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매화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8/04/03 [07:45]

강릉 매화

새만금일보 | 입력 : 2018/04/03 [07:45]
 

 3월 중순에 강원도를 여행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벅차고 자랑스러워 올림픽 기간에 꼭 가고 싶었지만, 모든 게 여의치 않았다. 추위와 번잡함에 고생할 것 같아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패럴림픽이 끝나가자 아쉬움이 산처럼 커졌다. 경기는 못 보더라도 올림픽 시설물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 바람이 너무 간절했다.

 

 강릉은 멀고 깊었다. 다섯 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할 동안 곳곳에 비와 눈과 햇빛이 번갈아가며 교란했다. 먼 길 탓인지 멀미 탓인지 때때로 아득했다. 강릉에 숙소를 정하고 평창으로 가는 길은 눈과 비가 섞여 내렸다. ‘옥당가’에서 풍상이 섯거치고 황국화가 피었던 날이 이런 날씨였을까. 일본 삿포로가 부러웠을 때 대관령 생각을 왜 못했을까. 항상 눈에 갇혀 불편한 것만 생각했지 대관령에 쌓인 눈이 이토록 아름다울 줄 몰랐다. 3월에 눈 쌓인 전경이라니. 역시 아름다운 것은 불편한 것을 이기는 것 같다. 지역별 날씨가 이렇게 차이 나는 걸 보니 우리나라 땅덩어리도 대단해보였다.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과 그밖에 상징적인 건물들은 사진만 찍으며 멀리서 바라봤다. 성화가 타오르던 백자 항아리가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하면서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눈을 맞으면서 수호랑과 반다비를 끌어안으며, 혹은 손동작을 흉내 내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언제 또 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열리겠는가. 이곳에 왔다는 것만도 대단한 의미인 것 같았다. 시설물들을 그렇게 빨리 철거할 수밖에 없었나. 몹시 아쉬웠고 마스코트 인형 하나 사지 못한 것도 섭섭했다. 준비했던 기간에 비하면 너무 서두르는 느낌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가려했던 평창을 첫날 다녀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동진역에서 기차를 배웅하며 온몸으로 바다를 끌어안았던 짜릿한 기분도 잠깐. 해가 진 바다는 허연 파도가 마치 이빨을 드러낸 짐승의 모습처럼 섬뜩했다.

 

 강릉의 봄은 오죽헌에서 오는 듯했다. 눈보라가 앞을 가리는 날씨 속에서 매화는 의연했다. 꽃잎을 툭툭 터트려 온몸으로 봄을 드러내고 있는 매화는 남쪽이나 이 추운 강원도나 다를 게 없는 듯했다. 몽룡실 옆에 서있는 오죽헌 율곡매는 신사임당과 율곡선생이 손수 아끼고 가꾸었다고 전한다. 이 매화나무는 오죽헌 건립당시인 1400년경에 식재되었다고 하니 수령이 600년을 훨씬 넘긴 게 분명하다. 나는 신사임당과 율곡선생이 어루만졌을 매화나무를 쓸어보며 600년 전 온기를 느끼려 애썼다. 오죽헌 입구에 피어있던 매화는 벌써 꽃잎이 지고 있는데 율곡매는 아직도 꽃을 피울 생각이 없는지 늙은 몸뚱이에 봄빛만 자글자글했다.

 

 선교장 활래정을 지난 정원에 매화가 흐드러졌다. 어느 때부턴가 매화도 흐드러졌다는 표현을 쓴다. 늙은 매화 등걸에 듬성듬성 피던 고(古)매화만 생각했던 내게 저렇게 풍성한 꽃은 매화의 절개가 덜 느껴졌다. 낙산사 매화는 불가사의였다. 그 높고 넓고 쓸쓸한 곳에서도 매화를 피워낸 계절이 위대하고 대견했다. 의상대 소나무도 매화 못지않은 절개와 의연함을 지니고 그 긴 세월 변화무쌍한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 매화가 있어 봄이 더 찬란해지는 건 아닐까. 온갖 풍상을 다 견뎌내고 향기롭고 고매한 꽃을 피워내는 그 강인함은 봄의 초입에서 세상의 모든 찬사를 들어 마땅하다.

 

  매화의 인내야말로 우리의 귀감이 아닐까싶다. 섬진강 매화가 구름처럼 피었을 때, 세상사람 모두가 매화의 품성을 닮고 싶어 남쪽으로, 남쪽으로 갔었다. 가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을 한탄하고 시간을 원망했다. 그중 한사람이 나였지 싶다. 뜻밖의 강원도 눈보라 속에서 매화를 보고나니 남쪽으로 못 갔던 보상이라도 받는 듯 매화 향기가 더 진하고 도도하다. 온갖 고난을 다 견뎌내고 눈 속에서 피어난 매화처럼 우리의 삶도 시련으로 단련되면 그런 고고함으로 맑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 남은 삶이 매화를 닮을 수 있다면 눈보라도 두렵지 않겠다.

/최화경<수필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