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한풍(三大寒風)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7/01/11 [00:26]

삼대한풍(三大寒風)

새만금일보 | 입력 : 2017/01/11 [00:26]
삼대한풍(三大寒風)은 전주 시내 '좁은목-초록바위-숲정이' 등 3대 바람통을 말한다. 세 곳의 바람 길목 또는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곳, 등골이 시원한 곳을 가리킨다. 전주는‘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의 도시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맛, 소리, 전통, 예향 등은 한결같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전주는‘결코 버릴 수 없는 꽃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도시의 상징임에 분명하다. 3이라는 숫자도 전주는 물론 한옥마을을 훨씬 더 잘 설명한다. 3대 바람통 가운데 좁은목은 한벽당에서 남관 쪽으로 물길을 따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는 바위 밑을 가리킨다. 진동규 시인은‘좁은목 약수를 마십니다’란 시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 이성계의‘도조인지 익조인지 환조인지, 아무튼 이태조 웃할아버지는 소싯적 전주천 한벽당 돌아 병풍바위 밑에 소낙비를 피하다가 그 바위 무너지는 순간에 빠져나와 목숨을 구했답니다. 저고리도 벗어던지고 빠져나왔습니다만, 피하지 못한 동네 아이들은 그 자리에 다 죽고 말았답니다. (중략)물통 밀어대면서들 웃고 그럽니다만 바윗돌에 깔리는 모습이, 살겠다고 웃통 벗고 도망치는 모습이, 푸른 연기 속으로 아른거리고 그럽니다 >
여기서 이태조 웃할아버지는 이성계의 고조부인 이안사(李安史)일 것이다. 그는 바로 전주시 교동 자만동 마을에 살았던 사람이다. 사연이 있어 멀리 강원도 땅을 거쳐 함경도에서 자리를 잡았다. 훗날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는 데 필요한 기반을 처음으로 제공한 인물이다.
춘향로에 자리한 좁은목은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장 이정란이 곰치를 넘어 이곳으로 진격해오는 왜군을 합공작전으로 물리쳐 전주성을 지켜낸 곳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주에서 남원으로 나가는 주요 관문이다. 물맛이 좋기로 유명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약수터 바로 옆에 1987년 10월 전주중앙로타리클럽이 세운 네 가지 표준(진실한가, 모두에게 공평한가, 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모두에게 유익한가)이라는 빗돌이 있다. 인근에 충경공 이정란의 공적을 기린 사당을 만날 수 있다. 전주시를 동서로 가로지른 도로를 충경로로 명명한 것 역시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함이다. 이곳에서 약수물 한 모금을 들이키면 가슴을 쓸어내리는 싸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바람통은 초록바위다. 초록바위는 한벽당 자락에 부딪친 전주천 물줄기가 전주부성을 타고 서진하다가 남부시장 천변에 다다르면 공수내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합수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부는 바람은 흑석골과 곤지산에서 불어와 선선함을 선사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죄인을 수장하거나 처형한 뒤 초록바위 산 정상에 메달아 두었기 때문에 등골이 오싹한 한기를 느끼는 곳이다.
초록바위가 있는 지금의 곤지산 자락은 전주 천변의 완산교에서 전주교로 이어지는 도로를 확장하면서 자연환경이 크게 훼손되었다. 곤지망월로 일컫는 전주 10경이란 수식어가 민망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팝나무 군락과 초록바위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전주시는 초록바위와 곤지산, 투구봉의 완산공원 꽃동산 등을 도심 등산로로 만들고 친환경 숲길 조성을 할 계획이다. 해마다 5월이 되면 곤지산 자락 초록바위에는 희귀한 이팝나무들이 순교자와 참형자들의 영혼을 달래주듯이 하얀 꽃비를 뿌린다. 정월 대보름날이면 시민들이 곤지산에 올라 달맞이를 즐기며 종족 보존과 소원을 빌었던 민족 고유의 세시풍속이 있었다.
마지막 바람통은 숲정이다. 숲정이는 완주군의 삼례 앞 한내, 가래여울 그리고 쪽구름이(반월동), 가련평(가련산 밑), 사평(서신동) 들녘을 타고 불어오는 서북풍의 바람이 닫는 곳이다. 현재 동국해성아파트 일대를 가리킨다. 이곳은 북쪽이 허한 기운을 돕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이다.
북서풍의 길목에 해당하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처형장으로 종종 서늘한 바람이 일기도 한다. 숲정이는 옛 전주부성의 북쪽으로 툭 터져 허하다고 해서 조선시대 전라관찰사 이서구가 1794년경 대규모 숲을 조성케 했다고 전해온다.
"숲정이"의 사전적인 의미는 "마을 근처에 있는 수풀"이란 뜻이다. 천주교도들이 참수형을 당했던 곳으로 숲이 칙칙히게 우거져 '숲머리' 또는 '숲정이'로 불렸던 곳이다. 숲정이 천주교순교지에는 1935년에 '천주교인순교지지(天主敎人殉敎之地)"라는 순교자비가 세워졌다.
1960년에는 해성중·고등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84년 9월 20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되었다. 1992년 해성중·고교가 삼천동으로 이전한 후에는 순교자 성 조윤호(요셉)를 기리는 '윤호관'과 함께 순교 성지가 보존되고 있다.
1866년의 병인박해는 5대 종교박해 사건의 하나로 가톨릭 신자 13명이 이곳에서 처형되는 사상 유례 없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후 전주는 대표적인 천주교 순교지로 꼽히면서 성지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곤지산 자락 초록바위는 동학혁명과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성지다. 그래서 전동성당을 그 성지를 바라보이는 곳에 지었다고 한다. 빛깔이 푸르스름한 초록바위는 예부터 좁은 목, 숲정이와 함께 3대 바람통으로 알려졌다. 참형자들을 효수하던 곳으로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지나는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도 했다. 동학혁명의 지도자 김개남 장군과 천주교인들의 처형된 순교지여서 더욱 오금을 저리게 했다.
새남터에서 순교한 남종삼(요한)의 아들 남명희와 순교자 홍봉주(토마스)의 아들은 천주교도라는 이유로 전주천에 수장시켰다. 두 집안은 가산을 몰수당하고 온 가족이 처형되거나 노비가 되는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 1백년 한국 천주교회 역사에서 가장 혹독한 박해로 기록될 정도다.
(정복규 기자)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전주-완주 110경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