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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역無燈驛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7/10 [00:42]

  오월의 신록에 눈이 부셨다. 철도청 공채에 합격하여 교육을 마친 후 부푼 기대를 안고 첫 발령지를 찾아갔다. 집을 떠나 조치원역에서 완행열차로 2시간을 더 가자 충북선 산척역이 나타났다. 작은 역사는 초라했고 오월인데도 역 주변은 썰렁했다. 내 눈에 우뚝 솟은 안테나만 들어왔다. 문득 무인도에 혼자 있는 듯 외롭고 불안해서 몸과 마음이 차갑게 굳었다.
  역사에 들어가니 나이 지긋한 역장님과 세 명의 직원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여덟 명의 직원이 하루 네 명씩 교대로 근무한다고 했다. 충북선은 조치원에서 제천 역까지를 말한다. 하루 에 보급 열차가 한 번 오가고, 완행열차가 네 번 오갔다. 당장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데 인가도 드물었고, 충주나 목행에서 출퇴근을 하려면 어려움이 많았다. 다행히 관사에 사는 직원이 편리를 봐 주어 그 댁에서 하숙을 했다.
  산척역은 이웃 역과 거리가 멀었다. 인근에 조그만 광산이 있어 부득이 계곡을 메워 역을 만들었기 때문에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철길 아래는 200여 미터가 넘는 벼랑이었다. 발령지가 무등역인지 몰랐는데 그날 역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것이다. 무등역無燈驛은 등이 없는 역이 아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밤이면 사람이 석유램프를 켜서 신호를 하는 역이었다. 내가 할 일은 많지 않은 완행열차 손님에게 기차표를 팔고, 해 질 무렵이면 램프를 닦아 석유를 넣고 3미터쯤 되는 신호기에 램프를 거는 일이었다. 그리고 열차가 오고 갈 때, 단선이기 때문에 전철기를 수동으로 작동해 열차가 갈 수 있도록 했다.
  낮에 램프를 닦아 놓았다가 해가 지기 전에 미리 등을 걸어두었다. 석유 드럼통에서 호스를 입에다 물고 빨아들이다가 석유가 목구멍으로 넘어가 며칠을 고생한 적이 있다. 높은 신호기에 램프를 걸려고 올라갈 때는 발판이 너무 작아서 두 발을 같이 디딜 수 없었다. 사람이 올라가면 발판이 좌우로 흔들렸다. 위를 쳐다보면 흘러가는 구름이 어지러웠다. 차라리 캄캄한 밤이 나았다. 까마득한 발아래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등을 걸러 갈 때 자전거 길이 임시방편으로 만든 길이어서 비가 오면 씻겨나가 경사진 곳을 서둘러 가다가 넘어져 다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면 신호기의 불빛은 빨간불로 정지신호를, 파란불로 진행신호를 기관사에게 알렸다. 기관사가 불빛을 확인하고 역으로 들어갈지, 기다릴지 판단한다. 비바람이 불거나 눈보라가 치면 램프 틈새로 바람이 들어가 불이 꺼지기도 했다. 램프를 켜면 꺼지고, 꺼지면 다시 켰다. 눈보라 칠 때도, 비가 올 때도 올라가 램프를 걸었다.
 

  오지의 무등역에서 내 젊은 날은 높은 신호기에 걸려 있는 것처럼 위태롭고 시렸다. 그래도 날마다 신호기에 램프를 걸었다. 멀리 어둠 속에서 램프 불빛은 작은 희망처럼 반짝였다. 내가 밝혀 놓은 불빛을 보며 달려오는 기차를 보면 시린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다.  
  점점 일이 익숙해졌다. 비번일에는 혼자 충주에 가서 영화도 보고 역 주변에 있는 인등산, 지등산, 천등산으로 등산을 했다. 산속에서 오디도 따고 머루도 따며 산다람쥐처럼 지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 초등학교 운동회에 가서 맨발로 뛸 만큼 사람들과 정도 들었다.
  일 년이 지나 시보기간이 끝나자 나는 고향 역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 뒤로는 그곳에 가보지 못했다. 1970년대 초반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역이 몇 군데 있었다. 산척역, 삼탄역, 공전역이었다. 1980년대 충북선 복선전철이 태백선 산업전철로 개통되면서 우리나라 유일의 무등역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만난 무등역이 어디 산척역뿐이었던가. 길 위에서 보낸 직장생활도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들 때가 있었다. 건강이 안 좋아 절망하던 때도 있었다. 크고 작은 일이 밀려오고 밀려갔다. 그때마다 산척역에서 보낸 날들이 힘이 되었을 것이다. 과오 없이 정년퇴임을 했고, 아이들도 제몫을 하며 살고 있다. 발밑에 까마득한 벼랑만 있을 것 같았지만 머리 위에 달도 별도 있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공중에 램프를 걸어 작은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았던 그때를 돌아본다. 가슴속에 따뜻한 불빛 하나가 깜박인다.
 
/정병남(전 철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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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10 [00:42]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