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 김성수일가의 비화(秘話)(6)

만주 진출과 친일시비(是非)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8/10/18 [21:07]

인촌 김성수일가의 비화(秘話)(6)

만주 진출과 친일시비(是非)

새만금일보 | 입력 : 2018/10/18 [21:07]



수당 김연수는 만주 땅에 진출하여 첫 사업으로 대규모 집단농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조선 땅은 대지주와 일제의 동양척식회사 등살에 살길이 막막한 이들에게 만주의 드넓은 농장에 오면 살길을 마련 해 주겠다는 동아일보의 광고와 입소문으로 남부여대(男負女戴) 수 만 명의 동포들이 고향을 떠나 만주의 집단농장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만주 영구(營口)지방의 ‘천일농장’과 길림(吉林)의 ‘반석농장,매하,교하,구대,다붕농장’ 등을 개설하여 척식경영방식을 통해 엄청난 수확을 거둬들여 그 쌀을 목단강에 위치한 관동군기지창과 봉천으로 직송되어 관동군 군량미로 충당하였다. 만주에 대규모 집단농장을 차린 것도 미나미 지로오(南次郞)총독과 사전에 치밀한 논의와 허가를 받아 진출한 것이다. 천일농장하나의 규모가 1800정보(2만7천석 수확)와 다른 농장도 5-6백 정보의 규모다. 지금의 5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연변 조선족들의 선대가 대부분 김연수의 농장에서 일을 한 동포들로 그 들의 후예들이 지금도 뿌리내려 살고 있으며, 연변 조선족 동포는 따뜻한 남쪽 할아버지나라 한국으로 와 자,녀 대학교 학자금을 어렵게 벌고 있다. 김연수는 봉천부근의 소가둔(蘇家屯)에 ‘남만방적주식회사’와 하르빈에 ‘동양맥주회사’와 북간도 화룡현에 9천 만 평에 달하는 원시림을 벌목하기위해 ‘삼척기업’을 세운다. 그 중에서 남만방적은 17만평에 달하는 대지 위에 연건평18,000평에 방직기 1000대를 놓는 1천 만엥을 들인 대규모 방적공장을 개설하게 된다. 이 공장은 후일에 관동군과 북지 파견군의 피복창으로 중일전쟁에 지대한 공을 세우며, 이득금 일부로는 전투기헌납과 국방헌금 등으로 일제에게 바치게 된다.

그 당시 김연수의 재산이 4,200만엥으로 천문학적 조선제일의 갑부로 가히 총독부와 김씨 일문은 조선을 좌지우지하며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사업의 최성기로 최고의 영달을 누린 것으로 본다. 수당 김연수는 해동은행을 인수하고 화신산업의 친일파 박흥식과 공동출자하여 ‘대동직물’을 설립하고 태평양전쟁 말기에 비행기 결전에 대비한 자본금 5천 만엥 규모로 초대형 기업 ‘조선비행기공업’을 10여명의 친일 실업인들과 함께 설립을 하였는데, 다행히도 비행기 제조 전에 종전이 되어 김연수는 전범재판을 면하게 된다. 그 당시 김연수의 직함이 20여개로 ‘조선공업협회 부회장,조선직물협회부회장,조선방적공업조합 이사장, 조선총독부 시국조사위원회 위원,국민총력연맹이사,임전대책협의회위원,임전보국단 상무이사, 경기도 관선도의원, 중추원칙임 참의(천황이 임명),만주국 경성주재 명예총영사 등 조선총독부를 돕는 주요 요직을 한 몸에 다 가졌다. 인촌 김성수는 어쩔 수 없이 친일적인 입장에 섰지만 친일 단체에 직접 가입한 적은 없다고 변명하지만, 국민정신(國民精神)총동원연맹 발기인과 흥아보국단 발기인, 태평양전쟁을 적극 후원한 전국규모의 반관반민 조직이었던 미나미(南次郞)총독이 총재로 있는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이사, 참사를 역임(每日新報1940.10.17보도)하였으며, 한 때는 총력연맹 총무부기획위원으로 인촌, 수당 형제가 나란히 참여 한 적도 있다. 총력연맹이란? 조선반도 전국의 도,군,면,리,반에 이르기까지 당시 2천3백만 국민전체를 묶어 놓고서,학교,종교단체,유림,청년,부녀회,농민단체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병영으로 또 하나의 식민지 통치기구였던 것이다. 총력연맹(總力聯盟)은 신사참배와 일본어상용과 징병,학병,근로보국대,여자정신대를 독려하여 수십만의 청장년과 채 피지도 못한 꽃 같은 처녀들을 전선으로 내몰아 일본군 승량이 떼들에게 하루에도 100회의 성폭행을 당해야 했던 천인공노할 일로, 공출, 금속회수, 국방헌금(전투기300대 헌납운동)등을 직접 기획 실천하였다. 인촌형제가 소속된 총무부기획위원회에는 최린,이성근,한규복,이규원,임숙재 등이 함께했다.1940년10월부터 종전 직전까지 5년간 존속했던 총력연맹은 국민학생까지 군사훈련을 시켰고, 산지개간과 자갈공출,광솔,칡껍질,싸리나무껍질,말먹이 풀 공출, 사찰과 성당과 교회종, 놋숫가락, 꽹과리 등 일제는 친일 앞잡이를 세운 총력연맹을 통하여 발악을 하였는데, 김성수는 이사와 참사를 겸했던 것이다. 총력연맹은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1943년에 실시된 전투기 100대 헌납운동은 부겐빌 해전의 전승기념이라는 명목으로 85만엥을 초과 달성하였고,1944년에 접어들자 육.해군에 각100대씩 미국과 영국 비행기를 부수는 격멸기 200대를 보내기 위해 2천 만엥 모금운동을 벌였다. 김연수는 1943.1.5일에 전투기 1대 값 10만엥을 조선군 사령부에 직접 헌납하였으며 또한 경성방직 명의로 80만엥을 일제당국에 헌납했다.(친일파군상-정경문화연구소 편) 그 뿐만 아니라 만주에서는 전투기 600대 헌납운동에 호응하여 김연수 개인과 남만방적,삼양사 등 그 산하 기업체들이 전투기 5대를 관동군사령부에 직접 헌납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이 보도 되었다.(봉천성 협화회보1943.11.20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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