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동 벚꽃놀이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7/04/14 [00:42]

개암동 벚꽃놀이

새만금일보 | 입력 : 2017/04/14 [00:42]

누구나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봄이면 노오란 개나리가 휘휘 늘어져 앞 다퉈 피고 연분홍 진달래가 앞산과 뒷산에 피어나 우리의 마음을 한결 들뜨게 한다.
늘 반복되는 일상을 떠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굳이 ‘봄바람’이라고 불러도 좋다. 서울에서 한 때 잘 나갔다던 J라는 친구가 어쩌다가 남도 영산강 간척지까지 가 손에 익숙하지도 못한 농사를 지어 지금은 노후보장은 할 만 하다며 영암 월출산 밑 벚꽃이 만발하여 장관이니 놀러오라는 말에 대뜸 내일 갈 터이니 기다리라고 답했다.
다음날 눈이 벌어지자마자 주섬주섬 점퍼하나 걸치고서 아내와 함께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려 굽이굽이 용트림하는 영산강을 건너 불과 두 시간도 안 걸려 J친구 부부를 만났다.
북도는 아직도 몽실몽실 맺혀 있는데 남도 벚꽃은 소복 입은 월하의 미인처럼 활짝 피었다. 월출산 밑 왕인박사 사적지 주변 가로수마다 봉올봉올 소담한 벚꽃이 피어나 부지런한 벌들은 잉잉대며 맛있는 꿀을 따고 있다. 아침인데도 어디선가 몰려온 인파에 밀려 늙은 소나무가 우거진 정겨운 옛 마을을 뱅뱅 돌아 겨우 주차를 하였다.
30대 초에 산업시찰이라 하여 창원 신도시를 간적이 있었다. 가로수로 시내 곳곳마다 가냘픈 벚꽃 나무가 심겨져 있는데 그 어린나무에 몇 송이가 갓 피어있었다.
동승한 상당히 깨어있다는 선배에게 우리 변산반도에도 가로수로 벚꽃을 심으면 10여년만 지나면 명소가 될 것이라고 제안을 했더니만, ‘무슨 소리야! 일본 놈의 꽃을 심다니...’ 애국심을 말하는 통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후 마산과 창원을 다시 찾았을 때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벚꽃 터널을 이뤄 장관이었다. 봄이면 진해군항제 벚꽃놀이를 시작으로 창경궁 벚꽃놀이며 ‘일본 놈의 꽃?’을 보기위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지방마다 벚꽃축제를 벌이는 등 벚나무 심기 각축전이 벌어졌다.
일제 때 징용으로 간  제일교포형제가 사업에 성공을 하였는데 무엇인가 우리고장에 기념사업을 하고 싶다더니만 천년고찰 변산의 개암사 가는 3km 길가 가로수 벚꽃 길을 조성하였는데, 그분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 벚꽃이 개암저수지 길가 맑은 호수에 비쳐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동네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개암동 벚꽃놀이 축제’를 한다며 초대장을 보내왔다.
그 날 행사내용으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다듬이 방망이를 두드리며 박자에 맞춰 아리랑을 부르는가 하면 어린 꼬마들이 나와 지 몸보다 큰 장고를 매고서 어설픈 굿거리장단에 춤을 덩실덩실 추는 재롱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개암동 벚꽃놀이’는 관 주도의 관행을 벗어나 순전히 동네 분들로 이뤄져 출향한 자녀,손들이 주말을 기해 고향에 계신 연로한 부모님을 만나는 동네 축제라는데 그 의미가 크다.
먹거리도 동네 분들이 나서서 막걸리와 햇쑥으로 빚은 송편이며 파전 등으로 대신하였는데 더욱 발전하면 부가가치를 노릴 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구상 할 수가 있다.
지방자립도 마저 열악한 지방마다 축제 붐이 일어나 귀중한 지방비를 낭비하고 빚을 지면서까지 실속 없는 축제를 벌이는 예산낭비를 하는 관제축제보다 이날의 ‘개암동 벚꽃 놀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겠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개암사와 우금바위(일명:복신굴)와 주류성에 얽혀진 1300년 전 백제 마지막 부흥운동의 항전지라는 역사 문화사적지로 접목시켜 한 차원 발전시키는 벚꽃놀이가 된다면 금상첨화가 되리라 본다.
주어진 일에 열심을 내는 것도 좋지만 금번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벚꽃과 개나리와 진달래가 다 지기 전에 가까운 꽃길을 찾아 마음의 휴식과 여유로움으로 내일을 위한 충전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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