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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망 큰 행복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4/23 [07:13]



지난 일요일 저녁 청년미사에 참여했다. 젊은이들이 밴드에 맞춰 성가를 힘차게 부르니 나또한 저절로 따라하며 젊어지는 느낌이었다. 신부님께서 청년들을 향하여 ‘여러분은 24년 후에 어떤 사람이 돼 있을 것 같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어, 24년 후?’ 난 얼른 손사래를 쳤다. 그땐 내 나이 94,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앞섰던 거다. 미래를 생각하며 오늘을 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말씀이셨는데, 내 머릿속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내 삶의 시간들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라는 생각들로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며칠 후 채소모종을 옮겨 심고, 정자에 올라 차를 마시며 내려다본 창밖 풍경은 우리 둘만 봐주기엔 너무 미안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봄소식을 전하려는 꽃들의 화사함에 눈이 부셨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은 물론 조팝나무 꽃까지 한꺼번에 피어 정자 둘레를 꽃 대궐로 만들었다. 며칠 후면 사라질 이 아름다움을 같이 하고픈 이들에게 꽃소식을 전하며 시간을 내달라고 청했다. 몇 통화의 전화로 번개모임이 이튿날로 정해졌다. 그 때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정자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고 어떤 음식으로 대접해야 할지 궁리했다. 집에서 준비할 것과 마트에서 구입할 것을 정하고 꼼꼼히 메모했다. 내 기억력을 믿지 못하게 된 뒤부터 항상 생각 즉시 메모를 하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준비물을 챙기고 정자로 향하는데 저절로 노랫말을 흥얼거릴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한 것이다. 커다란 솥에 옻나무를 넣고 끓이기 시작할 무렵 친지들을 태운 차가 농장으로 들어왔다. 가끔 만나는 모임자리에서와 달리 어찌나 반가운지 손을 맞잡고 한참 놓질 못했다. 남자들은 농장을 둘러보고 부추와 머윗잎을 뜯고, 친구와 나는 닭을 삶고 상을 차렸다. 옻닭과 닭죽, 김치와 도토리묵, 머위무침이 전부인 소박한 차림이지만 반가운 이들과 함께하는 점심은 진수성찬이 되었다. 거기에 작년에 담가둔 칡 술을 곁들이니 모두들 거나하게 취하여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공유해온 얘기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닭서리를 어떻게 해서 들키지 않고 했는지의 무용담을 들으면서는 옛 어른들이 알면서도 넓은 아량으로 속아준 것이려니 싶었고, 몇 년 전 지병으로 아내를 떠나보낸 사람이 요즘 데이트를 하며 알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얘기할 땐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어떤 일이든 무슨 얘기든 모두 다 공유할 수 있는 친지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 자리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비를 뒤로하고 떠나는 이들에게 오랫동안 손을 흔들며 내 마음은 마냥 행복에 젖었다. 그래, 이것이 내가 바라는 남은 삶이구나. 몇 년째 횡령이네 뇌물이네 하면서 몇 십 억 몇 백 억 하는 단위의 돈들이 뉴스에 오르내리는데, 얼마나 큰 행복을 원했기에 그리 많은 돈들이 필요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충만한 행복감은 돈의 단위와 비례되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신부님이 말씀하신 24년 후까지 내 삶이 이어지기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지금부터 남은 삶은 오늘의 행복처럼 이어지기를 바라고, 또 모두에게 그 행복을 나누려고 노력하며 살아야겠다.
작은 소망이 큰 행복을 불러오리라 굳게 믿으며 기쁨을 만끽한 하루였다.
/김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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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23 [07:13]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