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성씨(歸化姓氏)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7/03/13 [00:34]

귀화성씨(歸化姓氏)

새만금일보 | 입력 : 2017/03/13 [00:34]
우리나라 성씨 가운데 절반가량은 귀화성이다. 한국의 외래 성씨를 크게 나누면 중국계, 몽고계, 여진계, 위구르계, 아랍계, 베트남계, 일본계의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요즘에는 동남아나 서양에서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대부분이 중국에서 건너왔다. 그러나 연안인(印)씨와 대구빈(彬)씨는 몽고(蒙古)에서, 청해이(李)씨는 여진(女眞)에서, 덕수장(張)씨와 경주설(卨)씨는 회족(回族)인 위구르에서 왔다. 화산이(李)씨와 정선이(李)씨는 월남(越南)에서 왔으며, 우록김(金)씨는 일본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 귀화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 초엽이다. 그때는 주로 수(隋), 당(唐)의 중국인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송(宋)나라 사람을 비롯하여 여진(女眞), 거란(契丹), 안남(安南 : 베트남), 몽고(蒙古), 위구르, 아랍 사람들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명(明)나라와 일본인(日本人) 등 많은 외국인이 들어와 귀화하였다.
이들이 한국에 귀화하게 된 동기는 대체로 정치적 망명, 표류, 종교, 투항, 구원, 상업, 피란, 정략결혼, 왕실 시종관계(侍從關係) 등이다. 귀화인들은 대개 당시의 조정으로부터 융숭한 대우를 받았으며, 왕으로부터 성명을 하사 받은 사람도 적지 않다.
한반도는 중국이나 북방 지역에 전쟁이나 대홍수, 가뭄 등의 재해가 있을 때마다 해당 지역민들의 피난처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중국의 혼란기였던 위진남북조시대, 당나라가 몰락할 때, 발해가 멸망할 때, 송나라가 멸망할 때, 임진왜란과 명. 청 교체기에 대규모 귀화가 발생했다.
역사적으로 적극적인 귀화 정책을 폈던 고려의 경우, 귀화인에 대해 집이나 논밭, 물품 등을 증여하는 등 귀화인을 적극 수용하였다. 고려의 국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받고, 필요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부족한 인력을 받아들여 국방력을 키우거나 농업 인력을 늘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귀화인 우대 정책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이는 여진족에 대한 포섭과 격려, 결혼 정책, 강제 이주, 인질 등으로 주로 북방 경계를 지켜내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귀화인들을 통해 북방의 정보를 얻고 여진과 적당한 교섭, 통상을 계속했다. 유사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방비책으로 귀화인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현재 국내 성씨의 46%는 귀화 성씨이다. 전체 인구의 20%에서 절반까지가 귀화인들의 후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가까운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인도, 유구(오키나와), 베트남, 몽골, 여진, 위구르, 거란, 흉노, 발해 유민, 네덜란드, 등 실로 많은 민족이 한반도에 들어와 '한국인'이 된 것이다.
오히려 '귀화인'이라 불린 새로운 집단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었다. 우리 땅의 역사를 새로 만드는 단초를 제공했었다. 이들은 중원(中原)의 승자(勝者)가 바뀔 때마다, 전란과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난을 피해 한반도로 들어왔다. 사실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집계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들은 수천 년에 걸쳐 한반도에 이주해 온 귀화인들이다.
한편 귀화(歸化)란 다른 나라의 국적을 얻어 그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을 말한다. 동양의 왕조 국가에서는 형식상 왕의 어진 정치에 감화되어 그 백성이 된다는 뜻이었고, 향화(向化) 또는 왕화(王化)로도 나타낸다. 반면 적국의 국민 또는 적대적인 인물이 귀화하는 일은 귀순(歸順)이라고 한다.
생물이 본래의 자생지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생존, 번식하는 것도 귀화라고 한다. 동물인 경우에는 귀화동물(歸化動物), 식물인 경우는 귀화식물(歸化植物)이라고 하며 양자를 통틀어서 도입종 또는 외래종(外來種)이라고 한다.
통계청의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발표를 보면 귀화 성씨가 폭증하고 있다. 2000년에는 전체 성씨 728개 중 귀화 성씨가 442개였다. 15년이 지난 지금 주민등록상 전체 성씨가 5582개에 이른다. '한자가 없는'성씨만 4074개에 달한다.
일단 '한자 없는 성씨'의 절대수가 귀화인일 가능성이 짙다. 가또.가루시아.짠투이.코비.와비린.마치.레지나.즈엉.리샤.오안.핏 등은 분명한 귀화인의 성씨다. 귀화인이 한자 성과 본적을 쓰는 경우도 있다. 한국광광공사 사장을 지낸 이참(베른하르트 크반트)은 독일 이씨, 국제변호사인 하일(로버트 할리)은 영도 하씨의 시조가 됐다.
태국 태씨. 몽골 김씨. 대마도 윤씨. 길림 사씨 등도 있다. 서촌(西村). 석원(石原). 신곡(新谷) 등 일본 성씨를 그대로 등록하는 경우도 있다. 해마다 귀화인의 창성창본(創姓創本) 신청 건수가 7000건을 넘는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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