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나라, 조선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8/09/13 [09:35]

기록의 나라, 조선

새만금일보 | 입력 : 2018/09/13 [09:35]


조선(朝鮮)을 공부하고 있다. 공부라기보다는 조선과 관련된 이런저런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조선의 역사문헌들을 읽다보면 “조선이야말로 100% 완벽한 기록의 나라”임을 알게 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보라. 거질의 역사문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888책. 태조때부터 철종때까지 472년간의 국정 전반의 기록을 사관들이 ‘실록청’에서 금속활자로 남겼다(고종·순종실록은 일제강점기에 편찬돼 왜곡이 심하다). 임진왜란 등 국란을 겪으며 ‘실록’이 오늘날까지 보관돼 온 과정은 가히 드라마틱하다.

청와대 비서실격의 ‘승정원’에서 담당한 왕명의 출납 기록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는 또 어떠한가. 조선 전기의 기록은 소실되고 인조대부터 순종대까지 필사본으로 남겨진, 3243책 글자 수 2억 4천여만 자. 단일 문건으로는 세계 최대의 분량이란다. 번역을 위해 1960년부터 17년에 걸쳐 초서(草書)를 해서(楷書)로 바꿔 놓은 국사편찬위원회의 업적은 길이 남을 것이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1994년부터 22년째 번역하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번역률은 20%, 완역까지는 50년이 더 걸릴 거란다.

또한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역사문헌도 있다. 9살의 왕세손 정조가 처음 쓰기 시작했다는 ‘임금의 일기’ 일성록은 경술국치, 그날까지 기록돼 2328책 4800만 자로 전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카메라가 없던 조선, 모든 국가행사나 의식들을 그림으로 남겼다. 『종묘의례』 『가례도감의례』 『사직서의례』 『화성성역의궤』 등, 이른바 조선왕조 『의궤(儀軌)』 830여 종이 번역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왕조실록』(1997), 『훈민정음 해례본』(1997), 『승정원일기』(2001),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2001), 조선왕조『의궤』(2007),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高麗大藏經板-諸經板)』(2007), 『동의보감(東醫寶鑑)』(2009), 『일성록』(2011), 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2011), 『난중일기(亂中日記)』(2013), 새마을운동 기록물(2013), 한국의 유교책판(2015),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2015) 등 13종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 1위(중국 10종, 일본 5종)이자 러시아·오스트리아와 세계 공동 4위(독일 1위, 영국·폴란드 2위), 이 작은 반도 나라에서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문화강국’이 따로 없다(‘없다’가 아니고 ‘없었다’이다). 이밖에도 국제자문위원들이 깜짝 놀라며 금방이라도 등재 승인을 할 『훈련도감등록』 『비변사등록』 등의 역사문헌이 얼마든지 즐비하게 기다리고 있다. 어찌 놀랍지 아니한가.

이렇게 ‘조선’의 광팬(狂Fan)이 되어 가다 보니, 나에게는 조선이라는 이름조차 아주 매혹적이다. ‘아침 조(朝)’ ‘맑을 선(鮮)’. 구한말 어느 외국인 선교사가 말했다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영어로는 ‘Morning Calm’이 되겠다. 개국 초(1393, 태조 2) 명(明)이 우리의 국호를 ‘화령(和寧)’으로 정할 수도 있었으나(사신을 파견하여 ‘조선’과 ‘화령’ 중 택해 줄 것을 청했다), 그들의 외교문서에 “동이(東夷)의 국호에 다만 조선의 칭호가 아름답고, 또 그것이 전래한 지가 오래되었으므로, 이 명칭을 근본으로 삼아 후세에 이를 본받도록 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조선’이 좋다. 왕조실록은 우리 문화의 거창한 ‘컨텐츠 보물창고’. 한류 열풍의 주역인 드라마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영화 「왕의 남자」 「역린」 「사도」 「명량」, 뮤지컬 「명성황후」 등도 작가들이 모두 역사문헌의 번역물에서 소재를 택하여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이뤄낸 ‘고전의 열매’가 아니던가. 이런 소재야 번역이 되면 될수록 무궁무진할 것은 불문가지. 하여 나는 언젠가 특강에서 조선을 ‘스토리 뱅크의 나라’라고 일컬었다. 소원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청중이 누구이든, 조선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재밌고 교훈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스토리텔러(이야기꾼)’가 되고 싶다.

각설하고,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놀랄 일은 또 있다. 이렇게 선조들이 물려준 ‘국보 그 자체’인 역사문헌들이 모두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번역된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우리 후손들이 그 내용을 거의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조선왕조실록』은 26년에 걸쳐 1993년 완역하여 413책으로 출간되었는데, 한문투의 번역어가 수두룩하고 난해해 2012년부터 재번역을 하고 있다. 그리고 1998년부터 번역을 시작한 『일성록』 정조대는 2015년에야 175권으로 완역·완간하여 기념학술대회를 개최하였으나 전체 완역까지는 30여 년이 더 걸린다 한다.

한국고전번역원은 또한 신라말 고운 최치원을 비롯해 구한말 매천 황현까지 선비들이 남긴 문집들을 26년 동안 조사하여 1269종(1268명의 문집을 망라. 최치원의 문집만 2종)을 영인본으로 500책을 펴냈다. 소위『한국문집총간』이 그것이다. 『삼봉집』 『율곡집』 『퇴계집』 『목민심서』 『징비록』 『동문선』 『성호전집』 『연려실기술』 등 번역본 발간은 차치하고, 열거를 하자면 끝도 없을 선조들의 귀중한 문집이 완역·완간될 날은 과연 언제일 것인가. 그런 날이 오기는 올 것인가. 자기나라 역사를 기록한 글자를 읽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문맹’이 아니겠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국가는 국가대로, 개인(선비)은 개인대로 이렇게 수많은 기록유산을 남긴 이유와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를 계승·발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지를 생각해 보자. 그래야만 한문고전의 번역을 통하여 과거를 앎으로써 오늘이 있고 내일을 전망할 수 있다는 고래의 진리를 새삼 확인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문학의 씨앗을 만드는 공장 역할을 하는 ‘고전번역의 종가(宗家)’ 한국고전번역원은 1965년 당시 국가석학 50명의 발기로 창립된 ‘민족문화추진회(약칭 민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민간단체로 약 반세기 동안 가시밭길을 걸어온 민추는 2007년 11월 교육부 소속 학술기관으로 환골탈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막중한 소명에 비하면 ‘할 일’이 너무 많고 ‘갈 길’도 너무 먼 데 비해 전문 번역인력의 태부족과 정부 예산지원의 빈약함 등 여러 가지 제약 요인이 많다. ‘기록의 나라’답게 ‘옥구슬’인 한문고전을 ‘번역’이라는 이름으로 꿰어야 하는 일은 중요하고도(important) 시급한(urgent) 일일 것이다. 정부 차원을 넘어 전 국민의 관심과 성원이 절대적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김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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