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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비석(多佳碑石)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5/24 [00:39]


다가비석(多佳碑石)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주천서로 235(중화산동1가) 다가공원(多佳公園) 안에 있는 여러 비석들을 가리킨다. 공원 입구 주차장 한쪽에는 무려 26기의 각종 불망비(不忘碑)와 선정비(善政碑)가 줄지어 서있다. 전주천변 쪽으로도 5-6개가량의 각종 송덕비(頌德碑)와 기념비가 들어서 있다.
공원 정상 부근에는 가람 이병기의 시비(詩碑) 그리고 충혼탑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선정비 등 각종 비석들은 당초 전라감영 정문인 포정루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60년경 도로정비 사업을 하면서 천양정 앞 전주천변에 옮겨졌다.
그 뒤 1990년경 전주천 정비사업으로 다시 현재의 다가공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조선 후기 영의정을 지낸 김좌근(1797~1869)을 비롯 1785년에 세워진 관찰사 이재학 불망비, 영조 때 우의정을 지낸 원인손의 불망비 등 200년을 훌쩍 넘은 여러 선정비와 불망비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다.
김성근 선정비도 이곳에 있다. 전라도 관찰사, 판관들, 기타 많은 인물들의 송덕비가 줄서 있다. 대부분 송덕비 글씨는 오랜 세월에 퇴색되어 흐려지면서 잘 보이지 않는다. 하옥(荷屋) 김좌근 송덕비는 가장 우측에 큰 자태를 자랑하고 서있다.
김좌근은 조선 23대 순조 비(妃) 순원왕후의 오빠로 철종 때 예조판서·형조판서·호조판서·훈련대장 등 고위직을 역임했다. 안동김씨 가문 세도정치의 정점이었던 김좌근은 1853~1963년 사이 무려 세 번이나 영의정을 지냈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면서 실록총재관으로 물러났다.
한편 경기도 이천시 청백리로 393번길 100-131(백사면)에 있는 김좌근의 고택과 주변 대지 10만1500㎡은 후손들에 의해 몇 년 전 서울대에 기증됐다. 이 건물은 김좌근의 아들 김병기가 1865년(고종 2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부친의 사후엔 묘지 관리를 겸한 별장용으로 활용했다.
다가공원 정상 부근에는 시조 문학과 국문학의 거목인 가람 이병기 시인의 시비가 있다. 다가산 정상에는 일제 강점기 시대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시키고자 노력한 시민들의 뜻을 기리고자 세운 충혼탑 호국영령비가 자리잡고 있다. 6.25전쟁 당시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수많은 호국충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51년에 건립한 호국지사 충령비도 있다.
공원 내 천양정에는‘천양정(穿楊亭)’과‘소선계후(紹先啓後)’편액과 주련이 있다. 이는 모두 효산(曉山) 이광열(李光烈:1885-1966)이 쓴 글씨다. 공원 주변 천변 쪽으로도‘경찰국장이공순구기념비’가 있다. 글씨를 쓴 사람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세운 사람이 전주 기령당원과 천양정원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단기 4288(서기1955)년에 세웠다고 표기되어 있다. 글씨의 서체 상으로 보면 이 비석도 효산 이광열 글씨가 틀림없다. 이 당시는 효산 이광열이 기령당과 천양정에서 중책을 맞고 있었고 이순구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효산은 고종 22년(1885) 전주시 교동에서 전주이씨인 양도공(태조 이성계의 형 원계의 손자)의 14대손인 좌승지 우송(友松) 이동식(李東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사숙(私塾)에 입학하여 한문과 경서를 공부하였다.
교육자 겸 향토사학자로 활동하면서 민족의 자긍심을 굳건히 지켰다. 글씨와 그림(사군자) 분야에 뛰어나 후학도들을 교육하였고, 또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10년에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자 일제의 관리생활을 과감히 버렸다. 그리고 사립인 함육학교(현 다가공원에 있었음)에서 교편을 잡았다.
함육학교가 폐교되자 1913년에 다시 전주제2공립보통학교(후에 완산초교가 됨) 교사로 근무했다. 1966년 교육, 문화, 예술에 끼친 공로로 전주 시민문화장(市民文化章)을 수여했다. 그리고 같은 해 음력 11월 4일 동완산동(현 완산초 부근) 자택에서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전주시민장(市民文化葬)으로 5일 만에 인후동 가잠이 부락 뒷산에 안장되었다. 그 뒤 도시개발로 구이면 정자리로 이장했다가 최근에 다시 전주시 효자동 전주대 뒷산 선영묘 아래로 이장했다. 묘비는 작촌 조병희가 지었으며 1986년 10월 29일에 세웠다.
1933년에 향토사학자로‘전주부사’를 편찬했으며 전주향교의 전교와 전주 기령당의 당장(堂長)과 천양정의 사장을 역임했다. 전주시 완산동 기령당에도‘송석정(松石亭)’편액과 진안군 성수면 가수리‘훈련대장전공가재신도비명(全東屹)’도 모두 그의 작품이다.
효산은 전주시 다가동 자택에서 서예학원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한묵회(翰墨會)를 창설하여 많은 후진들을 지도하였다. 한묵회에서 배출된 인물로는 최상하, 민윤식, 명대혁, 김용식, 원금홍, 송진주 등이다.
후세인들이 그의 업적을 찬양하여 다가공원 입구에 커다란 비석을 세워서 그의 정신을 고양하고 있다. 글은 작촌 조병희가 지었으며, 글씨는 수제자인 계원 민윤식이 한문과 한글을 혼용하여 썼다. 다가공원의 천양정 입구에 서있는‘효산이광열선생기적비’가 바로 효산 이광열에 대한 업적을 찬양한 비석이다.
다가공원과 그 주변은 전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숨어있는 곳이다. 전주시를 남에서 북서로 반월형으로 휘감고 도는 전주천을 따라가다 보면 바위벼랑이 냇물에 불쑥 내민 곳이 많다. 그 중 수목이 울창하고 물에 비치는 바위의 절경이 볼 만하여 일찍부터 전주팔경으로 꼽은 곳이 바로 다가공원이다.
5월이면 벼랑에는 하얀 꽃송이가 피어나는 이팝나무 군락으로 유명하다. 다가공원에 이르면 천년 전주를 상징이라도 하듯이 300년이 넘은 고목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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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24 [00:39]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