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귀운(高達歸雲)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5/06/03 [00:00]

고달귀운(高達歸雲)

새만금일보 | 입력 : 2015/06/03 [00:00]


‘고달귀운(高達歸雲)’은‘고달산에 구름이 머문 모습’이다. 귀운(歸雲)은 돌아올귀(歸), 구름운(雲)으로‘구름이 돌아온다’는 말이다. 고달산(高達山)은 고덕산(高德山) 또는 고대산(孤大山)으로도 불린다. 이 가운데 고덕산(高德山)이라는 이름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고덕산(高德山)은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과 완주군 구이면, 완주군 상관면에 경계해 있다. 전주시내와 완주군 구이면 광곡과 평촌, 완주군 상관면 신리 방향 등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산이다. 높이는 603미터다. 고덕산은 전주시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어 등산이나 산책코스로 유명하다.   
 일세(一世)의 영걸 후백제왕 견훤이 쌓았다고 하는 고달산성의 뫼뿌리를 고장 사람들은 고대산(孤大山) 또는 부악(不岳)으로 부추겨 애칭한다. 정수리는 한 무리 떼지어 산놀이 할 만한 석대가 깔려있고 산 돌아 숲으로 덮인 이 산은 백설같은 구름송이들이 돌아와 깔린다는 데서 고달귀운(高達歸雲)의 선경이라 부른다.
 유수한 이 산을 끼고 백제 무왕 때 창건했던 보광사(寶光寺)며 그 탑신과 칡(葛) 기둥 자리며 또한 비래방장(飛來方丈)의 유서깊은 경복사(景福寺)며 사대사(四大寺), 흑석사(黑石寺) 등 굵직한 절들이 천고의 별인듯 정토열반 밝혔던 당시를 회고케 한다.
 경복사(景福寺)는 연국사(燕國寺) 또는 연국사(宴國寺)라고도 한다. 고구려 말엽 보장왕 즉위 초였다. 왕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신교(新敎)를 들여왔는데 이게 노자의 도교(道敎)였다. 교세는 날로 전파되어 온 나라 안에 퍼지게 됐다. 그로 인하여 백성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교냐 도교냐로 민심은 요원의 불길처럼 두 길로 갈려 술렁거리고 정사(政事) 또한 온전할 수 없었다.
 이 때 반룡사(盤龍寺)의 보덕화상은 개탄 끝에 나라와 중생을 위하는 일편단심의 비장한 각오로 왕 앞에 간하여 올렸다. 그러나 왕은 그의 지성된 충간을 받아들이지 안했다. 헛된 일이었다. 물러나온 보덕은 날로 기울어져 가는 국운의 비색(悲色)을 일개 출가승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제자 가운데 명덕화상을 불러 말했다.
 

