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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재실(安東齋室)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7/05 [00:09]


안동재실(安東齋室)은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하가지구에 있는 안동재(安東齋)를 가리킨다. 재실(齋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이다. 재각(齋閣), 재궁(齋宮) 혹은 재실(齋室)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재궁(齋宮)은 예전에, 각 마을에 있는 문묘를 이르던 말이다.
안동재(安東齋)는 추탄(楸灘) 이경동(李瓊仝.1438∼1494)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어진 집이다. 안동재(安東齋)는 추탄 이경동의 흔적을 짐작케 한다. 평범한 전형적 목조건물이지만 도시 중심부에 있어 한국의 숭조사상을 설명하는 데는 귀중한 존재이다.
전주이씨는 태조 이성계 이하를 선원(璿源)이라 하고, 그 위는 선계(先系)라 한다. 선계 시중공 이단신 후손 이경동은 전주 출신이다. 궁중 봉직 30년 중 성종을 모신 20년 동안 대사헌과 병조참판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특출한 중신이다.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상가․하가 지구는《호남읍지》전주부 산천(山川)편 마지막 부분에‘참판평(參判坪)’으로 나온다. 주석에‘이경동 평’이라 했다.‘하가지구 모두가‘이씨네 들판’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전주이씨 시중공파 후손들이 많이 살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많이 떠났다. 충혼비가 서있는 가련산은 추탄공파 종산이다. 서록에 추탄 부모 묘와 할아버지 단소(壇所)가 있다.
전주 가련산에는 6.25 때 전사한 학도병들의 넋을 기리는 충혼탑이 있다. 가련산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마을들이 자리잡고 있다. 북쪽 산자락에는 하가동과 아랫가르내, 서쪽 자락에는 웃가르내, 남쪽자락에는 사평이 있다.
아랫가르내의 다른 이름은 하가리(下可里)다.
아랫가르내 북쪽으로 가르내에 놓인 다리가 추천교(楸川橋)다. 전주천은 양편에 고사뜰과 사평뜰을 두고 북진하다가 고사뜰 북쪽 꼭지점에서 삼천과 만나 가래여울을 형성한다. 전주천은 건산천의 물길을 받아 삼천과 합류된다. 이곳부터 만경강까지 이어지는 물줄기를 추천(楸川) 혹은 가래여울, 가리내(가르내), 사탄, 추탄(楸灘)이라고 부른다.
가래여울에 놓인 다리가 바로 추천교다. 추천교는 약 400여 년 전 추탄(楸灘) 이경동(1438∼1494)의 효행을 기려 명명된 이름이다. 일찍이 가르내(현재의 하가마을) 일대는 전주이씨들의 집성촌이었다. 호가 추탄(楸灘)인 전주이씨 후손 가운데 이경동의 호가 바로 추탄(楸灘)이다. 이경동의 아버지 달성공(達誠公)이 어느 날 밤 중병으로 사경을 헤매었다.
이경동은 급히 인근 비석날(현재 팔복동 버드랑주)에 사는 명의한테 찾아가 처방약을 받아들고 귀가를 서둘렀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서 전주천이 삽시간에 범람했다. 이경동은 앞뒤 가릴 것 없이 물을 건너기 위해 전주천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물살이 양쪽으로 쫘악 갈라지면서 길이 열렸다. 홍해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다급한 이경동은 한 걸음에 집으로 달려왔다. 그의 부친은 얼마 후 기사회생했다. 물론 냇물은 추탄이 건너간 다음 다시 합쳐졌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자 그의 효성에 하늘도 감동했다며 칭송이 자자했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나무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가 바로 추탄(楸灘)의 추(楸) 자와 내 천(川)을 딴 추천교(楸川橋)다.
추탄 이경동은 황방산 아래 마전 마을(지금의 서신동) 출신이다. 추탄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황강서원에 제향된 황강 이문정의 후손이며, 조선의 개국공신 이백유의 손자다. 그는 우승지 벼슬을 지낼 때 왕비 윤씨의 폐비를 반대하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이경동은 대사헌, 예조참판, 병조참판, 동지중추부사, 동지경연사 등의 벼슬을 역임한 후 낙향하여 추천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말년을 유유자적하며 보냈다.
팔복동 황방산 밑에는 이경동의 효행을 기린 비가 있다.‘가선대부, 병조참판겸 지의금부사 사헌부 대사헌 추탄선생 조대비(嘉善大夫 兵曹參判兼 知義禁府事 司憲府 大司憲 楸灘先生 釣臺碑)’라고 새겨져 있다.
전주 시내 쪽에서 추천교를 지나면 오른쪽에 유명한 족발집들이 몇 집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팔복동 공단에 다니는 사람들뿐 아니라 전주시민들이 즐겨 찾아 맛을 즐기는 곳이다.
한편 아랫가르내의 동쪽으로는 호반촌이 있다. 1970년대 택지조성사업 때 만들어진 동네다. 아랫가르내에서 가련산 자락을 따라 나있는 길이 있다. 이곳으로 내려 가다보면, 아랫가르내를 막 벗어나서 조그만 다리가 하나 있었다. 이 다리를 구성다리라고 했다. 지금은 모습을 볼 수 없다.
이경동은 50넘어 큰 바위 아래서 낚시질을 즐겼는데 세내(三川:삼천)와 전주천이 만나는 팔복동 지금 추천대(楸川臺) 물가였다. 지금도 조대(釣臺)라 새겨진 바위 글씨가 있다.‘오모가리탕’을 해석하면 뒤의‘가리’는 하가리, 상가리 지명과 일치한다. 그래서 이곳이 추탄 옛 마을이라는 설이 전해 온다.
《뇌계집》에는 유호인(兪好仁:1445∼1494)이 지은 이경동 모친 경주이씨 묘지가 나온다. 이경동 모친은 1491년 2월 28일 86세에 서울 집에서 별세했으며 경상도 선산‘냉산(冷山) 서록’에 모셨고 장자 원손(元孫)이 있었다.
생전에 이경동 모친은 성종 21년(1490) 9월 9일에 대궐에서 베푼 노인잔치에 초청되어‘정경(貞敬)부인’봉호를 받았다. 그는 머리는 희었지만 건강했으며 나아가고 물러남과 사양하고 대함이 규범에 어긋나지 않았다. 훗날 이경동 모친의 묘소는 전주로 옮겼다. 이경동 양친 묘는 전주 가련산 서록에 있다. 팔복동 추천대 가까이에 이경동 신도비가 있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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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05 [00:09]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