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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수저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4/20 [06:27]

  아버지의 임종은 평소 쓰시던 놋수저를 깡마른 손에서 놓치는 순간이었다. 아무런 말씀도 없이 그렇게 생을 마감하셨다. 호사다마라던가? 동생이 새 집을 장만하여 다녀오신다며 건강한 모습으로 상경하시어 청천벽력 같은 연탄가스 중독 사고로 그리된 것이다. 예전에 연탄난방 시 흔히 당하던 사고였다.
 놋수저는 어머니의 혼수였다. 8남매를 낳아 거두시면서도 어머니는 놋수저와 방자 밥그릇은 마치 아버지의 상징인 양 지성으로 섬기셨다. 평생 힘든 농사일로 먹고사는 일에 치중하신 관계로 혹시 아비 없이 밥이라도 굶지나 안을까 걱정하는 마음에서 놋수저를 놓아 유언을 대신한 게다. 누구나 생을 이어나가는 동안에는 먹어야 하고 수저야말로 매일 대하는 긴요한 식기다.
 잘그락, 잘그락, 놋수저를 닦는다. 명절이나 제삿날을 앞두고 멍석에 주르르 놋그릇을 내놓으시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번쩍번쩍 윤이 나게 놋그릇을 닦으셨다, 기왓가루를 분가루처럼 곱게 갈아서 짚수세미로 박박 닦고서 우물가에 옮겨 놋그릇들을 씻고 나면 눈부신 황금색을 드러내던 놋그릇들이 어린 눈으로도 귀하고 정갈하게 보였다. 명절이면 우리 집에서는 제일 먼저 놋그릇 제기들을 닦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머리에 수건을 쓰시고 할머니와 어머니께서는 반나절이나 놋그릇을 닦으셨다. 그렇게 닦인 놋그릇을 하얀 광목천으로 마른 행주질을 해서 손으로 들고 보면 마치 거울같이 얼굴도, 사물도 훤하게 비쳤다. 할머니께서 마른행주로 훔치시고도 행여 손자국이라도 남길세라 닦고 또 닦아 선반 위에 가지런히 엎어둡니다, 반질반질 잘 닦인 놋그릇은 달빛에도 광채가 났다. 두드려서 만든 것이라 주물 놋그릇보다 고급스럽고 음식의 온도 유지나, 살균작용이 탁월하다고 했다. 제상 앞에서 제물을 진설할 때면 번쩍번쩍 잘 닦인 놋그릇에 메가 담기고, 탕이 올랐다. 촛불을 의젓하게 꽂고 선 촛대에서도 윤기가 났다. 경건함이 느껴지는 제상 앞에서 정갈한 놋그릇에 담긴 정성어린 제수음식들이 차례차례 진설되면 차례 상 차림은 끝났다. 수고로운 일을 하고도 여자들은 모두 뒷전에서 손을 앞에 모아 쥐고 절을 하는 남자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잘 닦여 윤이 나는 놋그릇보다 진설된 큰 생선이나 육전에 먼저 눈이 가듯이 명절이나 제삿날 여자들이 가장 많이 애를 쓰고도 한 번도 제상 앞줄에 서보지 못하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 놋그릇은 제사 때도 목기로 바뀌고 스테인리스 그릇으로 바뀌었다. 닦으면 닦을수록 윤기가 나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윽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놋수저는 살균력도 뛰어나고 농약이나 독성에 닿으면 까맣게 변하면서 독성을 가려준다니 이참에 옛 양반들이 은수저를 들고 거드름 피우듯이 방짜 놋수저를 들고 유들거리고 싶어진다. 놋수저의 세대인 어머니와 아버지 세대의 유물이기에 가끔 생각나는 귀한 물건이다. 그러나 요즘은 불편하다는 이유로 퇴물이 되고 목기가 대신한다. 얼마 전 큰 며느리가 혼수로 가져온 유기 방자 그릇과 은수저로 밥을 먹어보니 옛 아버지의 놋수저가 생각나 울컥 목이 메었다./김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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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20 [06:27]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