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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호남정맥-천황지맥, 남원. 순창 노적봉(露積峯567.7m)
최명희 혼불 문학관을 품은 풍요로움의 길지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3/16 [09:25]

▲ 노적봉 표지석     © 새만금일보
 
   ▲ 개요와 자연경관

암벽이 병풍을 두른 듯한 닭벼슬봉(鷄冠峯), 군자(君子)다움과 풍요로움의 상징인 노적봉(露積峯)의 정기를 받아 생성된 길지에 터를 잡은 최명희 소설 혼불의 배경지 노봉(露峯)마을이 유명하다. 최명희는 소설 혼불에“서북으로 비껴 기맥이 흐를 염려가 있는 노봉마을 서북쪽으로 흘러내리는 노적봉과 벼슬봉의 산자락 기운을 느긋하게 잡아 묶어서 큰못을 파고, 그 기맥을 가두어 찰랑찰랑 넘치게 방비책만 잘 강구한다면 가히 백대천손의‘천추락만세향(千秋樂晩歲享)을 누릴 만한 곳이다”고 예찬했다. 전라감사 이서구도 남원으로 행차하다 춘향로(박석고개)에 이르러 노적봉을 바라보며 군자가 기거할 길지(君子可居地)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을 정도다.


▲ 노적봉에서 본 남원     © 새만금일보

송림이 울창한 노적봉은 일명 서산(西山)으로 불린다. 에부터 아담한 산으로 가을철에 참나무 단풍이 절정을 이뤘고고 한다. 산의 형상이 마치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노적봉의 암릉의 수려한 경관과 함께 울창한 송림에서 송이가 많이 자라며, 산림욕코스로 각광받는다.

노적봉에 연관된 마을 유래와 유적을 고찰해 보면 우리고유의 지명들이 1914년에 일제에 의해 행정통폐합이란 미명아래 한자로 교묘하게 둔갑됐음을 알 수 있다. 사매면 서도리 수촌은 7백년 전 흥덕장씨가 풍악산 삼선암 부근에서 이사와 형성된 마을로 송림이 울창해서 숲산 또는 숲말로 불렸는데, 수촌(藪村)으로 둔갑됐다. 서촌(書村)은 오수의 토호 이씨가 노적봉의 정기에 반해 마을을 세웠으며 서도역이 있어 역촌으로 부르다가 서촌으로 바꿨다. 노적봉이 글월문(文)형태로 틀을 잡는 품속에 안긴 계수리 수동은 아홉 신선이 살아서 구선동(九仙洞) 또는 구수(九壽)로 불렸다. 삭녕 최씨가 선비들이 살만한 곳(君子之居一地)이라 하여 집성촌을 이뤘으며, 고려시대에 세운 노유재(제각)와 수령이 15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다. 아무튼 노적봉을 길지로 칭송했던 선인들의 예견은 적중한 셈이다.

노적봉은 높이 567.7m로 순창군 동쪽에 솟은 산으로 섬진강의 지류인 오수천과 요천의 분수령이다. 노적봉은 사방이 탁 트여 덕유산, 무등산, 팔공산, 만행산, 원통산, 용골산, 회문산 등이 한눈에 잡히는 훌륭한 조망대다.


▲ 노적봉에서 본 교룡산     © 새만금일보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우리전통지리서인 <<산경표>>로 고찰해 본 노적봉의 산줄기는 이렇다. 산줄기는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가 북서쪽으로 뻗어가다 팔공산을 지나면 곧바로 섬진강의 분수령인 섬진2지맥(천황봉-고리봉 산줄기)을 나뉘어 놓는다. 이 지맥이 남으로 내달리며 비행기재(718번도로), 묘복산, 만행산 천황봉, 갈치(721번도로), 밤재(17번국도)를 지나서 다시 두 갈래를 친다. 좌측으로 교룡산 줄기를 보내놓고, 노적봉을 지나서 풍악산, 응봉을 솟구쳐 놓고 문덕봉과 고리봉으로 뻗어간다. 노적봉의 물줄기는 동으로 요천, 서로는 오수천의 분수령이 되며, 섬진강에 합수되어 남해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전북 남원시 사매면과 순창군 동계면 수정리 경계에 있다.


