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통일된 다민족 국가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8/10/14 [15:57]

중국은 통일된 다민족 국가

새만금일보 | 입력 : 2018/10/14 [15:57]

 

중국은 고대로부터 통일된 다민족 국가다. 다민족으로 형성된 강대한 대국이다. 중국의 50여 개 민족 및 그 조상은 몇 천 년 동안 줄곧 중국이라는 토지에서 함께 살았다. 러시아 쪽 극소수의 민족을 제외한 대다수의 민족들은 모두 중국의 토착 민족이다.

중국의 민족과 문화 및 영토는 동아시아에서 수천 년 동안 이어져왔다. 이는 세계 역사상에서도 보기 드문 현상이다. 중국에서 가장 최초로 형성된 국가는 기원전 21세기에 건립된 하조다. 하조의 영역은 현재 하남, 산서, 섬서 등 몇 개 성의 부분적 지역을 포함한다.

당조에 이르러 하조는 북쪽으로 흑룡강과 바이칼 호, 서쪽으로 파이카십 호와 중앙아시아 양하 유역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통제하였다. 티베트 이외의 기타 지역과 민족은 이미 통일된 당조의 일부분으로 되었다. 원조 시기에 이르러서는 티베트 이내의 모든 민족과 지역은 하나의 중앙 집권하에 통일되었다.

중국은 몇 차례 분열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수천 년 되는 역사에서 통일 기간은 분열 기간보다 훨씬 길었다. 통일을 위해 노력한 민족에는 한족 이외에도 흉노, 돌궐, 선비(북위 왕조), 저족(진나라 이전 왕조), 거란(요나라), 몽골족(원조)과 만주족(금조와 청조) 등이 있었다.

중국의 통일은 여러 민족이 공동으로 이루었다. 그 가운데서 한족, 몽골족, 만주족이 중요한 작용을 했다. 중국 영역 내의 여러 민족은 중앙 왕조의 관할 하에 있든 아니면 독립 정권을 건립한 시기든 또는 통일 혹은 분열 시기이든 모두 중국의 민족이다.

진한 시기의 흉노 그리고 수, 당 시기의 돌궐, 거란인이 건립한 서요(西辽,1125~1211년), 회홀인이 건립한 하라칸조(哈拉汗朝) 등은 모두 중국 영역의 일부분이었다. 그들이 건립한 정권은 모두 중국 내에 부속된 서로 다른 민족 정권이었다.

분열 시기에는 타민족 정권을 타 지역 혹은 외국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이 통일된 다민족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의 하나의 분열 시기였다. 그들의 역사는 모두 중국 역사의 일부분이었다. 중국의 통일과 역사와 문화는 중국의 여러 민족들이 함께 창조하고 개발한 것이다.

이 중에서 한족은 줄곧 주도적인 작용을 해왔다. 한족이 역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족 인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선진화된 생산방식 및 발달한 경제와 문화를 갖고 있었던 것도 이유다.

선비(북위), 거란(요), 여진(금), 몽골(원), 만주(청) 등의 민족들은 연이어 한족 지역을 정복했다. 그들은 중원에 진입하기 전에 모두 중원의 한족보다 발전이 낮았다. 그러나 중원에 진입한 후 한족 고유의 생산 방식과 문화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점차 한족 문화에 동화되었다. 흉노, 선비와 돌궐족 등 북방의 초원 민족은 중원 지역과 서역 도시국가에 대해 약탈과 정복 전쟁을 일으켰다. 한무제는 대원(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을 정복하는 전쟁을 일으켰다.

금조가 남송에서 시작한 전쟁, 그리고 몽골제국이 중원과 서아시아, 유럽을 정복하고자 한 전쟁들은 모두 침략 전쟁이다. 일부 지도자들은 전쟁을 통해 분산된 부락을 통일된 민족으로 융합시켰다. 몽골족의 칭기즈칸(成吉思汗), 만주족의 누르하치(努尔哈赤) 등이 바로 이들이다.

반침략 전쟁에서 다른 민족의 침공에 용감하게 저항하기도 했다. 한족인 악비(岳飞)와 우겸(于谦) 같은 인물들이다. 중국 역사에는 또 다른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외세 침략에 저항하고 중화민족을 보호하는 전쟁에서 큰 공헌을 했다.

명조 시기 왜구를 반격한 척계광(戚继光), 네덜란드 침략자들로부터 대만을 수복한 정성공(郑成功), 아편전쟁에서의 임칙서 등은 모두 중화 각 민족의 영웅들이다. 중화 민족의 단결과 통일은 항상 중원 지역을 중심으로 한족을 주체로 발전 확장된 것이다.

일찍이 조상들은 동아시아 현 중국의 영토에서 생활했다. 당시 중원의 황하 유역에는 주로 하족(한족의 조상)이 살았고 동북의 회하 유역과 태산 인근에는 동이(东夷)가 있었다. 수나라와 당나라 시기(581~907년)에 이르러 중원 왕조의 영역은 한층 더 확장되었다.

수, 당 두 왕조 모두 한족과 소수민족이 연합하여 건립한 정권이다. 당조 후기에 이르러 당조 군대 중의 고급 장교들은 그 절반 이상이 거란, 돌궐, 위구르, 고려 등 소수민족들이었다. 당조 정부는 북방 소수민족의 기병에 의존했다.

북쪽으로 흑룡강과 바이칼 호에 이르는 지역, 서쪽으로 파이카십 호와 중앙아시아 양하 유역을 통제했다. 오늘날 중국의 영역에서 티베트를 제외한 기타 지역 및 민족들은 모두 당나라의 구성원으로 되었다.

원나라 시기(1271~1368년)에 이르러 그 영역은“한, 당조 영역을 중심으로 더 확장된다. 구성원들도 한, 당나라 시기보다 더 증가되었다. 티베트의 티베트족을 포함한 모든 민족은 모두 하나의 중앙정권 내에 통일되었다.

청나라 시기(1644~1911년)에 이르러 기존의 통일된 국면은 더욱 공고해졌다. 여진족의 금나라(1115~1234년)가 황하 유역을 점령한 후“몇 백 만”의 여진군들이 하남으로 이주했다. 결국 모두 한족으로 동화되었다. 원래 동북에 거주하고 있던 원래의 만주족들도 청조가 건립된 후 대부분 관내로 들어갔다.

청조 말기에 이르러서는 만주족 문자와 언어를 버리고 모두 한어, 한문을 사용했다. 심지어 음식, 거주 등 방면에서도 모두 한족 관습을 따랐다. 중원으로 들어간 소수민족들 가운데서 일부 민족들은 주동적으로 한족의 문화에 동화되었다.

선비족인 북위 효문제(471~499년)는 선비족으로 하여금 한어를 배우고 한족 복식을 따르도록 했다. 한족 성씨로 고치고 한족과 통혼하는 것을 격려했다. 수천 년 이래 한족이 소수민족에 융합되고 또 한족과 소수민족이 서로 융합되었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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