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고산(高山, 527.0m)

고창에 속살을 숨긴 문화유적의 보고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5/04/24 [00:15]

고창 고산(高山, 527.0m)

고창에 속살을 숨긴 문화유적의 보고

새만금일보 | 입력 : 2015/04/24 [00:15]

▶개요와 조망
 이번산행은 군산 새만금산악회(회장 목진섭)와 고창의 고산을 산행했다. 높을 고(高)를 쓰는 고산은 말 그대로 고창의 들녘에 높이 솟아 주변의 조망대 역할에 충실하다는 의미다.    또 서울의 남산, 남해의 금산과 함께 산 이름이 외자다. 아직까지 고창에 꼭꼭 숨은 명산으로서 외지인들에게 속살을 내비치지 않은 숫처녀와 같이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산이다. 또 세계문화유산인 선사시대 지석묘(고인돌) 3백여 기, 후삼국시대에 축성 것으로 얼려진 고산산성(약 4.1km) 등을 간직한 문화유적의 보고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지고, 용추굴, 각시봉, 깃대봉, 매바위, 용두암, 거북바위, 촛대봉, 치마바위 등 전설이 깃든 지명과 암봉들이 산행미를 더해준다. 또 천연 복분자인 산딸기 평전과 개구리와 곤충의 낙원인 늪지대의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이다.   
▲ 새만금산악회     © 새만금일보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산에 축성된 산성의 총 길이가 8천1백 척, 높이 20척으로 기록돼 있다. 자연지형을 이용한 토성과 석성이 혼재되어 축성된 길이가 약 5.1km로 추정되며 동문, 서문, 남문의 흔적은 남아 있으나 북문은 찾아 볼 수가 없어 안타깝다. 전북대학교 윤덕향 교수는 축성연대를 삼국시대 후기로 추정하고 있다.
  고산과 고성산 사이에 있는 가래재는 옛날 해상인 법성포와 육상의 장성역을 잇는 보부상들의 물물교환의 통로 역할을 한 중요한 고개요,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두 형제가 북쪽의 고산산성은 아우가 쌓고, 남쪽의 고성산성(古城山城)은 형이 쌓기로 약속했다. 약속한 날짜까지 성을 쌓지 못하거나 가래재에 늦게 도착한 사람이 목숨을 내 놓기로 했으나, 아우가 약속한 날짜를 어기자 형이 아우를 가래(삽)로 쳐 죽이고, 고산에 올랐다. 아우가 명천수(明天水)가 솟아나는 용추굴을 주변을 이용하여 약속보다 갑절이나 많은 산성을 쌓느라 늦은 것을 알고 후회한 나머지 가래로 자기 목을 쳐서 자살했다고 한다.     
  고산의 산줄기는 금남호남정맥 완주 주화산에서 두 갈래를 친 호남정맥이 금남정맥을 북쪽으로 보내고, 남쪽으로 달리며, 만덕산, 경각산, 오봉산, 내장산 신선봉과 까치봉 갈림길을 지나 순창새재(530봉)에서 서쪽으로 영산기맥(남쪽 영산강, 북쪽 동진강의 분수령)을 내려놓는다. 그 영산기맥은 입암산, 갈재, 방등산, 문수산, 구황산을 지나 고산에 닿는다. 그리고 고성산, 월랑산, 태청산, 불갑산을 지나 목포 옆 영산강 하구에서 여맥을 다한다. 그런데 일제(日帝)는 영산기맥을 노령산맥이라고 우리전통지리를 왜곡시켜 놓았다. 행정구역은 전북 고창군 대산면. 성송면과 전남 장성군 삼계면, 영광군 대마면에 경계해 있다. 물줄기는 남쪽은 대산천, 북쪽은 와탄천 분수령으로서 영광 덕오 부근에서 합류되어 법성포로 흘러들어 서해에 살을 섞는다. 
▲ 고성산 아래서 본 북쪽의 고산 치마바위     © 새만금일보

