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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정국의 백의사(白衣社)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7/25 [07:23]

백의사(白衣社)는 해방 이후 미 군정기에 조직된 전문테러단체다. 중국 국민당의 남의사를 모방해서 만든 이 단체는 1945년 11월경 북쪽에서 월남한 청년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조직되었다. 백의사는 당시 혼란한 상황에서 수많은 정치인들을 암살하고 테러를 자행했다. 우두머리인 염동진은 잠자리에서도 검은 안경을 벗지 않는 장님으로 전해진다.

광복 후「이승만의 테러조직은 삼우회(三友會), 김구의 테러조직은 백의사(白衣社)」라고 알려졌다. 실제로 백의사는 백범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백의사는 임시정부 내무부장 신익희가 조직한 '정치공작대'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신익희의 '정치공작대'는 주로 북한에서 '반탁, 반공 공작'을 하던 조직이었다. 백의사는 이성렬, 김정의, 김형집, 최기성, 백시영, 이희주 등으로 구성된 '대이북집행부서'가 조직되어 있었다. 이들은 신익희의 '정치공작대'와 연합했고, 1946년 초반 북한으로 밀파되었다.

백의사에는 평양 모란봉 아래 영명사(永明寺)라는 절의 박고봉이 있었다. 그는 백관옥, 선우봉, 박진양 등과 함께 1945년 9월 3일 조선공산당 평남지구위원장인 현준혁을 백주 대낮에 암살한 바 있다. 이 사건이 발각되자 관련자 대부분은 1945년 9월부터 11월에 걸쳐 월남했다.

미군의 CIC 비밀문건은 여운형, 장덕수의 암살범들은 백의사의 암살특공대라고 주장한다. 해방 이후 백의사의 테러에는 신익희의 정치공작대, 미국 CIC 방첩대가 밀접하게 연관된다. 1946년 3.1절 평양 테러 당시에도 신익희는 거처인 낙산장(駱山莊)에서 본인이 창설한 정치공작대 단원과 함께 테러를 지휘한 바 있다.

당시 백의사의 김제철은 기념행사에 나온 김일성을 권총으로 쏘려 했으나 미행이 붙어서 실패했다. 그리고 김형집이 안전핀을 제대로 뽑지 않고 수류탄을 던지는 바람에 김일성에게 떨어졌을 때는 터지지 않았다. 소련인 노비첸코가 다시 집어서 던지려는 순간 터지면서 대신 그의 눈과 한쪽 팔이 절단된다. 그 뒤 노비첸코는 북한에서 인민의 영웅으로 대접을 받았다.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에서 김구의 암살과 관련된 문서가 발굴된 적이 있다. 이 문서는 미국의 정보장교 실리가 백의사의 책임자로부터 얻은 정보를 토대로 작성했다. 안두희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1949년 6월 29일치 문서 , 그리고 김구를 수반으로 하는 쿠데타 정보를 담고 있는 1948년 11월 11일치 서한인 문서로 구성돼 있다.

해방 정국에서 발생한 암살사건으로 숨진 주요 인물은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김구 등이다. 이 사건에 백의사가 모두 개입해 있었다는 점을 이 문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여운형의 암살범은 송진우 암살범과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중요한 건 송진우와 장덕수 암살사건이다. 당시 미군정은 두 사람의 암살사건의 배후에 김구가 관여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장덕수 암살 사건의 경우 김구를 재판정에 세우면서까지 그가 관련되었음을 밝히고자 했다. 김구가 장덕수 암살사건으로 재판정에 선 것은 남북협상에 참여하기 직전이었다. 김구는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김구가 그토록 쉽게 암살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소 김구와 백의사 단원들 간의 관계가 돈독하여 아무런 의심도 제지도 없이 쉽게 백범 사무실을 드나들을 수 있었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안두희는 미 방첩대 요원이었다.

우익 군사파벌이 쿠데타를 일으켜 이승만 정부를 전복하려는 음모의 형성단계에 김구와 염동진이 관여했음을 보여준다. 안두희는 김구 암살 뒤 법정에서“김구가 여수·순천사건을 통해 정부를 전복하고 북한을 이롭게 하려고 했다”고 진술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시켰다.

미군정은 이미 46년과 47년 두 차례에 걸쳐 김구가 쿠데타를 시도했다고 판단한 경험이 있다. 염동진의 정보는 김구가 북한과 대결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에 위험한 인물이었음을 보이기도 한다. 결국 미국은 한국 내 갈등을 담고 있는 이 문서들을 통해 김구 암살의 배경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백의사의 뒤에는 또 다른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백의사는 뚜렷한 정치 목적을 가지지 않은 파시스트적 색채의 테러단체다. 백의사에 테러를 요청할 수 있는 보다 고위층의 다른 배후가 있을 것이다. 배후에 미국이 있었는가, 또는 한국 내의 고위층 지도자가 있었는가의 여부를 그대로 밝히기는 어렵다. 해방정국에 얽힌 숱한 역사의 진실은 과연 어디까지 밝혀질 것인가.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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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25 [07:23]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