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7/04/03 [00:09]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새만금일보 | 입력 : 2017/04/03 [00:09]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는 세월호(世越號)라는 이름에서부터 답을 찾아야 한다. 세월호의 세월 한자는 흔히 우리가 아는 < 흘러가는 세월-歲月 >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월호(世越?)는 < 인간 세(世) >, < 넘을 월(越) >, < 이름 호 혹은 부르짖을 호(?) >로 만들어진 배 이름이다. 흘러가는 세월(歲月)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세월(世越)이란 말은 < 세상을 초월한다 >라는 의미다. 부활을 말하며 구원파의 교리에도 등장한다.
물속에 담궈야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침례(浸禮)'를 뜻한다. 온 몸을 물속에 담궈야 세상을 초월한 부활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세월호의 침몰일은 4월 16일인데 하필 일부 기독교의 부활 주일도 4월 16일이다. 그리고 300명 공양설은 심청의 공양미 300석 등 많이 알려져 있다.
하필이면 세월호도 300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는 당초 2012년에 중고로 구입하여 배 뒤쪽을 다시 뜯어고치는 작업을 했다. 그 다음해 3월부터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항로로 운행을 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 바로 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한편 최태민은 영생교를 만들었으며 지난 1994년 5월 사망했다. 일부 신도들은 어떤 제물을 바치면 최태민이 다시 살아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최태민 20주기 천도제는 2014년 4월 20일이다. 그런데 그날은 일요일이고, 4월 16일 참사는 나흘 전인 바로 4월 16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참사 다음 달인 2014년 5월에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 중 한 구절이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고귀한 희생' 은 어떤 목적의식을 위해 희생되었다는 말을 암시한다.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이라는 말도 목에 걸린다. 배가 침몰하고 어린 아이들이 죽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이상하지 않는가. 또 다른 의혹은 사고 전날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모두 충격적인 일 30여 가지다.
사고 전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원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세월호 선장이 휴가로 교체되고 원래의 선장 대신 1등 항해사가 선장 노릇을 해도 된다는 법이 개정된다. 단원고와 계약된 선박이 당초 오하나마호에서 세월호로 변경된다.
1등 항해사를 대통령이 정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고 1등 항해사 신정훈이 입사했는데 그는 사고 직후 국정원과 통화 후 살인죄 기소에서 제외된다. 세월호 안전담당 조기장이 입사했는데 그는 무리한 출항을 감행한다. 다른 여객선은 모두 출항이 취소되고, 오직 세월호만 출항을 한 것이다.
참사 당일 전원 구조 완료 되었다고 보도를 한 지상파 방송사도 있었다. 초대형 군함 리처드호가 세월호를 구하러 전속력으로 왔으나, 해경이 그냥 돌려보내기도 했다. 사고 직후 모든 관련 연락은 국정원에게만 하도록 보고 체계가 만들어졌다.
최고 적재량이 987톤인데 2,143톤을 싣고 출발했으며 사고 직전인 8시30분경 세월호 CCTV는 전부 작동이 중단됐다. 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 16일 오전 정윤회는 어느 역술인의 사무실에서 4시간 동안 있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왜 역술인을 만났을까.
세월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불과 13일 만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 박 전 대통령 파면과 함께 세월호 인양이 이뤄지자 국민들은 '그동안 왜 못했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물론 세월호 인양 작업은 오랜 기간 준비 작업을 거쳐 이날 본격적으로 실시됐다.
세월호의 무게만도 8000톤이 넘는다. 기술적인 문제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해수부는 참사 후 1년이 지난 2015년 8월 상하이 샐비지와 계약했다. 그 뒤 인양 작업을 시작해 지난해 7월 완료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9개월가량이 지연됐다. 인양 방식이 중간에 변경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조서 검토를 무려 7시간 동안 꼼꼼하게 검토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국가 최고 지도자가 조서를 검토하는 것처럼 꼼꼼하게 구조 활동을 챙겼더라면 어땠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이날도 정송주 자매를 자택으로 불렀다. 3년 전 그날과 마찬가지로 이들을 불러 머리를 올렸다. 광화문 광장 한쪽에 쓰여 있는 글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 정말 거의 다 왔어. 조금만 기다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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