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私心) 없는 사회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8/08/14 [09:59]

사심(私心) 없는 사회

새만금일보 | 입력 : 2018/08/14 [09:59]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심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 몫을 챙기려는 욕심 때문에 온갖 부정부패와 부조리가 일어난다. 우선 버스에서 자리를 잡는 것을 보아도 그걸 느낀다. 안쪽에 앉으면 다음에 타는 사람이 앉기 편할 텐데 거의 바깥쪽부터 앉는다, 혼자 앉아야 편하고 내릴 때도 수월하기 때문일 터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사심을 버리고 공심(公心)에서 살아야 좋은 사회가 되리라.
 나무는 사심이 없다. 씨앗이 떨어져 싹이 트고 자랄 때까지 남을 탓하지 않는다. 주어진 여건에 적응하며 자기 나름대로 살아간다. 가물면 잎이 오므라들어 증산작용을 줄이고, 비가 내리면 잎을 활짝 펴서 햇빛을 받는다. 여건이 허용하는 대로 가지를 뻗고 위쪽으로 자란다. 가을이 되면 불평 없이 단풍이 들고, 겨울에는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추위를 견딘다. 자연이 허락하는 대로 살아가는 게 나무들이다.
 초원에 사는 사자는 배가 고플 때만 사냥을 한다. 배가 부르면 옆에 사슴이 있어도 쳐다보지 않는다. 필요 없을 때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내 것이라 여기고 미리 저장하려 하지 않는다. 사람 같으면 아까운 것을 잡아다 집에 감추어 두어야지 할 것이다. 사심 없이 살아가니 초원의 짐승들은 그 수가 줄지 않는다. 힘이 있다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면  약한 짐승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오직 정신작용을 하는 사람만이 사심이 있다. 사람은 동식물을 보고 자연에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리라. 
 한 평생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퇴직했다. 어려서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어려움 속에서 굶어보기도 하고, 돈이 없어 학용품을 갖추지도 못하고 학교에 다녔다. 어머니의 헌신으로 겨우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직에 섰다. 어린이들이 올바르게 자라도록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촌지 한 번 받지 않았다. 도시에서는 그런 것이 흥행하여 교원들의 살림이 넉넉해지는 일도 있었다. 순박한 농촌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사심 없는 일이었다. 문화가 발달하고 더 잘 살수록 사심은 커지는가 보다.
 오늘도 버스를 탔더니 자리가 비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창가에 앉았다. 다음 정류장에서 나이 지긋한 여성이 올라오더니 내 옆에 앉았다. 앞의 안쪽에 자리가 비어 있어도 들어가기 어려우니 내 옆에 앉은 것이다. 늙은이 옆에 앉아주어 고마웠다. 바깥쪽에 앉은 사람들을 보니 대개 젊은이들이다. 내 눈에는 욕심꾸러기로 보였다. 나만 편하면 된다는 욕심이 불러일으킨 모습이다. 내가 조금 양보하면 서로 좋은 일이 아닐까? 자기도 불편을 겪었을 텐데 고치지 못하고 되풀이 한다.
 무사(無私)한 사회되기가 어려운 것인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일 뿐인가?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가를 중심으로 한 지도층의 모습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도 정파의 이익을 위해 반대하는 사례가 비일 비재하다. 소상공인을 살리려면 가게의 전세값을 안정시켜야 한다. 사업이 잘 되는 듯하면 전세를 올려 달라 하고, 아니면 나가라 한단다. 그래서 계약기간을 연장하는 법을 통과시키려 하는데 어느 한 당에서 반대하여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생은 소상공인이 하고 부자는 가만히 앉아서 배만 불린다면 어디 공평한 세상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너와 내가 어울려 살아야 한다. 너나 나나 욕심 부리지 말고 너도 살고 나도 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세 조금 덜  받아도 가진 사람은 훨씬 낫다. 약자는 조금의 손해가 생사를 좌우할 수도 있다. 너무 사심을 부리지 말고 공심에서 못 사는 서민들을 조금 챙겨주는 것이 좋은 일이라 여겨진다.
 경주의 최부자가 오래도록 유지된 것은 사삼을 버렸기 때문이다. 돈이 있는 대로 투자하여 더 재산을 늘리려 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여 욕심을 버렸다. 흉년에는 절대 남의 논을 사지 않았다. 가난한 농민이 싸게 팔아 농토를 잃기 때문이다. 대신 사방 백리 안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베풀었다. 안으로는 사치를 금하고 검소하게 살며 높은 벼슬에도 나가지 않았다. 재력이 있다고 허세를 부리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려 했기에 삼백년을 이어왔다. 오늘날 재벌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보배로운 사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서로 공생할 수 있어야지 한 쪽의 이익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다 같이 살아가려면 사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 무사한 우리 사회가 유지 될 수 있도록 사람들은 사심을 버리고 살아가야 하리라. /김길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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