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호남정맥-천황지맥의 남원 교룡산(蛟龍山,520.0m)

백제 때 축성한 교룡산성과 호국의 얼인 만인의 총을 품은 성지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8/11/23 [10:22]

금남호남정맥-천황지맥의 남원 교룡산(蛟龍山,520.0m)

백제 때 축성한 교룡산성과 호국의 얼인 만인의 총을 품은 성지

새만금일보 | 입력 : 2018/11/23 [10:22]

 
▲ 복덕봉에서 본 교룡산     © 새만금일보

▶개요 및 자연경관

남원의 옛 지명은 백제 온조왕 때는 교룡군蛟龍郡이었다. 그 뒤 대방군으로 바뀌었고, 평안도에 대방군이 생기자 남대방군으로 불렸다. 1895년 남원부, 1947년 남원군, 최근에 남원군과 남원시가 통합되어 남원시로 개칭되었다. 산의 이름을 교룡 교蛟, 용 용龍을 써서 교룡산으로 부르는 것이 흥미롭다. 사전적 의미로는 교룡이란 용의 일종으로서 꾸불꾸불하고 그 길이가 한길이 넘는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 교룡산서 본 남원시가지     © 새만금일보


교룡산의 명칭은 백제 온조왕 때 얻은 교룡군이란 지명 때문에 얻은 것인지, 아니면 교룡산성과 교룡산의 형상이 마치 용이 몸을 꼬불꼬불 서린 형상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지 정확하지가 않다. 아무래도 백제 때 축조된 교룡산성 때문에 얻어진 이름인 것으로 추측된다. 정상에 올라서면 동으로 남원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동북에서 서남을 잇는 광주-대구고속도로와 국도, 철길들이 달린다. 굽이굽이 흐르는 요천과 남원의 광활한 들녘이 다가온다. 그 뒤로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지리산의 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한 폭의 풍경을 연출한다. 

▲ 교룡산에서 본 지리산     © 새만금일보

  <<한국지명총람>>에는 교룡산은 남원시 내척동, 산곡동, 화정동과 대산면 금성리에 걸쳐 있는 518m의 산으로 산성과 선국사가 있다고 나와 있다.

<<한국지명유래집>>에는 “교룡산은 남원시의 대산면 옥률리에 있는 산이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대동여지도>>에는 교룡산과 산성표시가 있다. 남원의 지세는 풍수적으로 백공산의 주산이고 교룡산이 객산客山인데 주산은 약하고 객산인 교룡산은 산세가 강대하므로 주산이객산에게 압도 당한 형국이다.”는 기록이 보인다.


▲ 선국사     © 새만금일보

<<산경표>>의 우리전통지리서로 고찰해 본 교룡산의 산줄기는 이렇다.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갈려나온 금남호남정맥이 장안산, 사두봉, 구분령, 신무산 등을 거쳐 팔공산에 닿는다. 팔공산에서 금남호남정맥과 헤어져서 마령치를 거쳐 백운산(갈미봉)에 닿으면 성수지맥, 영대지맥, 천황지맥으로 세 갈래를 친다. 그 중에서 천황지맥은 개동산, 상서산, 만행산 천황봉 등을 거쳐 노적봉으로 가시 전에 동쪽으로 교룡산을 일으킨다. 교룡산은 물줄기는 모두 요천에 합류한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산곡동이다.

▲ 동학농민군 유적지     © 새만금일보


▶문화유적 및 명소

[만인의총,萬人義塚]

교룡산 동쪽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만인의총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 5만6천명이 남원성을 집중 공격해오자, 전라병사 이복남의 병사 1천명과 명나라 장수 양원의 3천 병사들이 힘을 합쳐서 왜적과 혈전을 벌였으나 성민 6천명을 포함하여 1만 명이 장렬하게 전사한 의사들의 호국의 얼을 모신 곳이다. 사적 제272호이며 1964년에 동충동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겨왔다.

[교룡산성]

교룡산성은 지방기념물 제9호로서, 백제 때 축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기슭에서 정상까지 석축을 반듯하게 쌓은 교룡산성은 높이 4.5m, 길이 3,120m의 산성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2001년 현재 석축복원공사를 하고 있다. 남원시지에 의하면, 이성은 원래 4대문이었으나, 서.남.북문은 사라지고, 동문인 홍예문 남아 있고, 동문 아래 고죽동에는 연산군 때 무오사화를 이르켰던 유자광이 태어난 곳이다. 정유재란 당시 의병 1만여 명이 산화한 성지라서 최근에 산 아래에 만인의총을 만들어 성역화 하였다. 또한 동학혁명 당시 김개남이 이 산성 안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전라좌도를 통솔했다고 한다.

