되었고나타샤 와는 남북분단으로 영영 생이별을 하게 된다그러나 나타샤는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백석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고 백석과 만날 날을 오매불망 기다렸다일제식민지 시절은 물론 해방된 서울에는 이름난 요정들이 있었다삼청각청운각대원각이라는 3대 요정으로 그 중에서도 ‘대원각’은 백석의 애인 나타샤(김영한)가 경영하는 경치 좋기로 유명한 삼각산 자락에 있는 요정으로 내로라하는 유명인사와 한량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다오직 백석만을 사랑했던 나타샤는 ‘무소유’를 읽고서 감동해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헌납을 제의한다그러나 법정스님은 거절을 하고서 10년 후에 마음이 변하지 않거든 그 때 다시 만나자고 하였다. 10년이 지난 후 나타샤는 법정스님께 대원각을 봉헌하게 되는데 법정스님은 나타샤에게 길상화(吉祥華)라는 보살명을 지어주었고 대원각은 길상사(吉祥寺)로 바뀌게 된다어느 기자가 그 당시 1000억대에 상당하는 대원각 전부를 바친 것에 미련이 없느냐는 말에 김영한은 ‘그이의 시 한 줄보다 못한 것이다.’ 라고 말한 그이는 백석을 말하며 일평생 백석만 사모한 나타샤의 절절한 사랑의 결정체를 순애보(殉愛譜)에 수놓았다기생시절 김영한은 어느 독립운동가의 주선으로 일본 유학까지 한 현대 여성으로써 백석의 시에 나오는 나타샤는 본인이라면서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첫눈이 하얗게 내린 길상사 후원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그의 말대로 백석이 북에서 죽은 지 3년 후 1999년에 입적그의 유해는 하얀 눈밭에 뿌려져 이생에서 못다 한 사랑을 저승에서 백석과 만나 통일된 조국에서 영원한 사랑을 나누기를 기원 했으리라길상사 경내에는 나타샤와 백석의 정열적인 사랑의 흔적이 새겨져 있으며 오가는 많은 길손들에게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가 뛰어 노는 모습을 연상하며 이들의 애절한 사랑에 깊은 감명을 자아내게 한다백석은 젊은 날 한국의 나폴리라 칭하는 아름다운 바다와 섬이 드리워진 통영을 좋아하였다통영을 유달리 좋아한 연유로는 첫사랑 란(박경련)이라는 여인이 살았던 곳이기에 더욱 정감이 갔을 것이다하지만 박경련과의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했으며백석과 함께 ‘조선일보’에 근무했던 가까운 친구 신현중과 박경련이 결혼하자 백석은 충격적인 실연의 쓴맛을 본다. 백석은 일생동안 4번 결혼 하였고, 3차례나 이혼하였으며 나타샤와 한 번의 동거생활을 한 이력을 남긴 그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한 것 같다백석은 시()에 젖고 한 여자 나타샤와 사랑을 불태운 정열의 사내였다현재 통영에는 백석의 3편의 시비가 세워져 있고 바다남행시초수필편지 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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