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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을 넘어 통일로- 동서독 간의 스포츠 교류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4/12 [16:38]

동서독 간의 스포츠 교류도 정치관계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1949년 독일올림픽위원회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1950년 12월에는 독일스포츠연맹이 설립되었다. 1950년대 초에는 몇몇 종목에서 동서독 단일팀을 구성해 대회에 출전했다.

그러나 스포츠를 사이에 두고 동서독 간의 갈등도 있었다. 처음엔 스포츠 교류에 소극적이던 동독이 이를 자국의 선전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노선을 급선회했다. 동독 정부가 노골적으로 스포츠를 정치적 수단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

동독의 적극적 태도를 대비하지 못한 서독은 스포츠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배제했다. 그래도 꾸준히 친선경기가 있었다. 1957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설치된 1961년까지 동서독은 계속 스포츠 회동을 했다. 1950년부터 동독 측의 제안으로 전 독일선수권대회, 전 독일 체육회담 및 전 독일 체육인회담 등이 개최되었다. 물론 큰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1972년 12월 동서독 관계 정상화 이전까지도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동독 측이 서방진영의 결속과 서독의 서구 편입을 방해하기 위해 스포츠 교류를 정치 선전장으로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동서독은 1956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부터 1964년 도쿄올림픽까지 모두 6차례 연속 단일팀을 꾸려 동-하계 올림픽에 출전했다.

역시 효과는 신통치 못했다. 서독은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으로 규정했다. 반면 동독은 국제적 지위 향상과 IOC(국제올림픽 위원회) 정식 가입을 위해 단일팀을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1954년 서독은 나토(NATO)에, 1955년 동독은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가입했다.

그 뒤 전 세계의 냉전이 시작되고 동서독 간의 대립도 심화되었다. 그래도 동서독은 1956년 멜버른 올림픽, 1960년 로마 올림픽, 1964년 도쿄 올림픽에 단일팀을 파견함으로써 끈끈한 스포츠 교류를 과시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는 동서독이 각각 출전했다.

동독은 뮌헨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스포츠 강국으로 떠올랐다. 뮌헨 올림픽을 계기로 다소간 소원했었던 동서독의 스포츠 교류가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서방국가들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이에 대응해 공산국가들도 1984년 LA 올림픽에 불참한다.

이 같은 진영 갈등으로 인해 동서독의 교류도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1987년부터 동서독은 각 도시들이 서로 자매결연 하는 등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 중심에 스포츠 행사가 있었다. 스포츠 교류의 증가는 결국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 동서독 분단 시절 콘라드 아데나워 수상 등 정치인들은 스포츠 교류의 효과를 잘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스포츠인들이 끈기 있게 추진한 동서독 스포츠 교류는 결국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다. 정치와 스포츠를 철저히 분리해 통일의 수단으로 활용한 덕분이다.

스포츠 교류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정치와 스포츠를 별개로 두고 교류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를 가능케 한 것은 동·서독 간 꾸준히 이어진 민간 교류였다. 물론 교류를 둘러싸고도 동ㆍ서독의 위정자나 양국 국민이 바라보는 관점은 서로 달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문화나 예술, 방송, 체육ㆍ보건 등 분야별 교류가 지속되면서 통일 이후 불어 닥칠 혼선을 줄였다. 인도적 지원이나 민간 분야 교류는 정치적 부담을 적게 가지면서도 긴장을 완화시킨다. 독일은 분단 상태에서도 민간 교류를 이어온 전례가 많다.

특히 스포츠 교류는 어느 분야보다 활발했다. 분단 직후 1940~50년대 동독의 경우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스포츠를 내세웠다. 서독과의 교류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서독은 조금 달랐다. 적어도 베를린 장벽이 생기기 이전까지는 정부 차원에서 동서독 간 스포츠 교류단체를 적극 지원했다.

종목별로 다양한 경기를 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올림픽 같은 국제 스포츠 대회를 계기로 당국 간 교류도 열었다. 우리보다 앞서 동서독은 1950년대 독일연합선수단이라는 단일팀을 꾸려 올림픽을 준비했다. 당장 출전 선수를 정하기 위해 동독과 서독의 체육 관리자나 스포츠 관련 단체가 모여 회의를 했다.

대표 선수나 코치 차원에서도 합동 훈련을 하는 등 한데 모이는 환경이 자연스레 조성됐다. 이 과정에서 동독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이나 국가대표 선수 간 심화된 경쟁 구도를 두고 불만이 나오는 등 갈등도 있었다. 지금의 남북 단일팀의 처지와 비슷하다.

서독의 브란트 정부는 긴장 완화 정책을 지향하면서 독일 통일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을 듣는다. 브란트 정부는 동독을 동등한 국가로 인정했다. 그리고 공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각종 스포츠 단체 간 정보 교환이나 훈련 등 교류를 지원하는 한편 경기가 열릴 여건을 갖추는 데도 적극 나섰다.

서독 정부는 40년 이상 끊임없는 교류와 화해의 손길을 펼치며 동독의 변화를 유도했다. 연대의식 강화를 위해 개인 대 개인, 클럽 대 클럽, 지역 대 지역으로 연계와 연합을 맺었다. 통일 독일을 위한 순기능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스포츠를 통해 평화를 이룰 수 있다. 물론 스포츠 외교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정치 외교적 결정이다. 그래도 민간 차원의 스포츠 외교, 문화 외교 등이 꼭 필요하다. 2018 평창올림픽에서 남과 북은 하나 즉 단일팀을 이뤘다.

북한 최고 권력자의 여동생이 청와대를 찾아 방북을 초청하는 새로운 형태의 올림픽 외교를 선 보였다. 비정치적이라는 올림픽이 아니면 국제사회가 제재 대상으로 삼고 있는 북측 권력자들이 보란 듯 남쪽 땅을 밟을 수 없었을 것이다. 평창 외교가 핑퐁 외교처럼 역사적 전환을 가져올 지 궁금하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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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12 [16:38]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