[선국사,善國寺]

동쪽 산기슭에 자리잡은 선국사는 서기 660년대에 창건되어 나라를 지키는 전략지, 또는 나라의 평안을 빌었던 곳이다. 교룡산성 내에 위치하여 산성절이라고도 부르는 선국사의 본래 이름은 용천사였다. 한때 승려만 3백여 명이었다고 전해진다. 대웅전과 보제루만 쓸쓸하게 남아있고, 이 사찰의 방 하나에 은적암의 당호를 붙이고 1862년경 경주 사람 최재우가 8개월 동안 피신 수양했던 곳이라고 한다. 1960년 대웅전 마루 밑에서 발견된 교룡산성 수성장인(蛟龍山城 守成將印)이라는 철인이 발견되어 보관중이다.

 

▶산행안내

o 1코스 : 국민관광단지-산성동문-선국사-안부-북능-정상-남능-복덕봉 –동능-산성동문주차장-별장청-산성동문-국민관광단지(4km, 2시간)

o 2코스: 국민관광단지-산성동문-선국사-안부-북능-정상-서능-금강-감성(4.5km,2시간30분)

산행은 산곡동, 내척동, 신정동, 금강마을이 등기점이 된다. 그러나 산곡동의 국민관광단지에서 오르는 것이 가장 편하다. 이곳에서 산성주차장까지는 10여분을 오르면 된다. 주차장 왼쪽은 산성의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동문을 들어서면 성을 지키던 별장들의 공적비가 자리잡고 있다. 정상에는 팔공산, 고남산과 같이 하늘을 찌를 듯한 중계탑이 자리잡고 있다.

‘김개남동학농민군주둔지’라는 표지목을 지나 동문으로 들어서면 역대산성별장들의 선정비가 나란히 서 있고, 바로 이어 음식점 하나가 자리잡고,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 선국사 방향의 돌계단을 오르는 좌우에는 텅빈 집들이 앙상하게 다가온다. 이곳은 선곡마을인데 옛날 임금에게 진상하는 닭과 산상리 엿으로 이름이 유명했던 곳이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오른다. 좌측은 별장청과 남쪽산성으로 오르는 길이다. 선국사로 가는 길엔 좌측으로 널다란 대나무밭과 과일나무와 뽕나무가 있다. 

▲ 복덕봉     © 새만금일보

  10여분을 오르면 선국사가 마중 나온다. 이 사찰은 원내 산성사였다. 하지만 고려 말에 왜구의 침략과 조선조 임진, 정유 국난이 있을 때마다 전라좌영이 위치한 남원부 산하 6개 군과 현에서 거두어들인 군량미를 저장하고 병력을 배치하면서 나라를 지키는 사찰이라서 이름을 선국사로 개명했고 한다. 석탑과 오랜된 백일홍이 사찰의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

선국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두 개다. 사찰 우측 불상 뒤로 오르거나, 좌측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이 있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낙엽송군락을 지나 급경사의 송림이고, 10분쯤이면 넝굴지대 위의 능선 갈림길이다. 좌측은 남쪽의 복덕봉과 능선을 따라 산성으로 가는 하산로이다. 우측으로 운행하면 노송들이 산불로 고사되어 안타깝다.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진 능선에는 묘소들이 줄지어 있다. 8분쯤이면 흉물스런 송신탑, 산불무인감시초소가 자리잡고 있는 정상의 밀덕봉에 닿는다.
▲ 교룡산 정상 밀덕봉     © 새만금일보

정상에서 조망은 사방이 탁 트여서 좋다. 하산은 서쪽으로는 금강(1.8km)마을을 지나 24번 국도변의 감성으로 간다. 선국사의 지름길은 0.7km이고 남쪽의 복덕봉 방향으로 5분쯤 가다가 중간에서 좌측 안부로 빠지고, 복덕봉은 정상인 밀덕봉에서 남쪽으로 10분쯤이면 도착한다. 텅 빈 시멘트 초소를 지나 삼각점과 묘소가 자리잡고 있다. 남쪽 신정동 방향으로 하산길이 있다. 동능을 따라 내려가면 불타버린 고사목이 즐비하고 잡목들이 무성하다. 10분쯤이면 산성의 복원공사로 길이 막혀있어, 좌측의 정자와 체육시설, 그리고 별장청 안내판을 지나 우측으로 내려가면 대나무밭을 지나 선국사에서 오는 길을 만나고 산성동문 주차장이다

 

▶교통안내

[드라이브]

o 광주-대구고속도로- 남원나들목-남원시가지-만읜의총-국민관광단지

o 전주-남원-만인의총-국민관광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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