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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정원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6/12 [05:51]


  아파트 바로 뒷산 기슭에 공동묘지가 있다. 공교롭게도 산책하기 좋은 오솔길이 무덤들 사이로 나 있어서 간혹 그 길을 따라 오를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내 인생도 한 번 가면 저 모양으로 푸른 산 솔 밑에 묻히고 말 거라는 생각이 도꼬마리 열매처럼 머릿속에 자꾸만 달라붙는다.
 며칠 전에는 고향 뒷산의 공동묘지에 가 보았다.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다거나 죽은 자들을 애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굳이 둘러대자면, 이 세상에 살다가 떠난 자들의 무덤을 찾아보며 현재 내 존재의 본질과 속성을 생각해보거나, 부끄럽게 살다가 가진 않을지 점검해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라도 더 즐겁고 의미 있게 살고자 다짐하는 계기를 찾기 위해서라고나 할까?   
  시골에서 자란 나는 코흘리개 적부터 공동묘지에 얽힌 도깨비와 귀신 이야기를 무수히 들었다. 악머구리 울어 대는 여름밤, 옹기종기 모여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동네 밖 공동묘지에서 귀신 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엔 이웃집 어른이 밤길을 걸어오다가 공동묘지 옆 냇가에서 도깨비를 만나 한바탕 씨름하고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허황한 말을 곧이들은 내가 잘못이지, 그 허풍을 들은 뒤로 무섬증이 들어 날씨가 궂을 때나 땅거미가 질 때 그곳을 지나치려면 공동묘지 위에서 도깨비불이 반쩍거리는 것 같아 머리칼이 쪼뼛쪼뼛 하늘로 곤두서곤 했다.
  수년의 세월이 흐르고 담력이 커지자 그토록 으쓱으쓱 기분 나쁘게 했던 공동묘지가 오히려 호기심을 돋우었다. 기어이 사춘기 시절 어느 가을날, 공동묘지에서 밤을 지새워 보았다. 스스로 내 담력을 시험하여 보려는 의지와 함께 귀신과 만나 이야기하고 싶은 속셈으로 그랬다. 당시 생각으론 해가 저물어 정적이 내려앉고 모든 인적이 끊기면 죽은 자의 영혼이 공동묘지에 모여들 줄 알았다. 망자와 대화할 수 있다면 사후의 세계를 알 수 있고 이웃에게 증언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전설의 고향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을 만나지 못했고, 신비로운 경험도 못 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은 죽으면 귀신이 되는 게 아니다. 조상의 영혼을 신처럼 숭배할 수 없다. 길흉화복은 조상의 영혼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다. 죽은 뒤 조상의 영혼이 살아서 배회한다든지, 음식으로서 그 영혼을 공양한다든지, 또는 제사 때 일시적으로 강생하여 제물을 즐겨 먹고 축복해 준다고 여기는 것은 오직 상상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얼마 전 난 이장하는 묘에서 오래전에 돌아가신 동네 사람의 유해를 봤다. 삭은 골격 일부만 남아 있을 뿐 살아생전 멀쩡했던 몸은 낱낱이 나뉘어 썩고, 무너지고, 사라지고 있었다. 아마 미생물 같은 분해자에 의해 그리되었으리라. 그러니 차디찬 흙 속에 잠들고 있는 육체의 정체는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의 순환 원리에 따라 잠시 육신으로 뭉쳐져서, 작용하다가, 한 줌 티끌이 되는 존재였다.
 
  지난주에는 일부러 틈을 내어 어릴 적 등하교했던 길가의 후미진 공동묘지를 찾아갔다. 그동안 무정한 세월이 흘러서인가. 그새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묘지 주변은 산죽과 억새밭으로 변했고 억센 잡풀과 오금드리 잡목으로 덮여 납작하게 누워 있는 무덤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묘들은 비바람 눈서리에 뭉그러져 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아마 큰물에 유실된 묘들도 많이 있으리라.
  뫼인지 둔덕인지도 분간키 어려운 어떤 봉분 위에는 칠레 나무, 아까시나무가 무성했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무덤의 주인공은 전생에 무슨 좋지 못한 짓을 저질렀기에 죽어서도 이런 몰골로 남아있어야 하는가? 나머지 무덤들도 돌보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런 모습으로 될 수밖에 없으리라. 결국, 시간상의 차이일 뿐, 그 결과는 같지 않겠는가? 존재의 무상(無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근래에 와서 묘지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망자를 장지로 운구하여 파묻는 장묘문화가 화장한 유골을 봉안당에 안치하거나 나무 밑에 묻는 수목장(樹木葬)으로 바뀌어 가면서 공동묘지가 줄어드는 추세다. 더구나 최근 결혼을 피하는 풍조와 함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인구가 줄어들고 기존의 무덤들조차 돌보는 후손들이 끊어지니 공동묘지도 황폐해지고 있다. 하기야 이 바쁜 세상에 어느 후손이 옛날처럼 벌초나 성묘를 하겠는가?
  우리 선대들은 무덤을 거룩히 대하고 유골 또한 신성하게 여겨 왔다. 조상의 묘를 잘 쓰고 보살피면 자손 대대로 번창한다는 믿음이 마을에 널리 퍼져 있었다. 주로 한식날에는 선영(先塋)을 찾아 제사를 지내고 무덤이 헐었으면 개사초를 하고 둘레에 나무를 심었다. 추석날이면 온 가족이 성묘를 갔다.
  이처럼 묘지는 선대들을 추모하며 기리는 쉼터이자 후손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간이었다. 어찌 생각해 보면 공동묘지는 근원적인 향수와 같은 울림을 주는 추억의 공원이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서로를 공유하는 기억의 정원이었다. 죽은 그들과 함께한 소중한 기억과 추억들이 이 세상에 남아있는 한, 결코 그들은 이 세상에 없는 게 아니다. 여전히 삶과 죽음의 문제가 바로 지척 사이에 있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 주며 내 마음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이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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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12 [05:51]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