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完州)에 빠지다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7/10/18 [10:01]

완주(完州)에 빠지다

새만금일보 | 입력 : 2017/10/18 [10:01]



 

 게으른 여자처럼 길게 누워있는 추석 연휴. 오래 여행할 수 없는 형편이다 보니 막히는 도로에 자유롭고 피곤한 걸 피하려면 나들이하기엔 대둔산 쪽이나 동상면 쪽이 제격인 듯싶었다.  들판은 온통 색을 입고 물드는 중이었다. 허옇게 부대끼며 포개지는 억새, 꽃보다 붉고 풍요로운 감, 겸손하게 고개 숙인 황금의 벼 그리고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 나뭇잎은 꼭 시인의 표현이 아니라도 그리운 사람을 그립게 한다.

 

 경천 화암사, 그곳에도 벌써 가을이 물들고 있었다. 시인 안도현이 ‘잘 늙은 절’이라고 극찬했던 이 작은 절은 사계절 내내 정갈하다. 낡아서 애잔한 우화루의 표정은 미망인처럼 담담하다. 말수 적고 가만가만 움직이는 차분한 여자 같은 화암사는 잠시 세상사를 잊고 우화루의 창을 통해 네모난 작은 경치를 하염없이 바라만보고 와도 좋은 절이다. 고산 미소시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우 맛은 부드럽고 고소했다. 대하리 저수지를 휘감고 동상면 수만리를 끼고 돌았다. 가뭄 탓인가 위봉폭포의 작은 물줄기가 아쉬웠다.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청량한 바람을 맞으며 나들이의 절정을 느꼈다. 우리 고장에 이토록 수려한 경관의 폭포가 있고 정다운 마을과 운치 있는 절이 지척에 있다는 게 큰 축복 같았다. 해질녘 소양 쪽 갤러리에 들렀다. 예전엔 조용한 갤러리였는데 오랜만에 와보니 명소가 된 듯 사람들로 북적였다. 갤러리 앞 저수지엔 건너편 산이 물속에 빠져 거꾸로 비치고 있었다. 참으로 멋진 풍광에 행복의 실체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갤러리에는 거대한 맨드라미 그림이 걸려있었고 모든 그림이 오늘 기분처럼 행복한 색깔들이었다. 완주는 이 보배로운 것들을 모두 숨기고 홀로 겸손했구나. 아니 항상 느끼는 거였는데 오늘 더 빛났는지도 모르겠다.

 

 문화의 도시 완주 ‘이름값’

완주군, 대한민국 “책 읽는 지자체 대상” 2년 연속 수상. 며칠 전 신문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연휴 때 완주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터라 더욱 놀랍고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이런 상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그런 자랑스러운 상을 2년씩이나 연속 수상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완주군은 민선 6기 3년 동안 도서관 인프라 지속적 확충, 삶의 질을 높이는 교육과 문화생활의 중심 역할, 책 읽는 지식 도시 완주 사업을 통한 민간 협력 활성화, 관 내외 도서관 협력 네트워크 구축 및 지역 주민 독서회 활성화로 주민 역할 강화, 도서관 전문 서비스 등을 추진했고 이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완주군의 도서관은 작은 도서관을 포함해 현재 총 20관이며 1인당 장서 수는 3.23권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도서관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완주의 매력에 빠져버린다. 놀랄 일도 아니지 싶다. 그 수려한 풍광의 군민이라면 누구든 그런 정서에 묻힐 수 있겠다 싶었다.

 

 미국 평론가 마이틸리 라오는 “한국인들은 책도 읽지 않으면서 노벨문학상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식자율(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비율) 98%에 달하고 출판사들은 매월 4만권의 새 책을 내놓지만 30개 상위 선진국 가운데 국민 1명당 독서 시간이 가장 적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고 꼬집었다. 완주군의 이런 정서와 독서 성과를 마이틸리 라오가 알았다면 좀 민망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완주군의 독서 열정을 보면 퇴보하는 한국의 독서문화를 걱정하는 게 왠지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더구나 완주는 2016년 대한민국 독서 경영 ‘우수 직장 인증제’에서도 최고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 가을, 더 스산해지기 전에 삼례문화예술촌 안에 있는 책 박물관과 책공방 북아트센터에 가서 다양한 체험과 책의 매력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근처의 삼례 책마을에 가보면 대형 서점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고서와 사진 등 10만여 점의 도서가 구비되어있다. 특이한 것은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서점이 11개나 있다고 한다. 참으로 놀랍다. 이정도면 미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완주에서 나올지도 모르겠다./최화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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