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낙안(飛飛落雁)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5/12/23 [00:46]

비비낙안(飛飛落雁)

새만금일보 | 입력 : 2015/12/23 [00:46]

비비낙안(飛飛落雁)은 전북 완주군 삼례읍 삼례천 일대의‘한내천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를 비비정(飛飛亭)에서 바라본 모습’을 말한다. 혹은 그냥‘한내천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를 가리키기도 한다.

전주팔경의 하나이다. 낙안(落雁)은 떨어질 락(落), 기러기 안(雁)으로‘땅에 내려앉는 기러기’라는 뜻으로 때로는‘기러기 떼'라는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한내천은 전주시 덕진구 전미동과 완주군 삼례읍 경계에 걸쳐 있다. 꿈 실은 고깃배가 오르내리는 한내천 백사장 갈 숲에 사뿐히 내려앉은 기러기 떼를 비비정에 올라 바라보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었을 것이다.

비비정 마을은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있다. 비비낙안은 바로 한내천 백사장에 내려앉아 노는 기러기 떼가 아름다워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남쪽 언덕 위에 있는 비비정은 전주천과 삼천천이 만나고 소양천과 고산천이 합류되는 만경강 한내를 바라보고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비비정 앞을 흐르는 한내천은 삼천과 추천, 전주천이 합수되어 다시 거듭 소양천과 고산천에 합수되어 만경강을 일으키는 곳이다. 한내란 호남으로 빠지는 관로의 요충이란 큰 내라는 뜻과 완주군 내 깊은 산중에서 물이 내려와 만들어진 소양천과 고산천이 합류되어 물이 유난히 차서‘한(寒)내’라는 뜻도 있다. 비비정 앞을 흐르는 한내는 오랜 세월 말없이 유유히 흐르며 민족의 애환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내 언덕에 자리한 비비정은 그 유래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 깊었던 정자였다.

삼례 비비정(飛飛亭) 마을은 비비정이 있다 해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전주에서 삼례로 오다보면 익산 방향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여기서 우회전 한 후 수백 미터만 더 가면 비비정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익산에서도 오기 편하다. 익산-삼례 도로를 타고 오다가 삼례읍 소재지에 못 미쳐 비비정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이곳에 올라서면 월드컵 경기장이 있는 전주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만경강 상류의 넓은 평야와 유유히 흐르는 물 위로 기러기들이 내려앉는 풍경도 볼 수 있다.

비비정 마을은 30가구 정도에 10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삼례읍에는 야산이 군데군데 펼쳐져 있는데 대부분 논이 시작되는 곳에서 멈췄다. 그러나 비비정 마을만 야산의 한 자락이 유독 멀리까지 뻗어 만경강 상류를 이루는 삼례천에 닿아 있다. 비비정은 마을에서 가장 길게 나와 있는 땅 끝 부분에 서 있는 것이다.

한내천은 4개의 큰 하천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래서 비비정 앞을 가로지르는 한내는 강줄기처럼 매우 넓고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지금은 비비정만 썰렁하게 남아 있지만 옛날 이곳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번성한 곳이었다. 이곳 한내는 물이 깊고 천이 넓어서 군산, 김제, 부안지역 등에서 온 소금배, 젖거리배 등 각종 돛단배가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물건을 실은 배가 멈추는 곳에는 어김없이 거래가 이뤄졌을 것이다. 백사장 한편에는 큰 시장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강변에서 낚시꾼들이 고기를 낚아 올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또 이곳은 교통의 요충지여서 서울과 지방을 오르내리는 나그네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비비정에서 쉬며 시를 지었다. 아마도 전라도 삼례 이남에서 서울 가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이곳을 거쳤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완산팔경이라 칭했던 이유는 자연적인 풍경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한내 주변의 백사장에 갈대나 풀들이 무성해 모래밭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오십 년 전만해도 이곳 백사장은 잔풀 없이 모래가 햇볕을 받아 하얗게 빗나고 있었다.

이곳에 기러기 떼가 날아들어 고기를 잡아먹는 풍경은 가히 한 폭의 수묵화였을 것이다. 저녁에는 저녁노을을 받으며 만경강의 동쪽 포구로 돌아가는 황포 돛단배의 모습(동포귀범:東浦歸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강변이었다. 이를 지켜보면서 양반들은 비비정에 앉아 술을 마시고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그 정취를 달랬다. 그래서 이곳은 완산8경의 하나가 됐다.

비비정 바로 뒤에는 호산서원도 있다. 이곳에서 글을 읽고 국가의 대소사를 논하다가 가끔씩 비비정에 나와 시를 지었던 옛 조상들의 정취는 이곳을 홀로 지키고 있는 비비정만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

비비정은 당초 조선 선조 6년(1573)에 창주첨사(昌洲僉使) 최영길(崔永吉)에 의해 창건됐다. 그 뒤 영조 28년(1752)에 전라관찰사(全羅觀察使) 서명구(徐命九)가 중건하여 관정(官亭)이 됐다.

이어 19세기 초에 철거된 뒤 1998년에 복원됐다. 정자 이름이 비비정인데 정자 이름은 바로 마을 이름이 되었다. 비비정은 경치가 좋아 시와 운문을 즐기는 선비들이 자주 찾았고 이러한 흔적들은 비비정 안쪽에 걸려 있는 편액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비비정의 정취는 비문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고고한 달빛 아래서 고기비늘처럼 반짝거리는 물결을 찾아 날아드는 기러기 떼에 시에 대한 흥취를 달래고 고기를 낚는 어화(漁火)를 비비정에서 바라보는 것은 한 폭의 수묵화(水墨畵)를 닮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미 조선시대에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는 이름으로 완산8경(完山八景) 중 한 곳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적혀 있다.

오늘날에는 그 옛날 비비정 앞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그 위를 노닐던 기러기 떼를 볼 수가 없다. 한내를 지나던 소금 배나 돛단배는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여전히 비비정에 올라 바라보는 한내는 넓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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