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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집에서 살고지고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3/29 [17:26]



한평생을 교육자로 지내다가 정년을 한 고향 친구 L선생과 K등 셋이서 집을 떠나 굳이 말하여 일상에서의 탈출이라고나 할까. 어느 단체의 연수라는 목적으로 한방에서 2박3일을 먹고 마시고 둥글며 토론하는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경칩이 지나니 남녘에는 매화가 피어나 봄이 성큼 다가 왔다고는 하지만 태백산 줄기 오지의 지형적인 영향인지 그 곳에 가던 그날은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때 아닌 흰 눈으로 변하여 대설주의보까지 내려 우리를 방안에 가둬놓고 말았다. 짧은 3일간의 일정이 훌쩍 지나 아쉽게도 각자 집으로 귀가를 하면서 또 이런 기회를 만들어보자고 다짐을 하였다. 헤어진 지 한 주일이 지나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어느새 그리움이 우정으로 싹텄는지 지나는 길에 혼자 있다는 L의 시골 옛집을 찾았다. L이 낳고 성장한 5칸 한옥은 부친의 땀과 정성이 깃든 결정체로 몇 대째 이어온 부친의 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옛집이었다. 잔디가 깔린 앞마당 화단에는 액운을 막아준다는 해묵은 호랑가시나무가 떡 버티고 있고, 늙은 감나무는 반쯤 누워 지주 대에 의지하고 있다. 남향받이 곳간 채에는 취미로 모았다는 이름 모를 공구들이 진열되어 있고, 칙칙하게 신우대로 가려진 사랑채는 한 때는 동네 사랑꾼들로 북적였다는데, 지금은 처마 끝 기와장이 깨져 빗물이 새어 들어, 연자가락 끝이 썩어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안채 안방에는 부친의 인물사진을 L이 손수 찍어 벽에 걸어 놓았고, 당신 생전에 쓰시던 돋보기안경이며 손때 묻은 소지품들이 작은 유물전시관처럼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어 하루에도 한 두 번은 들락거리니 부친께 매일 인사를 드리는 효자인 셈이다. 점심때가 훨씬 지났는데도 지나는 길손을 붙들고 따끈한 차 한 잔을 나누기를 좋아하는 그 친구는 나를 만나 집 안팎을 소개 하느라 오후 세 시가 훌쩍 지나버렸다. ‘ 이 사람아 점심이나 들게나...’ 때마침 L과 한마을에 살았던 K 친구가 왔다. 또다시 세 사람이 모인 셈이다. L선생이 혼자 사는 법을 터득했는지, 능숙한 요리 솜씨로 찐한 복어 국 한 냄비를 뚝딱 끓여 내 놓았다. 미나리향이 그윽한 맛있는 안주에 빠질 수 없는 한 잔의 술은 그야말로 달콤한 우정을 마시는 감로주였다. 한잔이 또 한잔이라 몇 순배를 도니 취기가 돌았다. 술은 취하라고 마신다지만 취하면 평소에 않던 허튼소리도 하기 마련이다. 처음 한잔은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먹고 술이 사람을 먹어 이성을 잃는다는, 과음은 금물이지만 어찌하다가 한 잔 술에 취하다 보면 술이란 놈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마술로 사람의 모습을 원숭이로 바꾸는 연금술사가 된다. 나는 애주가는 아니지만 오랜 친구와 마시는 한잔 술은 예로부터 신(神)에게 바쳐진 최고의 음식인 술이야 말로 우정의 가교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고 본다. ‘L 친구? 홀아비로 이렇게 살면 외롭지 않는가? 노년에 참기 어려운 게 고독이라는데... ’ “정년 후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보았는데 쉴만한 곳은 고향집뿐이야, 내 집사람은 가끔 한 번씩 오지만 혼자 사는 게 자유롭고 편해서 나는 누가 뭐라 해도 여기서 살거여...” ‘이 사람아 나도 6년간 주말부부로 홀아비생활을 해 보았지만 늘그막에 아내만큼 좋은 친구는 없더라고.... 짝 잃은 외기러기 신세를 자초(自招)하지는 말게나...’ 우리는 멋쩍게 웃어넘겼다. 평균수명이 80을 넘어 이제 100세 시대라니,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면 평생의 본업에서 손을 놓거나 정년을 하고 난 다음 적어도 60 이후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사회적인 관심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노후에 취미생활이나 친구를 사귀어 새로운 인연(因緣)만들기로 '연거(緣居)'를  하고자 하는 일반 여성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여기에 남성은 제외 되어 정년 후 남편이 고향으로 가 전원생활 하기를 원한다면 혼자 떨어져 살게 되는데, 이를 이름 하여 ‘졸(卒婚)’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신조어 까지 나타나고 있다. 백세를 향한 긴 여정과 함께 인생황혼기를 맞는 노부부의 인생후반기에 관한 이야기다. 졸혼을 굳이 풀이하자면 결혼생활 3-40년을 마치고 한 차원 다른 부부 각자의 독립된 자유생활이란 의미가 있는데, 그 장점으로는 황혼이혼에 대한 대안이라고도 하는데 그것도 정답은 아니다. 정년 후 능력 없는 3식이가 된 남편은 아내 눈치 보기가 십상이다. 다행히도 부모님이 살던 고향 옛집이 있다면 도피 장소로는 그만이다. 나는 오래 전에 텃밭 귀퉁이에 가을이면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를 심어 열매를 보았고, 감나무, 살구나무, 자두, 복숭아, 대추, 포도와 올해도 호두나무 30그루를 심었다. 막내 아들놈과 며느리 감이 인사차 왔다. 기념식수로 호두나무를 심으면서 ‘이 나무는 손자 나무란다.’ 이 말은 먼 훗날 호두알이 주렁주렁 매달릴 때면 내 뜻을 알겠지... 우리 집 변산사랑방 창문 앞에는 홍매화가 피어나고, 뒤란에 우거진 동백이 붉은 꽃망울을 하나 둘 터트리는 고향의 옛집에서 ‘여보게 L 친구? 우리 와인 잔을 기울이면서 아름다운 황혼을 맞이하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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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29 [17:26]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