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말 변했을까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8/05/16 [10:10]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말 변했을까

새만금일보 | 입력 : 2018/05/16 [10:10]


 분단의 아픔을 겪지 않고 누가 그 설움을 알까? 지척에 부모형제를 두고도 70여 년 동안 기다림 속에 살고 있으니, 이산가족들의 눈물도 마르고 가슴에 한이 사무친 지 오래다. 그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적대 적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남한은 어렵게 자유를 찾았지만 북한은 3대를 세습하며 독재의 그늘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한은 핵으로 남한과 미국 본토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처럼 전쟁에 광분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 4. 27 판문점으로 내려왔다. 북핵폐기와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서였다.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10시 30분부터 회담은 시작되었고 저녁만찬에 이르기까지 약 12시간 판문점에 머무르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가지 않았던가? 이제 평화가 오려나 하는 기대감에 온 국민은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날 저녁 남북 두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국방부장관회담, 이산가족상봉, 문재인대통령의 올가을 평양방문까지 명기했다. 당사자인 우리 국민은 이를 숨죽이고 지켜봤으며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구체적인 세부 일정이나 논의는 앞으로 계속 만나 조율해 나가면 될 것이다. 그토록 공을 들이고 국민은 굶주림에 허덕이면서도 핵개발에 모든 것을 걸었던 북한정권이 왜 이리 변한 것일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아직 34세에 불과한 젊은 지도자다. 정권을 잡은지 6년에 이르는 동안 국제무대에 한 번이라도 나간 적이 있었던가? 그러던 그가 지난해 11월 29일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며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부터다. 중국을 깜짝 방문하고 판문점 선언으로 해빙무드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신년사를 시작으로 외교무대에 뛰어들게 되었고, 예상을 뛰어넘은 그 수완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무엇이 그처럼 변하게 했을까? 그는 프랑스를 거쳐 스위스에서 9년간 교육을 받은 젊은이다. 중국하고만 교류하던 아버지 김정일과는 달리 스위스에 유학하여 서구의 발전상을 보며 북한경제를 서구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후계자수업을 받으며 리더십도 키웠을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 통 크고 유머러스하며 좌중을 끌어 안을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아버지보다 판단력이 빠르고 개방된 서양에서의 교육을 통하여 삶의 질이 무엇인지 터득했을 것이다. 또 이웃나라 중국의 변화를 본받고 싶지 않았을까? 1979년 등소평은 집권하자 개혁개방을 주도하면서 급속도로 변화하지 않았던가? 국가소유의 땅을 장기 임대조건으로 개인에게 분배해주고 사유경제체제를 받아들이다보니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개혁개방만이 살길임을 눈으로 똑똑히 터득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간에 다리를 놓아 준 것이다.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한반도 북핵문제의 해결은 핵동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국제적 협력과 상생없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대로 가면 북한에서는 국제적 고립과 어두운 미래가 있을 뿐이라며 즉시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 고 호소한 바 있다. 핵 없이도 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가도록  우리가 돕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에 답이나 한 듯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핵? 경제 병진노선을 접고 경제건설에만 집중하려는 전략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으로 해외자본을 유치하고 핵 폐기를 조건으로 실리를 취하며 점진적 개방을 시도할 것이다. 그 첫 번째가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는 신호였다. 가뜩이나 우려하던 국제적 행사에 북측의 참여와 단일팀구성으로 평화 동계올림픽이 치러진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던가?
 
 김정은 위원장이 정말 변했을까?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국가가 발전하고 국민이 잘 살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독재자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나이에 정권을 잡았으니 많이 외롭고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무거운 짐이었을 것이다. 동족의 아픔을 서로 이해하며 통일의 길로 갈 수만 있다면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
 한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태어난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피난을 다니며, 그 무서운 총성에 시달려야 했다. 저공비행하는 폭격기의 굉음에 놀라 목숨을 잃을 뻔했던 그 상흔(傷痕)이 아직도 남아있지 않은가? 이제 고희(古稀)를 바라보면서 통일의 우렁찬 팡파르가 울려 퍼지기를 소망한다./이우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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