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만정맥-비봉지맥의 완주 봉실산(鳳實山, 372m)

봉황이 열매를 먹는 형국의 봉동의 진산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6/02/19 [09:42]

금만정맥-비봉지맥의 완주 봉실산(鳳實山, 372m)

봉황이 열매를 먹는 형국의 봉동의 진산

새만금일보 | 입력 : 2016/02/19 [09:42]


▲ 전망대에서 본 옥녀봉과 봉실산     © 새만금일보

▶개요와 자연경관
  봉동의 진산이자, 일명 만덕산으로 불렸던 봉실산의 유래가 흥미롭다. 본디 봉실산은 봉황이 대나무 열매를 먹는 곳으로 알려진 봉실마을 지명에서 취한 이름이다. 또 비봉산에서 날아온 봉황이 아름다운 산세에 반해서 쉬어 갔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 전라감사로 부임한 이서구가 봉동으로 행차하여 봉실산의 산세를 보고 장차 향기로운 풀(봉동 생강)이 백성들에게 큰 덕을 베풀게 될 것이라며 만덕산萬德山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생강의 원산지는 동인도 힌두스텐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 의서에는 사천성이 원산지로서 약 2,500년 전에 생강이 재배되었다고 기록됐다. <고려사>에는 1018년 전부터 생강이 재배되었으며 현종 임금의 하사품으로 쓰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봉동생강기원발굴고증위원회의 고증과  <완주군지>로 고찰해 본 봉동 생강에 대한 유래 두 가지가 있다. 조선시대 중국 사신으로 갔던 신만석이라는 사람이 봉성현에서 생강뿌리를 얻어와 전남 나주와 황해도 봉산에 심었지만 경작에 실패했다. 그 뒤 ‘봉鳳’자가 붙은 봉동의 옛 지명인 봉상에 심어서 봉동 생강의 시원이 됐다. 또 하나의 설은 향기로운 풀로 알려진 생강이 비봉산 구바위 주변에 저절로 자라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완주군에서는 후자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성싶다.

▲ 옥녀봉에서 본 비봉산과 봉실산     © 새만금일보

  아무튼 봉동생강은 구한말까지 한해 12만 섬을 생산할 때까지만 해도 활기를 띠었다. 봉동 주민 외에는 겨울에 온돌 밑에 지하창고를 만들어 생강을 보관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지금은 생강의 경작지가 전국으로 확대되어 그 명성을 잃게 됐다.
  봉실산 자락 추동마을은 학이 알을 품고 있는 비학포란혈飛鶴抱卵穴이다. 마을의 주산은 봉실산으로 그 줄기가 마을로 내려온 그곳에 알을 상징하는 3개의 바위가 와석형으로 놓여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삼바위 또는 구바위라 부르고 있다. 삼바위 근처에는 마을사람들이 정월초에 마을의 당산재를 지내는 제당으로 당산나무가 심어져 있다.
  <산경표山經表>의 우리전통지리로 고찰해 본 봉실산의 산줄기는 이렇다.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이 서북으로 뻗어가면서, 장안산. 팔공산. 마이산. 부귀산을 지나 완주 주화산에서 남쪽은 호남정맥, 북쪽은 금남정맥으로 두 갈래를 친다. 금남정맥이 북으로 뻗어가며 입봉, 연석산, 운장산 서봉, 장군봉, 싸리재를 지나서 금만봉에 닿는다. 그리고 북서쪽으로 실질적인 금강의 남쪽 울타리를 이루며, 왕사봉, 칠백이고지, 선녀봉, 불명산, 남당산, 작봉산, 까치봉, 옥녀봉을 지나 천호산을 솟구친다. 천호산 남쪽 문드러미재 부근에서 남쪽으로 나뉜 비봉지맥 끝자락에 옥녀봉과 봉실산을 이르켰다. 물줄기는 봉동천에 합수되어 만경강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와 비봉면 봉산리에 경계하고 있다.

