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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개혁개방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5/20 [18:34]
 

중국은 지난 1970년대의 개혁 개방 정책 추진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70년대 말 마오쩌둥이 죽은 후 정권을 잡은 덩샤오핑은 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한다.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하여 농촌에서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가족농업으로 전환했다.

농산물 가격을 점진적으로 시장에 맡겼다. 국영 기업의 이윤을 기업에 남겨 투자 자금으로 사용하게 했다. 사기업의 성장을 허용한 것이다. 대외 개방 정책도 진행했다. 경제특구를 설치하여 해외 자본과 기술 도입, 수출 확대에도 힘썼다.

개혁 개방 정책은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일시 중단된다. 그러나 곧 재개된다. 중국은 10%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루었다.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다. 중국, 상하이 등 푸둥지구는 1990년 경제특구로 지정되면서 중국의 금융 및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0년 동안 국내 총생산과 개인당 생산은 10배 이상 증가했다. 수출과 수입의 증가는 그 폭이 더욱 확대되었다. 중국은 넓은 면적과 많은 인구 때문에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크다. 풍부한 노동력에 기반한 수출은 중국을 세계 1위의 외환 보유국으로 만들었다.

막대한 외환 보유고는 2012년 유럽 각국이 재정 위기를 겪고 있을 때 세계 경제를 지탱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도 2008년 금융 위기에 직면하여 중국과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여 외환의 안정성을 확보했다.

냉전이 해체되면서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는 무너졌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여전히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개혁과 개방을 통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오늘날까지 중국 공산당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중국은 195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로 재편되었다. 정부는 먼저 토지 개혁을 통해 지주의 토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하고 주요 기업을 국영화하였다. 제1차 5개년 계획을 통해 중공업 중심의 공업화를 추진하였다.

농업생산 합작사 등의 집단화를 진행하여 농민 대부분을 합작사에 가입시켰다. 중국 정부는 본격적인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추진하고자 대약진 운동을 펼쳤다. 농촌에 인민 공사를 조직하여 농가의 99%를 가입시켰다.

그러나 집단화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과 근로 의욕 감소, 대규모의 자연재해가 심각했다. 생산력 저하와 대기근과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류사오치 등은 집단화의 점진적 추진을 요구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문화 대혁명을 추진하여 이에 반격을 가했다.

중국 공산당은 정권을 장악한 이래 지속적으로 사상 투쟁을 전개했다. 사회주의 체제 건설을 꾀한 것이다. 문화 대혁명은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된 대중 운동이다. 내부의 반대파를 제거하고자 벌인 권력 투쟁이었다. 마오쩌둥은 자본주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투쟁을 주장했다.

자신을 추종하고 숭배하는 홍위병도 조직했다. 그러나 홍위병은 안팎의 갈등과 저항을 초래한다. 전국은 혼란에 빠졌다. 정부는‘농민에게 배우라’며 홍위병을 농촌으로 보낸다. 군대를 투입하여 질서를 회복했다. 마오쩌둥이 죽은 후 중국 공산당은 문화 대혁명이 잘못된 일이었음을 공식 인정했다.

1978년 덩샤오핑은 농업, 공업, 국방, 과학 기술 4개 부문의 현대화를 목표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했다. 선진국으로부터 자본을 들여오고 경제특구를 만들어 앞선 기술과 설비를 받아들였다. 개혁 개방은 정치 체제의 개혁 요구로 이어졌다.

1989년에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다. 이른바 톈안먼 사건이다. 중국은 국내외 민주화 운동과 소련 사회주의의 붕괴를 지켜보았다. 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중국 공산당 총서기인 후야오방은 민주주의 지지 세력에 대한 관대한 정책을 시행한다. 사상 해방, 언론 자유, 개인 자유의 신장, 법치주의, 당내 민주화 및 부패 권력 척결 등의 민주주의 정치 개혁을 실시한다.

그러나 그는 보수적 당 원로들의 반발을 계기로 총서기에서 해임되었다. 1989년 후야오방이 사망한 것을 계기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중국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최근 중국의 신(新)개혁·개방 조치들은 시진핑 집권 2기 마무리 시점인 오는 2022년과 맞물려 있다. 2022년 열리는 제20차 중국 공산당대회에서 시 주석의 3연임 여부가 결정된다. 하이난성 개발 계획은 2025년 자유무역항 체제 구축, 2035년 자유무역항 완성 등 그의 집권 연장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중국의 신개혁·개방 움직임은 중국의 미래뿐 아니라 한중관계나 글로벌 경제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중국의 신 개혁·개방 움직임은 중국의 미래뿐 아니라 한중관계나 글로벌 경제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과거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은 한국 경제의 발전에 큰 기회였다.

중국 시장 확대와 제조업 기지로서의 중국의 역할이 매우 컸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메이저 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었다. 중국의 신 개혁·개방 정책은 세계 경제에 활력소가 될 수 있다. 부동산 투기로 얼룩졌던 하이난은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부동산 투기 대상으로 각인되기 쉽다.

아파트값 폭등은 이미 고위 관료와 연줄이 닿아 있다. 아파트값 폭등으로 큰돈을 번 부자들은 이미 하이난성에 서너 채의 별장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 시진핑의 신 개혁·개방 정책 의지가 과연 얼마나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한중 양국 관계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이슈와 중국의 패권주의 확대로 긴장 상태에 있다. 신 개혁·개방 정책마저 삐걱거린다면 중국 정치에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한국 경제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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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20 [18:34]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