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나라 묘성기(猫城記)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8/12/06 [16:58]

고양이 나라 묘성기(猫城記)

새만금일보 | 입력 : 2018/12/06 [16:58]




중국 근.현대 문학의 거인 *라오사(老舍1899-1966)작 묘성기는 1932년 소설로 ‘고양이나라’라는 공상과학 형식을 빌린 풍자소설이다. 이 작품은 저자의 성장과정에 의한 망국의 한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조선조말 탐관오리들을 징치하고 외세를 몰아내고 나라를 바로 세우자는 녹두장군의 척양척왜(斥洋斥倭)제폭구민(除暴救民) 운동인 동학농민혁명과 흡사한 *의화단운동(義和團運動)은 청나라 말기 1899년11월 2일부터 1901년 9월 7일까지의 봉기한 중국 산동성에서 일어난 반 그리스도교 폭동을 계기로 화북 일대에 퍼진 반제국주의 운동으로 일명 북청사변이다. 의화단 진압을 명분으로 서구열강 각국과 일본군대가 북경을 쳐들어왔는데, 이 때 만주족 출신의 군인이었던 라오사의 부친이 전사를 한다. 가장을 잃은 8명의 가족들은 친척도움으로 겨우 연명을 하며 라오사는 어렵게 신식교육을 받게 된다.

그는 이유 없는 홀대와 체벌을 하는 선생들에게 개처럼 맞으면서도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고 비굴하게 용서를 빈다거나 울지 않는 독한 아이로 혹독한 마음의 연단을 받고 성장을 한다. 라오사는 고등사범학교를 나와 국어국문교사로 북경과 텐진의 학교를 전전, 북경교육회,교육부에서 일했지만 올곧은 그의 성품은 구태의연한 교육 관리들과의 조직에서 견뎌나기가 어려웠다. 결국에는 영국교수의 도움으로 1924년 런던대학교 동방 및 아프리카 학부에서 5년간 중국어 교원으로 일을 한다. 런던과 파리를 거쳐 1946년 미국을 둘러보았는데 라오사는 미국에 압도 당 하였으며 서양문물을 접하기 위해 1922년 중국에서 22세 때 세례교인이 된다. 그는 영국의 작가 *디킨스(1812-1870)의 풍자소설에 빠져 소설 쓰기에 몰두를 하였다. 유럽과 미국인들의 인종주의적 오만과 차별로 중국은 후진국 거지의 나라로 취급받아 자괴감에 빠진다. 일본군 침략이 대대적으로 시작된 중국 산동성을 배경으로 *묘성기를 쓰게 된 주 동기가 된다. 묘성기의 줄거리는 우주선을 타고 화성에 갔다가 사고로 고양이 얼굴을 가진 묘인(猫人)의 나라를 탐험하게 된 중국인의 얘기다. 주인공은 프랑스 우주선에 구출되어 귀환하는데 키 작은 난쟁이 나라 왜(倭)인들에게 전멸을 당한다. 동양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웠던 중국이 원숭이만도 못한 고양이나라로 전락하여 소인국 일본에게 망한다는 중국정부의 썩은 정치와 무지와 내분을 고발한 풍자소설이다. 라오사는 불의한 것에서 빠져나오려는 최후의 수단으로 몸부림치다가 1966년 스웨덴 한림문학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묘성기를 수상작으로 하였는데 이 말을 들은 라오사는 8월 24일 호수에 투신자살한다.

그 후 그의 작품은 더욱 빛을 발한지도 모른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요 시인인

*니체(1844~1900)는 ‘글속에 피가 섞여 있지 않으면 문학이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한 작가의 심적 고통과 분노로부터 태어나지 않는 문학은 애당초 사산(死産)된 것이다. 라고 했다. 작가의 마음은 제각각 달라 현실을 미래적, 내세적, 은유적으로 소극적인 측면도 있으나 하나같이 획일적이고 혁명적으로 내 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제식민지 탄압과 수탈과 조국분단으로 우리나라는 엄청난 시련을 지금까지도 받고 있는데, 그 시련과 상처가 크면 영광도 크다고 했다.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한 홍범도,김좌진,안중근 같은 독립투사와 저항시인 *이육사나 *윤동주 같은 민족 시인이 있었기에 오늘날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된 것에 의문의 토를 달 이유가 없으리라. ‘혁명을 내 팽개친 문학은 죽은 것이다. 현실의 잘못을 보고도 방관한다거나 바꾸려는 열정을 잃은 문학은 일본,미국 한국의 문학까지도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라고 한 일본의 저명한 문학 비평가인 *가라타니고진(柄谷行人)의 충격적인 선언이다. 현대 한국문학은 거의가 저급한 애로물이나 상업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불의한 것에는 ‘아니’라고 하고 잘 한 것은 ‘예’라고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문인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한 세기가 다하도록 외세로 인해 반쪽으로 갈라진 조국의 슬픈 현실 앞에서 사회와 나라혁명을 부르짖은 한 세기 전의 묘성기(猫城記)같은 작품이 더욱 돋보인다. 성경에는 구습을 버리고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바라는 것이 혁명이라고 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로마학정에 시달리던 그 때 사도 *바울의 이 같은 말은 결론 적으로 진정한 혁명은 자기 혁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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