“제국(諸國) 강토 가운데 그대의 의중에는 어느 나라로 하여금 불교를 전파케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느끼는고?”명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합장하고 아뢰었다.“소승의 미거한 견문으로서 어찌 하문하심에 대령하오리까마는 그런대로 소견을 들어 말씀 올린다면 남방 백제 나라가 어떠하올까 아뢰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나서였다. 보덕화상은 신통력인 천안통(天眼通)으로 강산을 두루 살펴 나가다가 백제국 영내인 이곳 완산부성의 고대산(孤大山.고덕산)이 차린 산천경개 앞에 이르렀다.
“훌륭한 산동이다. 중생을 제도하는 데 정토경내(淨土境內)로 다질만한 전석(塡石) 터다”이렇게 다짐하고 돌아왔다. 어느 날이다. 만뢰가 괴괴한 한밤중이었다. 홀로 깨어나 합장배례로 불전에 참선삼매로 있던 보덕화상은 신통력을 발휘 반룡사와 도량에 차린 부설기물들을 몽땅 거두어 구름가듯 사뿐 날려 이곳 고대산에다 옮겨 놨다. 물론 이건 전래설(傳來說)이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랬다. 그러나 세류풍상은 산하로 변하여 놨다. 그 옛날 고구려의 이인(異人)이 베푼 비래방장(飛來方丈)의 기적은 오늘날 그 잔영조차 찾을 길이 없고 가을도곤 소슬한 산바람만 오갈 뿐이다.
 지금도 고달산에는‘비래방장(飛來方丈)’집터가 남아 있다. 비래당(飛來堂)은 비래방장설에 인한 경내에 세웠던 유적(遺蹟)이다. 비래암터에는 암자로 섰던 고가 한 채가 남아 있어 비래방장의 옛터였음을 추정케 한다. 옛날 번성했던 시절을 연상케 하는 정교한 석성과 수문이 남아 있으며, 절터로 추정되는 밭에서는 기와와 고려자기 등 파편이 출토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을 박성동(璞成洞)이라 부른다.‘박(璞)’자는‘왕이 아담한 성에 숨어있다’는 뜻이라 한다.
 고달산에는 칡기둥과 관련된 갈주설(葛柱說)도 있다. 이조 말엽 고종(1864-1895) 무렵까지만 해도‘칡’하면 고달산 칡넝쿨을 연상하게 했다. 꼭 원시림같이 칙칙하게 우거진 숲속을 칡넝쿨은 망(網)을 치듯 산을 칭칭 감아 뻗어 깔려있다. 게다가 호랑이굴까지 있었으니 좀처럼 사람이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니 천고의 옛날은 물어서 무엇하랴. 풍담(風譚) 같지만 칡넝쿨 줄기 속에 둘레가 기둥만한 것이 더러 있었을법하지 않은가. 그런데서 산신당, 제계각(齊戒閣) 등을 세우는데 칡줄기 가운데 기둥감을 쳐다 세웠던 칡기둥이라 보겠다.
 한편 고달산(高達山)의 고달(高達)이란 말은‘최고에 도달한다’는 뜻이어서‘높다라기’라고도 불렸다. 하늘 높이 달아매기란 뜻이니 산(山) 자를 말미에 붙여서 높닭산의 줄임말이 되었다. 높닭산은 높달산과 고달산이 되었고, 높닥산은 고덕산(高德山)으로 바뀐 것이다.
 

 전주에서 고덕산을 가는 코스는 매우 많다. 먼저 전주시 동서학동 전주교대에서 서학파출소 앞 안내도를 따라 가면 이정란 장군의 사당인 충경사를 지난다. 남쪽으로 직진하면 삼경사와 관성묘를 거쳐 고덕산을 가는 길이고, 동쪽 오름길로 들어서면 남고사 입구가 나온다. 우측은 남고사로 곧장 오르고 좌측은 불정사를 거쳐서 남고사 일주문 앞에서 만나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면 새로 축조한 남고산성이 나오고, 이삼만 선생이 쓴 남고산성 사적비를 만난다. 이어 남고산성 북장대에서 성곽을 따라 걸으면 좌측으로 전주시 대성동, 우측으로 전주시 평화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삼경사와 관성묘를 거쳐 오르는 삼거리와 만나게 되고, 성벽이 이곳에서 끝이 난다. 북쪽은 천경대, 정상은 동쪽으로 직진이다. 천경대 부근에는 억경대, 만경대 등도 있다. 메뚜기바위에서 조금 가면 전주시 평화동 방면의 학산, 보광재에서 오는 길과 합류한다.
 전주시 대성동과 완주군 구이면 평촌마을을 보면서 송전탑을 지나게 된다. 송림을 지나 암벽을 힘들게 올라서면 넓은 헬기장과 오석으로 된 멋진 표석이 있는 고덕산 정상이다. 
 한편 전북에는 고덕산이 두 개 있다. 전주와 완주 쪽의 고덕산과 임실 쪽의 고덕산이 있다. 혼선을 피하기 위해 호남정맥에서 갈려나온 전주 고덕산과 금남호남정맥에서 갈려나온 암봉으로 이루어진 임실 고덕산(高德山)으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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