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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냉전체제에서 배워라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6/13 [21:57]

한반도 냉전체제가 과연 종식될 것인가. 기대와 긴장감이 교차되고 있다.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체제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역사 속에는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세기의 회담’들이 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국가주석을 만났다.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회담을 했다. 이들 회담은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1971년 7월15일 세계는 경악했다. 닉슨이 중국 방문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적국으로 인식했다. 양국은 한국전쟁에서 교전했고, 외교관계도 전혀 없었다. 중국을 방문하는 미 대통령은 반공주의자 닉슨이라는 점에서 충격은 더 컸다.

닉슨은 출발 당시까지 마오쩌둥을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8일 동안 이어진 닉슨의 중국 방문 성과는 엄청났다. 베이징에서 마오쩌둥과 정상회담을 했고, 저우언라이 총리와는 만리장성, 상하이, 항저우 등을 함께 다니며 대화했다.

방문 7일째에는‘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동아시아 주둔 미군의 철수 문제, 대만의 지위 문제 등에서 서로 한 발씩 양보해 파행을 피했다. 두 나라는‘소련을 견제한다’는 데에 입장이 같았다. 당시 회담의 두 공신은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저우언라이 총리다.

이들은 양국 정상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키신저는 1971년 파키스탄 방문 중 비밀리에 베이징을 찾아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둥을 만났다. 여기서 닉슨의 중국 방문이 합의된 것이다. 물론 회담의 성공은 양국 정상의 의지가 강했기에 가능했다.

닉슨은 훗날“세계를 바꾼 일주일”이었다고 자평했다. 현대사는 닉슨의 말을 과장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후 닉슨은 1974년‘워터게이트’로 실각하고, 마오쩌둥은 1976년 타계했다. 두 정상의 역사적 만남은 7년 뒤인 1979년, 마침내 미·중 양국의 공식 외교관계 수립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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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13 [21:57]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