▲ 봉실산 정상     © 새만금일보

  <완산승경>, <전주십경>은 만경강을 따라서 노란 황토배가 들어오는 광경을 “동포천길 푸른 물에 고깃배를 띄우고 점점이 들러오네.”하고 시인묵객들이 노래했던 동포귀범東浦歸帆으로 묘사했다. 그 수려한 풍정은 동포천(지금의 봉동천)의 서사시였다. 한여름에는 맑고 시원한 물과 뱃사장이 아름다워 전주 . 익산 등지에서 피서객들이 몰려와서 해수욕장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웠던 풍경은 이제 옛 추억의 사진첩 속으로 숨어 버렸다. 육로의 교통수단이 발달과 만경강의 수원이 줄어 동포천으로 배가 왕래할 수 없는 연유였다.
  만경강의 본류인 고산천과 동포천이 성황을 이루던 시절에는 거울같이 맑은 고산천을 돌고 마그내(봉동교 부근) 선창가 부두 만가리천을 돌아 닫는 소금, 새우젖, 땔감, 생강, 곡식 등을 실은 배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장관이었다. 
 동포천과 만경강 주변 봉동과 봉서사 인근의 봉황과 관련된 지명에도 선인들의 지혜가 번득인다. 봉서사鳳捿寺는 봉황이 알을 품고 깃들었다는 의미고, 봉서산에서 발원한 봉곡鳳谷은 봉서제까지 이어지는 봉황이 깃든 곳이다. 봉서제에서 동북쪽은 봉이 내린 봉강鳳降, 봉강에서 동북쪽은 아홉 마리 봉이 머무는 구봉九鳳이다. 구봉에서 북쪽은 봉이 날아갔다는 봉상鳳翔, 봉상에서 북쪽은 봉이 열매를 먹는다는 봉실鳳實이다. 봉상의 동쪽은 봉이 날아갔다는 비봉飛鳳, 봉서사 동쪽은 위봉사와 위봉산성이 있다. 산세가 험하여 봉이 위험하게 넘어갔다는 의미다.  
 
▲ 옥녀봉 정상     © 새만금일보

 ▶ 문화유적 및 명소
 [추수경 장군 사당과 묘역] 추동마을에는 추수경 장군(1530∼1600) 묘역과 사당이 있다. 그는 1591년 조선 선조 때 명나라의 무강자사가 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의 신종에게 청원하여 이여송의 원군을 출병케 하였다. 자신도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총병 아장으로 다섯 아들과 군사 5천명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와 함께 참전하였다. 1593년 2월 곽산 대첩을 시작으로 평양성 탈환, 개성ㆍ한양 수복작전에 참여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남원 전투에 참전하였고, 전주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으면서도 전주사고를 끝까지 지켰다. 명나라 군사들의 환국 시 아들과 완주군 추동에 남아 여생을 마쳤다. 추동이라는 이름도 추수경 장군 때문에 생겼다. 
 <학림사>봉실산 동남쪽에는 고려 진평왕 때 해성선사가 창건한 학림사가 있다. 옛적에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이곳에 와서 백일기도를 드리면 봉실산 산신령님의 영음을 받아 틀림없이 아기를 낳는다 해서 성궁청이라 부르는 암자의 전설도 있다.

▲ 봉실산 들머리     © 새만금일보

▶ 산행안내
 o 1코스: 둔산리 주자창-갈림길-전망대-나무계단-옥녀봉-헬기장-봉실산-암릉길-봉실산갈림길-학림사-봉실산갈림길-둘레길(군부대뒷길)-주차장(7.3.km, 3시간)
 o 2코스: 추동-(1.6)봉실산-(1.3)옥녀봉(2.2)-나무계단-전망대-주차장(5.1km, 2시간)
 o 3코스: 주차장-전망대-나무계단-(2.2)옥녀봉-헬기장-(1.3)봉실산-암릉길-(0.5)봉실산삼거리-(0.3)학림사(4.3km, 1시간50분)
 봉실산과 옥녀봉은 봉동평야의 동북으로 길게 뻗은 산줄기에 사이좋게 솟아 있다.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펼쳐진 들녘이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 옥녀봉에서 본 봉동     © 새만금일보

바둑판같이 잘 정리된 농경지이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과 마을 동북에서 서남쪽으로 흘러내린 고산천의 물줄기가 푸른 농경지 사이로 아름답게 내려다보인다. 남쪽은 봉동 시가지와 너른 들녘, 서북쪽으로 익산의 미륵산과 함라산, 북쪽은 송곳 모양의 뾰쪽한 비봉산과 수봉산, 찬호산이 너울너울 춤춘다. 동쪽은 고산의 계봉산(안수산), 써레봉을 비롯한 고산지맥의 산들이 첩첩하다. 

▲ 봉실산 호남지리타사회원     © 새만금일보

 ▶교통안내
[대중교통]
 o 전주-죽산-추동마을 : 시내버스운행
 [드라이브]
 o 전주-17번도로-봉동(좌측 799번도로)-추동로-추동마을

/김정길 <전북산악연맹 부회장,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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