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사후(多佳射侯)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5/08/19 [00:50]

다가사후(多佳射侯)

새만금일보 | 입력 : 2015/08/19 [00:50]

다가사후(多佳射侯)란‘다가천변 활터에서 활 쏘는 모습’을 말한다. 사후(射侯)는 쏠 사(射), 과녁 후(侯)로 활 쏠 때의 과녁을 가리킨다. 사후(射侯)는 또‘과녁을 쏜다’는 뜻도 있다. 여기서 후(侯)는 사방 10척(尺)의 과녁을 뜻한다. 가운데 둥그렇게 그려져 있는 것은 곡(鵠)이라고 말한다. 활의 과녁은 또 다른 말로 후곡(侯鵠)이라고도 한다.
후곡(侯鵠)의 후(侯)는 사방(四方) 열자(十尺)의 둘레를 말하며 곡(鵠)은 그 속의 사방(四方) 넉자(四尺)를 말한다. 그밖에 과녁 후(帿)의 후(帿)는 과녁 후(侯)와 같은 의미의 한자이다. 따라서 다가사후(多佳射侯)는 다가사후(多佳射帿)라고 써도 무방하다.
‘다가사후(多佳射侯)’는 완산팔경(完山八景)의 하나로도 유명하다. 전주 다가산에는 다가공원 외에 유서 깊은 활터가 있는데 바로‘천양정’이다. 천양정(穿楊亭)에는 옛 선비들이 활을 쏘는 정자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궁사들이 활시위를 당기는 곳이다. 천양정에서 무관과 한량들이 호연지기를 키우며 과녁판을 겨누고 쏘아대는 모습은 일대 장관을 이뤘다. 그래서 천양정은 전주팔경에 이미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천양정(穿楊亭)의 천양(穿楊)이란 말은‘버들잎을 화살로 꿰뚫는다’는 뜻이다. 천양(穿楊)은 뚫을 천(穿), 버들 양(楊)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명궁 양유기의 고사에서 나왔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초나라의 양유기는 진정한 명궁이었다. 그가 활을 쏘면 백보 앞에 있는 버들나무 잎을 맞추어 화살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서양에 로빈 후드가 있다면, 우리나라에 고주몽이 있고, 중국에는 양유기라는 신궁이 있었다. 천양(穿楊)이라는 말은 양유기가 백보 밖의 버들잎을 연이어 꿰었다는 고사에서‘활을 잘 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전주 다가공원의‘천양정’은 명궁을 배출할 만한 훌륭한 전통을 갖춘 활터라는 뜻이다.
천양정은 다가천 서쪽 냇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부터 우리 조상들의 무예의 수련장이었다. 1712년(숙종 28년)에 처음으로 전주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다가천 서쪽 냇가 기슭에 정자 네 칸을 마련하고‘천양정’이라고 이름 지었다. 과녁판은 서북방인 황학대 밑에다 세웠다.
그 후 9년이 지나 대홍수 때 떠내려가고 다시 다가산 바로 밑에 세우니 산 이름을 따라‘다가정’이라 했다. 그 후 57년이 지난 정조 2년엔 앞에 정원을 만들었고 황무지를 일구어 활터를 더 넓혔다.
1830년(순조 38년) 8월에는 다가정 구내에‘일사정’을 건립하고 과녁판을 남쪽에 설치했다. 그 때 이름을 다시‘천양정’으로 부르게 됐다. 홍수로 떠내려간 지 118년 만의 일이다. 건물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이다.
이 후 천양정은 노인들이 사용하고 북향으로 활을 쏘는 다가정(多佳亭)은 장년들의 활터로 사용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풍남제 행사에서도 대사습대회 중 특색 있는‘무과 급제 재현’을 1995년부터 재연하여 볼거리가 되고 있다. 천양정은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다.
다가공원의 천양정에서는 무과를 치루었던 곳이다. 그런 전통이 잘 살아있어서 사풍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천양정에서는 사두라고 하지 않고 사장(射長)이라고 한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서 전주대사습에서는 활쏘기 대회를 매년 연다. 이 대회는 각궁에 죽시만을 써서 개인전만 치른다.
그래서 우리나라 활쏘기 대회에서는 색다르고 독특한 위상을 분명히 차지한 대회이다. 우리 민족에게 활쏘기는 단순히 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기에는 활을 쏜 사람들의 삶과 정신이 녹아있다. 그 전통은 수천 년 동안 꾸준히 이어져 다양한 풍속을 낳기도 했다.
활쏘기는 기·체·심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 활에 화살을 먹이고 발사할 때까지 시간은 비록 10여 초에 불과하지만 기·체·심이 일치된 그 순간은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활쏘기에는 힘보다 균형과 유연함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자세와 호흡법, 유연한 몸 상태를 유지하면 힘을 이용하는 것보다 오히려 쉽게 활을 당길 수 있다. 사대에 한 번 오르면 5개의 화살을 쏜다. 이를‘한 숨’이라고 한다. 과녁과의 거리는 145m이다.
사대에는 한꺼번에 7명까지 올라가는데 한 사람씩 차례대로 쏜다. 이렇게 한 숨을 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15분이다. 그리고는 함께 화살을 수거하러 표적으로 간다. 국궁은 장비를 이용한 무예로 일반적으로 활과 화살, 궁대, 깍지가 필요하다.
한편 전주에는 군자정, 다가정, 읍양정 등 세 활터가 있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면서 일제의 압력으로 폐쇄되자 이를 아쉬워한 전주의 인사들이 1912년에 다시 설립한 것이 바로 천양정이다.
그러나 일제는 1918년 3곳의 활터를 모두 폐하고 전주천양정사회(全州穿楊亭射會)로 통합시켰다. 전주 다가산과 다가공원에는 일제의 식민정책이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다. 조선인들에게‘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위해 1914년 10월 다가산 정상에 신사(神社)와 사무소를 세웠다. 다가산 밑 광장(현재 천양정 앞)에는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하는 웅장한 석조 도리이(鳥居)까지 세웠다. 그곳에 오르는 길은‘참궁로(參宮路)’라 해서 잘 닦아 놓았으며 다가교는‘대궁교(大宮橋)’라 불렀다. 신사에 참배하기 위해 건너는 다리였기 때문이다.

(정복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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