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명백한 중국 역사왜곡이다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8/04/15 [17:13]

동북공정, 명백한 중국 역사왜곡이다

새만금일보 | 입력 : 2018/04/15 [17:13]

동북공정(東北工程)은 명백한 중국의 역사 왜곡 행위다. 이는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적 연구 사업이다.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인 셈이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5년을 기한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역사 왜곡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의 목적은 중국의 전략 지역인 동북 지역, 특히 고구려와 발해 등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어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영토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있다. 중국은 현재 중국의 국경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이므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 또한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동북공정에서 한국 고대사에 대한 연구는 고조선·고구려·발해 모두를 다루고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고구려이다.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성립된 국가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 역시 중국의 역사라는 주장이다. 동북공정은 2004년 6월 한국-중국 간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불씨는 계속 남아 있다. 동북공정은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답사하기 시작하며 시작됐다.

2001년 한국 국회에서 재중 동포의 법적 지위에 관한 특별법이 상정되었다. 같은 해 북한이 고구려의 고분군을 유네스코(UNESCO)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신청하자 긴장했다. 북한의 핵위기를 비롯하여 한반도의 정세 변화가 동북지역의 변경 안정과 밀접히 연관된다고 판단했다.

만주를 둘러싼 남북한 사람들의 강한 민족주의 성향과 간도 영유권 문제의 제기도 의식했다. 모두 동북공정이 시작된 요인들이다. 중국에서는 지금 동북공정을 통해 개발된 왜곡 논리의 구체화 작업이 지방의 동북 3성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길림성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동북사지(東北史地)』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동북공정 관련 논문을 집중적으로 게재하고 있다. 백두산을 독점하기 위한‘장백산문화론’과 관광 자원화의 방향에 관한 여러 주장도 이 잡지에 주로 게재되었다.

2007년 연변대학에‘동북변강지구국정(國情)조사연구기지’를 설립하여 조선족이 모여 사는 지구의 역사와 사회 발전 방향을 조사 연구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동북 3성의 각지에 있는 고구려 관련 유물과 박물관에는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는 동북공정의 논리를 반영한 각종 시설물이 설치되고 있다. 2006년부터는 동북공정이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5년간 축적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동북 3성의 박물관, 대학, 사회과학원을 비롯한 각종 조직에서 이를 구체화하고 있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변경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예방 차원에서 시작한 학술 연구이자 정치 프로젝트다.

한국과 중국의 북방사 인식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사에서 북방사가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후속 연구자를 많이 키우는 일이다. 중국학자들은 발해를 말갈족 역사, 당나라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등 중국 정사(正史)가 발해를 자기 역사로 생각하지 않아 본기(本紀)가 아닌 북적열전(北狄列傳)에 기록한 것과 전혀 다르다. 그런데 1993~1994년 연해주 크라스키노·코르사코프카의 발해 유적 발굴에 참여한 러시아 학자들도 중국 학계의 영향으로 발해를 말갈족 국가로 간주했다.

그러나 발해 유적에서 나온 유물이 고구려·통일신라와 관련성을 보여주자 그들의 인식은 점차 바뀌었다. 연해주 발굴은 한국 학자들이 발해 유적을 직접 접함으로써 발해사 연구에 발언권을 갖게 했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처음 포함한 것은 1940년대 김육불의 '동북통사(東北通史)'였다.

하지만 '고구려는 중국 동북의 소수민족 정권'이라는 주장은 중국에서도 영향력 없는 소수설이었다. 곽말약·전백찬 등 중국 학계를 이끄는 석학은 '고구려는 한국사'라고 했다. 모택동·주은래도 같은 입장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까지 "광개토대왕비는 한국사"라던 중국학자가 '중국고구려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소수 민족들을 정치적으로 통합하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앞세우면서 '청나라 영토에서 이뤄진 역사 활동은 중국사'라는 역사지리학자 담기양의 강역(疆域) 이론이 문제였다.

동북공정은 학문적 토대가 전혀 없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같은 한국 역사서는 물론이고 중국 정사들 역시 고구려를 신라·백제와 함께 '해동삼국(海東三國)' '삼국'으로 서술했다. 동북공정은 한국의 고대사 인식 체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구려·발해가 주목받으면서 통일신라와 발해를 대등하게 보는 학계 일부의 '남북국 시대론'이 힘을 받았다. '고구려 계승'을 내세우는 북한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하며 '후기신라론(論)'을 펴고 있다. 발해사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좋지만 삼국통일을 부정하면 고구려사까지 중국에 넘겨줄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 이런 주장은 '일통삼한(一統三韓)' '삼한위일가(三韓爲一家)'라는 우리의 전통적 역사 인식과 어긋난다.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미도 담고 한국 고대사의 외연도 넓히는 '통일신라와 발해'라는 역사 체계가 적절하다.

2007년 종료된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초기의 왜곡된 주장을 견지하며 보완·심화되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는 오히려 발전하고 있다. 동북공정 이후 중국 학계의 관심이 많이 늘어난 분야는 문헌 사료다.

중국에서 고구려의 초기 정치제도사, 건국 신화와 관련된 연구가 증가했다. 중국 학계는 자신들의 논리를 더 보완하는 한편 고구려와 발해, 부여, 고조선을 연결하는 작업에 힘을 기울일 것이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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