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혼을 실은 가요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8/04/11 [07:05]

애국혼을 실은 가요

새만금일보 | 입력 : 2018/04/11 [07:05]


 대중가요는 그 시대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가사나 곡에 함축되어 있는 사연을 알고 보면 느낌이 남다르다. 우리가 즐겨 듣고 부르던 가요 가운데는 잘 몰랐던 깊은 사연이 숨어 있기도 하다. 1930년대 말의 ‘세세년년’과 ‘눈물 젖은 두만강’만 보더라도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의 서러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가요계의 인사들을 ‘딴따라’라 폄하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선각자요 애국자였다. 
 대중가요 '세세년년'에는 ‘산홍’이라는 기생의 이름이 나온다. 1863년생인 그는 진주의 기생이었지만 뛰어난 외모와 출중한 예능의 보유자였다. 을사오적의 하나인 이지용이 진주에 들러 산홍을 본 순간 마음을 빼앗기고 많은 돈을 내놓으며 자신의 첩이 되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 말을 듣고 산홍은 ‘세상에서 이 대감을 오적의 우두머리라고 합니다. 첩은 비록 천한 창기이오나 자유로이 살아가는 사람인데 무슨 사유로 역적의 첩이 되겠습니까?’하고 거절했다. 이에 이지용은 크게 화를 내고 매질을 했다한다. 산홍은 뒷방으로 들어가 목을 매어 자결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황현 선생의 <매천야록>에 기록되어 전한다.
 1906년 11월 22일자 대한매일신보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 앞에 당당함은 일개 기생이 아니라 절대권력에게 용감하게 맞서 싸운 기개어린 항일투사로 보는 게 마땅하다’고 실었다. 이 애국적인 사실을 아는 선구자들이 ‘눈물의 백년화’라는 가요를 지어 불렀는데 일제에 의해 금지되어, 다시 제목을 ‘세세년년’으로 바꾸고 가사와 작사, 작곡가를 바꿔 내놓았다 한다. 이재호 작곡 ‘세세년년’은 다음과 같다.
 산홍아 너만 가고 나는 혼자 버리기냐/ 너 없는 내 가슴은 눈 오는 벌판이다./ 달 없는 사막이다 불 꺼진 항구다.
 이 노래를 부르며 우리 민족은 빼앗긴 나라를 생각하고 독립의 염원을 굳건히 세웠으리라. 또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온나라에 퍼져 다같이 부르게 되었다.
 ‘눈물 젖은 두만강’도 그 사연을 들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1935년 이시우가 중국 순회공연을 하러 부락들을 찾아 다녔다. 어느 날 두만강 변 도문의 한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 유랑생활의 고단함을 달래며 잠을 청하고 있는데 옆방에서 난데없이 여인의 비통하고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꼬박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날 여관 주인에게 여인의 사연을 물었다. 여인의 남편은 독립운동가인데 고국을 떠난 뒤 소식이 끊어졌다. 기다리다 지친 아내는 남편을 찾아 수천 리 머나먼 중국 땅을 찾아 헤매다 수소문 끝에 여기까지 흘러 들어왔다. 이 여관에서 우연히 자기 남편이 일본군과 싸우다 총을 맞고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들은 그날이 남편의 생일이라 더 가슴이 미어졌다. 형편이 되지 않아 술이나 한 잔 부어 놓고 제를 올리려 했는데 여관 주인이 안타깝게 여기고 제물을 구해주어 제사를 지냈다. 제를 지내던 여인은 비통했다. 그 기구한 운명에 밤새 오열했던 것이다. 
 이 사연을 들은 이시우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나라 잃은 겨레의 슬픔과 여인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아 문학쳥년 한명천이 즉석에서 가사를 썼고 이시우가 즉흥적인 선율을 붙인 것이 바로 ‘눈물 젖은 두만강’이다. 장월성이라는 소녀 배우가 막간을 이용하여 불렀더니 대단한 반응을 보여 네 번이나 불렀다 한다. 서울에 돌아 온 이시우는 2.3절의 가사를 김용호에게 짓게 해서 완성했다. 가수 김정구가 불러 크게 히트했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찡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곡에 그 여인의 슬픈 사연이 담겨 있어서다.
 대중가요라고 얕보는 사람도 있다. 이런 훌륭한 애국혼이 서린 가요를 얕보다니 말도 안 된다. 혹 친일파들이라면 모르지만. 따뜻한 아랫목에서 편히 사는 사람들이야 목숨 바쳐 싸운 독립군을 생각이나 하겠는가? 애국자들이 있어 우리는 나라를 다시 찾고 경제를 발전시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흘러간 노래지만 즐겨 들으며 그 속에 숨어 있는 애국혼을 되새겨 보면 어떨까?
/김길남<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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