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진북동 숲정이 이야기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7/03/16 [00:54]

전주시 진북동 숲정이 이야기

새만금일보 | 입력 : 2017/03/16 [00:54]


전주 숲정이는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진북1동 1034-1 구 해성중고등학교 자리에 있다. 숲정이란 마을 근처의 숲을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숲이 칙칙하게 우거져 있는 인적이 드문 곳이다.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숲머리’라고도 한다. 숲정이에는 대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숲이 많았다. 수리, 수마을이라고도 불렀다.
이곳은 당초 조선 시대 군 지휘소인 장대(將臺)가 있어 조선 시대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다. 일찍부터 중죄인들의 형장으로 사용되었다가 천주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면서 순교 터로 변모하였다. 이곳은 1984년 9월 2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되었다.
숲정이는 풍수지리상 전주의 지세가 북쪽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 중의 하나로 나무를 심은 숲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숲정이는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했다는 역사적 의미가 부각되면서 풍수지리적인 의미와 마을 명칭을 나타내는 지명으로서의 의미가 희석되고 있다.
정조 15년(1791)에 신해박해, 순조 1년(1801)의 신유박해, 순조 27년(1827)의 정해박해, 헌종 5년(1839)의 기해박해, 고종 3년(1866) 병인박해가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에는 전주에서만 22명이 순교하고, 그중 조화서 이명서 등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까지 모두 13명에 이르는 사람이 숲정이에서 처형되었다.
숲정이는 일찍이 유항검 일가가 순교한 이래 1839년의 기해박해, 1866년의 병인박해 때에도 수많은 신앙인들의 유혈이 있었다. 1839년 5월 29일에는 1827년(정해년)에 체포돼 13년간 옥고를 치른 신태보(베드로), 이태권(베드로), 이일언(욥), 정태봉(바오로), 김대권(베드로) 등 5명이 참수됐다.
1866년 12월 13일에는 소양면 신리골의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손선지(베드로), 한재권(요셉)과 성지동의 조화서(베드로), 이명서(베드로), 정원지(베드로) 등 여섯 명이 치명했다. 이들은 모두 1984년 5월 6일에 성인품에 올랐다. 1867년에는 김사집(필립보)을 비롯한 수명의 무명 순교자들이 이곳에서 치명하기도 했다.
특히 눈에 띄는 순교자는 한국 순교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동정부부이다. 호남의 사도 유항검의 며느리이기도 한 이 루갈다는 조선 왕조 태종의 14대손으로서 지봉 이수광의 8대손인 이윤하와 권일신의 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터운 신앙의 가계에서 자란 그는 성모 마리아를 닮아 평생 동정이기를 결심했다.
루갈다의 결심을 알고 있었던 주문모 신부는 호남 전교 길에 유항검의 집에 머물다가 그의 장남 중철이 역시 동정으로 살고자 하는 간절한 뜻을 알고 혼사를 주선했다. 그래서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와 같은 동정부부의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 후 4년 동안 오로지 천주의 정배가 되리라는 의지로 정결한 생활을 해 온 이들 부부는 신유박해를 만나 순교의 영광을 입게 되었다.
전주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한 유중철 요한의 처 이 루갈다가 20세의 꽃다운 나이로 참수되기 직전 옥중에서 친정으로 보낸 편지는 한국 천주교회사의 귀중한 보물로 여겨진다. 옥중에서 눈을 피해 그의 여동생과 올케에게 쓴 조각조각이 어느 교우 집에 곱게 간직돼“한국 천주교회사”에 소개됐다. 구절구절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는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순교의 영광을 택하였다.“고문이 시작되자 나는 천주를 믿음으로써 목숨을 바치겠다고 확실히 말했습니다. 형리는 나의 정강이를 때리고 수갑을 채워 옥에 가두었습니다. 내가 순교자가 된다면 모든 나의 죄는 없어지고 천 배나 만 배나 되는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는 복(福) 안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숲정이 처형장이 교회 사적지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초에 이명서 성인의 손자 이준명이 숲정이 순교 터를 매입하면서였다. 그 후 1935년 전동 본당의 이학수 회장이 그 자리에 십자가 순교비를 세웠고, 1968년 순교 복자 현양탑이 건립되었다.
1960년 전주교구에 의해 설립된 해성 중고등학교가 1992년 삼천동 신축교사로 이전한 뒤 그 자리에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본래의 순교 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본래의 장소에서 150m 정도 떨어진 아파트 단지 내에 새로 성지를 조성했다.
현재 성지는 해성중고등학교 체육관으로 사용하던 윤호관 앞에 조성되었다. 윤호관 내에는 1997년 전주교구 설정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설립된 전주 가톨릭 신학원이 자리하고 있다. 2004년 6월에는 성모자상과 십자가의 길 14처를 마련해 축복식을 가졌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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