▲ 문화유적 및 명소
▲ 최명희 혼불문학관     © 새만금일보

[최명희 혼불문학관]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노적봉의 정기를 받아 1400년전 삭녕 최씨가 집성촌을 이뤘던 노봉마을은 노봉서원이 있어 서원리(書院里)로 불리다가, 서원리와 도촌리를 통합해서 서도리(書道里)로 바꿨다. 서도리는 노봉, 수촌, 서촌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근 최명희 부친의 고향이자 민족지적대하소설의 배경지인 노봉마을에 혼불문학관이 건립돼 탐방객들로 분빈다.

남원시 노봉마을에 위치한 최명희 혼불문학관은 혼불공원과 주차장, 문학전시관과 관리관이 갖추어져있고, 부대시설로 물레방아, 분수연못, 실개천, 청호저수지, 그네 등이 있다. 주요 전시물로는 효원의 혼례식, 강모 강실의 소꿉놀이, 효원의 흡월정, 액막이 연날리기, 인월댁 베짜기, 강수 영혼식, 쇠여울네 종가 마루찍기, 청호저수지 고갈, 춘복이 달맞이, 청암부인 장례식의 장면, 소설 <<혼불>>소개, 생전 작가 인터뷰의 매직비션, 작가의 유품 등이 있다.


▲ 혼불의 천추락만세향 비     © 새만금일보

일본 동경교대에 유학을 했던 부친 최성무와 유학자 허완의 장녀인 허묘순의 2남4녀중 장녀로 태어난 최명희는 집안 배경부터가 문학소녀로서의 꿈과 자질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여기에 부친의 고향인인 노봉마을을 자주 드나들며 혼불의 소재를 발굴하고 혼신을 다해 소설을 쓴 작가의 불굴의 투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무에 그리 바쁘다고 향년 51세(1998년)로‘아름다운세상 잘 살고 간다’는 유언을 남기고 혼불처럼 하늘나라로 홀연히 여행을 떠났다.
 
▲ 노적봉 안내도     © 새만금일보

▲ 산행안내

o 1코스 : 최명희혼불문학관-호성암-노적봉-최명희 혼불문학관( 5km, 2시간)

o 2코스: 혼불문학관-호성암-닭벼슬봉-노적봉-신재-풍악산-매봉(응봉)-423.4봉(십자봉)- 비홍치(14.6km, 7시간30분)

▲ 고인돌바위, 호성암 마애불상, 임릉길     © 새만금일보

 혼불문학관에서 임도를 지나 호젓한 산길을 30분쯤 오르면 시누대가 울창한 호성암(虎成庵)터에 닿는다. 한국지명총람과 남원 마을유래에는 고려초에 도선국사가 터를 잡아 주어암자를 창건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사포대사가 고통으로 울부짖는 호랑이의 입에 박힌 가시를 뽑아주자 호랑이가 그 보답으로 터를 잡아줘서 호성암(虎聲庵)으로 불린다는 설도 있다. 그 호성암은 한국전쟁 때 소실돼 흔적이 없고 넓은 터에 물맛 좋은 석간수가 목마른 중생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거대한 암벽에는 고려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원형이 잘 보존된 마애불상(전북문화재 146호)이 새겨져 있는데, 4.5m의 활짝 핀 연꽃을 두 손으로 받들고 명상에 잠겨 있는 듯한 모습에서 평온함이 느껴진다.        

호성암 터에서 울창한 소나무 숲을 이루며 조망대가 연이어 진 능선을 가노라면 병풍을 두른 듯한 암봉이 닭벼슬 형상의 계관봉(鷄冠峯)이다. 소나무가 용트림하는 암릉에서 산림욕을 즐기며 혼불문학관에서 2시간 쯤이면 헬기장과 삼각점이 있는 노적봉(567.7m)에 닿는다. 


▲ (좌)노적봉 정상, (우)풍악산 정산.jpg     © 새만금일보

 

▣교통안내

[드라이브코스]

o 완주광양고속도로 오수나들목-(17번국도)사매-서도역-혼불문학관

o 완주광양고속도로 남원분기점-24번국도 대산면신계리-오동

o88고속도로남원나들목-17번도로-사매면-서도-혼불문학관

o 전주-(17번국도)오수-(719번도로)동계-내령마을

[대중교통]남원시내버스 633-1001, 동계정류소 652-4063]

o 남원-노봉리: 시내버스 운행 o 남원-대산면; 시내버스 운행 

/김정길<전북산악연맹 부회장, 모악산지킴이 회장, 영호남수필문학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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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16 [09:25]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