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와 벽골제를 재조명하라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7/11/28 [19:20]

장보고와 벽골제를 재조명하라

새만금일보 | 입력 : 2017/11/28 [19:20]

장보고와 김제 벽골제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장보고의 해양 개척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장보고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은 이미 오래됐다. 장보고 사후 청해진 유민들이 벽골제를 중심으로 대거 흘러든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벽골제를 역사적 현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청해진 유민의 벽골군 유적지 관련 지표조사도 철저히 해야 한다. 벽골제는 4세기경 백제에 의해 축조된 저수지로서 고대에 만들어진 최대의 저수지다. 벽골제에는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신털미산은 벽골제 공사에 동원되었던 일꾼들이 신에 묻은 흙을 털거나 낡은 짚신을 버린 것이 쌓여 산을 이룬 곳이다. 되배미는 수많은 일꾼을 일일이 셀 수가 없어서 500명이 들어가는 논을 만들어 사람의 수를 헤아린 말이다. 강제 노역이 아니고서는 되배미와 신털뫼가 생길 수 없다.

장보고 당시 청해진에는 병력과 항해 선원, 선박수리 기술자, 상단 상인, , 그리고 주민 등이 8만여 명에 이른다. 도자기 종사원, 병마 목장, 축사 관리인 등도 10만 명 이상이다. 김제(옛 벽골군)는 장보고가 피살된 10년 후인 851년 완도 지역 저항 세력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킨 지역이다. 장보고와 관련된 유적지 중 전남 완도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다.

벽골제는 장보고가 역사에 미친 영향과 장보고 사후 그 세력의 활동 상황 등을 후대에 교육시킬 수 있는 역사적인 지역으로 평가된다. 벽골제에는 수리민속 유물 전시관등이 건립돼 농경문화의 산교육장이 되고 있다. 특히 지평선축제의 주 무대가 바로 벽골제이다.

벽골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장보고의 업적과 정신을 알리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기념비 하나만 세울게 아니다. 완도군과 보다 긴밀하게 협조해 벽골제를 장보고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역사공원 조성을 비롯 청해진 유민 이주 기념사업도 벌여야 한다.

완도를 중심으로 한 청해진 유민들은 해상왕 장보고가 죽은 뒤 벽골군(김제의 옛 지명)에 강제 이주 당한 것으로 각종 사료에 기술돼 있다. 보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청해진 유민 이주지에 대한 이미지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 벽골제 '장보고 유적장'을 잘 활용해야 할 때이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