  고산은 고창지역의 영산기맥 상에 속살을 고이 숨겨진 곳으로 아직 등산객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고산은 비록 해발이 527m이나 평야지에 위치해 있어 장수지역의 1천m 산과 어깨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350m까지는 육산으로 송림이 울창하고, 6부 능선부터는 고산산성이 있고, 암봉과 산죽이 어우러져 산행미를 더 해준다.
  산행의 들머리인 고창군 대산면 석현마을 안내판 앞에서 동쪽의 소나무 숲으로 오르면 고창 신흥에서 오는 임도를 만난다. 1봉인 각시봉에 올랐다가 내려서면 자연지형을 이용해서 쌓은 토성 흔적이 보이기 시작하다가 석성이 혼재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2봉인 깃대봉에 닿으면 우측 상금 고인돌군으로 가는 하산로에 닿는다. 용머리 모양의 용두암이 위연하게 눈앞을 가로 막아선다. 산성 서문 터와 남쪽 계곡에는 용추굴이 있다. 용머리 형상의 용두암을 밧줄에 의지해서 오르면 전망이 훌륭하다. 남쪽으로 고성산, 월랑산, 태창산이 손짓한다. 3봉인 띠꾸리(나뭇짐을 매는 끈)봉에 닿는다. 매봉에 올라 밧줄에 매달려 암벽을 내려서면 4봉인 촛대봉이다. 옛적에 상금리 주민들이 나무를 하고 숯을 굽던 구덩이를 흔적이 있다. 옛날 그곳에 불을 피우면 건너편 수련산에서 연기가 났다고 전해 온다. 이곳부터 남쪽은 전남 장성군, 우측은 전북 고창군의 경계가 시작된다. 우측 길은 가래재나 상금리 안부로 가는 하산로이고, 정상은 동쪽으로 0.6km의 산성을 따라 오른다. 기와가 출토된 산성 남문 터에 닿으면 억새가 우거졌다. 해마다 태봉산악회원과 대산면 애향회원들과 함께 우거진 억새를 베어내고 등산로를 정비하는 봉사활동을 한다.
 정상에서 조망이 훌륭하다. 북쪽엔 옥녀봉이 삼각형으로 솟았고, 그 아래는 암치저수지, 성송초교와 백토마을로 하산하는 길과 고창과 영광을 잇는 23번 국도가 한눈에 잡힌다. 그 옆으로 구황봉과 문수산이 얼굴을 내밀고, 동남쪽엔 수련산, 남쪽엔 고성산. 월랑산. 태청산이 한눈에 잡힌다. 서쪽엔 바둑판같은 고창들녘이 다가온다. 청명한 날엔 광주 무등산과 담양의 추월산과 영암의 월출산까지 보인다고 하니 그야말로 고창의 조망대로 손색이 없다.
 정상에서 4봉인 촛대봉으로 돌아와 두 형제 전설과 물물교환의 통로였던  가래재에서 산줄기를 따라 직진하면 고성산으로 가고, 하산로는 우측의 안부로 내려서야 한다. 전남북의 도경계가 참 이상하다. 상식적으로 가래재에서 고성산. 월랑산의 산줄기로 이어져야 옳다.  그런데 도계는 가래재에서 계곡을 따라가다가 상금리 앞에서는 작은 도로를 따라 이어지며 헷갈리게 했다. 우측은 천연복분자단지고, 좌측은 드넓은 늪지가 나왔다. 이 늪지는 초대 면의원이었던 유현봉씨가 수천 평을 논으로 개간하였으나 현재는 늪지로 변해 있었다. 길가엔 300여기의 고인돌들이 번호표를 붙인 채 군신처럼 늘어서 있다. 상금마을 앞의 네 개의 지석묘는 북방식처럼 높은 돌기둥 위에 탁자처럼 거대한 너럭바위가 덮개 석이 올려져있었다. 
 
▲ 가릿재 가는길     © 새만금일보

▶문화유적
<선사시대 지석묘> 청동기 시대의 무덤은 지석묘와 석관묘가 대부분이었다. 지석묘는 입석과 함께 거석문화로 알려지고 있는데 한강의 북쪽은 북방식 및 탁자형이고, 남쪽은 남방식 또는 기반식(碁盤式)으로 지석이 없이 지상에 돌만 올려놓은 지석묘가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데 고창의 대산면 상금리, 아산면 매산리 일원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지석묘는 한사람의 시체를 묻는 것이 대부분인데 무게가 70톤, 길이가 7m에 이르는 거대한 것이 있는 것을 보면 권력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상금리 일원에는 농경지 때문에 수없이 파괴되고 현재는 3백 여기만 남아 있는데 그 가치가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산행안내
1코스:석현마을-각시봉(1봉)-깃대봉(2봉)-띠꾸리봉(3봉)-촛대봉(4봉)-고산(5봉)-촛대봉-안부-산딸기평전-상금리(7.1km, 3시간 30분)
2코스:석현마을-각시봉-깃대봉-띠꾸리봉-촛대봉-고산-옥녀봉-성송초교(7.6km,3시간40분)

▶교통안내 
  서해안고속도로 영광 IC- 23번 국도- 원흥 경유 -고창군 대산면 석현마을
  전주-정읍-고창-대산면 석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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