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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외교를 강화하라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5/17 [21:32]

1945년 광복과 동시에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국과 북한은 1950년 한국전쟁을 통해 적과 적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이후 7·4 공동성명, 남북 적십자 회담 등이 있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이 끝난 직후인 10월 평양과 서울을 오가면서 남북통일축구가 열려 '통일의 꿈'이 무르익었다.

이듬해인 1991년 1~2월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남북 단일팀, 그해 6월 포르투갈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남북 단일팀이 출전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1991년 지바 세계 탁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주역은 유남규, 현정화, 김성희, 이분희 등이었다.

이후 단일팀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2000시드니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을 시작으로 2018 평창동계올림픽까지 국제대회에서 10번이나 남북이 함께 손을 잡고 입장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는 27년만이자 사상 3번째로 한반도기를 단 단일팀을 꾸려 출전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스포츠를 통한 한반도 평화 대화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IOC 집행위원회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IOC는 스포츠 발전 계획, 각종 대회, 선수 지원 등을 통한 평화로운 대화를 이끌어달라던 남북의 요청에 헌신해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는 10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유스올림픽,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대회를 차례로 거론하고 계속 남북 대화가 평화롭게 이어지도록 돕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바흐 위원장은 남북 정치인들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유화적인 모멘텀을 한반도 평화 진전의 기회로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이끈 바흐 위원장은 평소 평창올림픽이 현재 남북 관계 개선의 문을 열었다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이후 북한의 초청으로 3월 말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담하고 북한 선수들의 도쿄·베이징 올림픽 참가를 계속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IOC는 현재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열리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들의 항공료와 숙박료를 지원했다.

베이징동계올림픽까지 북한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도록 유엔 제재를 지키는 선에서 현금을 지원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계 중이다. 구체적인 지원 방식은 IOC가 곧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단체 및 지자체 간의 스포츠 교류를 통해 사회·문화 분야에서도 민간 부문의 교류와 협력 사업이 복원되고 활성화 되어야 한다. 특히 청년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사고의 유연성이 있고 통일의식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통일 인식을 제고하고 객관적으로 북한의 이해를 돕도록 해야 한다.

스포츠 이벤트 사업과 콘텐츠 발굴이 필요하다. 2018년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을 기점으로 남북 스포츠 교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스포츠 교류는 이미 분단 이후부터 남과 북의 중요한 소통 창구 역할을 해왔다.

판문점 선언에서 다가오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단일팀 구성을 하는 것에 합의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에서 농구, 탁구, 체조, 유도, 정구, 카누, 조정 등의 종목에서 조건부로 남북 단일팀 구성 의사를 확인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단일팀 구성이 4.27 판문점 선언 이행의 첫 신호탄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치·경제적 사안과는 별개로 스포츠 교류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스포츠를 통한 남북 주민들 간 동질성 회복이 중요하다.

1989년 독일 통일을 이끈 것 중 하나가 바로 동서독의 스포츠 교류였다. 동서독은 1951년부터 1955년까지 불과 5년 동안 200여 회에 걸친 접촉과 회담을 가졌다. 올림픽 단일팀 성사 후 1957년 한 해 동안 무려 1530회의 스포츠 교류를 했다.

스포츠 교류를 위한 의정서를 마련하며 교류를 확대했다. 이는 단순한 교류가 아니다. 스포츠의 사회·정치적 통합 기능을 통해 상호 교류 증가, 민족 화합 및 동질성 유지에 기여했다.

스포츠는 종종 국제 정치에서 중요한 수단으로 쓰인다. '크리켓외교'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 불화를 누그러뜨리는 데 활용된 스포츠 외교다. 두 나라는 영국 식민지 시절 한 나라였다. 1947년 분리 독립하면서 두 나라는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두 나라는 서로 다른 종교를 갖고 있었다. 인도는 힌두교, 파키스탄은 이슬람교였다. 국경 지대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싼 분쟁도 있었다. 훗날 방글라데시로 바뀐 동파키스탄 독립 문제도 있었다. 사사건건 갈등하며 1970년대까지 세 차례나 전쟁을 치렀다.

그런데 틈만 나면 으르렁대던 두 나라에도 공통점이 있었다. 양 쪽 모두 크리켓 경기를 좋아했다. 크리켓은 공을 방망이로 치고 달린다는 점에서 야구와 비슷하다. 영국에서 시작해 영연방국가(영국의 옛 식민지 나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스포츠였다.

1986년 인도와 파키스탄은 전쟁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또 한 차례 겪는다. 인도가 대규모 군사훈련을 핑계로 파키스탄 국경 근처로 군대를 이동시켰다. 파키스탄은 핵무기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그러나 두 나라는 극적으로 군대를 철수하기로 합의하면서 최악으로 치닫던 갈등을 겨우 풀었다.

그러자 파키스탄 대통령이 인도에 '친선 크리켓 경기를 하자' 고 제안했다. 그동안 얼어붙었던 관계를 스포츠로 녹여보자는 것이었다. 파키스탄 선수들이 먼저 인도를 방문해 친선 경기를 벌였다. 1987년엔 두 나라가 크리켓 월드컵을 공동 개최했다.

2005년에는 인도 총리와 파키스탄 총리가 나란히 앉아 크리켓 경기를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인도 뭄바이에서 파키스탄 테러리스트들이 테러 공격을 하면서 양국 사이가 급속히 나빠졌다. 모든 친선 크리켓 경기도 중단됐다. 그러나 2012년부터 또다시 친선경기를 진행하는 등 스포츠 외교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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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17 [21:32]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