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노래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9/02/15 [09:20]

고향의 노래

새만금일보 | 입력 : 2019/02/15 [09:20]



설날 아침이 밝았다. 타향객지에 있던 자녀 손들과 함께 떡국 한 그릇을 또 먹었다.

해가 갈수록 내 머리에는 새 하얀 된서리가 내리고 귀여운 손녀는 어느새 황금돼지 해년(亥年) 한 돌이 되어 키가 훌쩍 커 어른스럽다. 또 한해를 맞아 무정한 세월이 간다 해도 그래도 커가는 어린 후손들이 있어 내가 못다 한 꿈을 이어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마음 든든할 뿐이다. 내 어릴 적 다 쓸어져 가는 이웃집 초가삼간에 살던 죽마고우(竹馬故友)로 부터 전화가 왔다. 실로 반세기 만의 반가운 소식이다. 평소에 연락이 끊겨 어디에 사는지 무얼 하는지도 몰랐던 그 친구! 고향을 잊어버리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는데도 나이가 들수록 고향생각이 새록새록 생각난다며 나를 찾은 것이란다. 가난했던 지난날을 기억조차 하기 싫어 고향을 잊으려 했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철이 든다며 그 옛날 보리피리 불던 고향의 봄이 그리워 더 늙어 죽기 전에 새봄이 오면 꼭 한번 오겠다는 것이다. 정들었던 고향의 옛집들은 헐려 빈터에는 한 여름이면 망초만 우거진 고향마을! 그래도 고향지킴이 내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기뻐하였다. 그 옛날 어릴 적 설날에는 그 친구와 한패가 되어 이집 저집 다니며 어른께 세배를 하면 푸짐한 쑥떡 한 접시를 달콤한 물엿에 찍어 양껏 먹었다. 나는 마음이 답답하거나 삭막할 때면 노을이 아름다운 변산의 짭쪼름한 바닷가를 가끔씩 찾는다. 확 트인 드넓은 바닷가에는 수없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가 만들어낸 고운모래가 깔린 백사장을 무심코 걷노라면 어느새 나는 한 마리의 외로운 물새가 되어 끼욱끼욱 갈매기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 무엇이 내 가슴에 똬리를 틀고 주인노릇을 하는지 가슴 한구석에 맺힌 한을 다 쏟아버려 좋다. 지나온 일 년! 마지막 날을 보내는 섣달그믐날 수평선 너머 피안(彼岸) 저 먼 곳에서는 나를 기다려 주는 이가 없는데도 나는 어쩐지 그곳이 내 본향(本鄕)이상향(理想鄕)인 것처럼 강력한 자석에 이끌리듯 한걸음 한걸음씩 끌려간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금슬금슬 떼 지어 밀려드는 순한 하얀 양떼처럼 잔물결이 밀려온다. 그러다가 무엇에 놀랐는지 성난 파도는 바닷가 바윗돌을 모진 몽두이질로 검게 멍들게 하고 하얀 물거품을 내 뿜으며 저만큼 갔다가 또 다시 밀려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으르렁댄다. 그렇게 수 억겁을 반복을 하는 가운데, 내 한평생 지나온 세월도 파도에 밀려 어느새 저녁노을에 물들고 있다. 곧게 뻗은 새만금 포도에는 이따금씩 차량들이 개미 행렬처럼 자꾸만 밀려온다. 아마도 고향에 홀로계신 부모님을 만나러 선물을 가득 실은 고향열차인가! 언제 불러도 그리운 내 고향! 내가 낳고 커온 고향 땅! 밤이면 뒷동산 늙은 소나무 가지에 초승달은 걸려 있는데 솔부엉이 부엉부엉 밤마슬을 가고, 먼동이 트는 이른 아침이면 시냇물이 돌돌대며 봄이 가까워 오는 정든 고향은 아늑한 어머니 품안 같다.

봄이면 그 친구와 학교당 가는 길에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만발한 도화동(桃花洞)시냇가에서 가재를 잡고 여름이면 멱을 감던 그 길을 그 친구와 함께 고향의 노래를 부르며 걷고 싶다. 선조 때 이고장이 낳은 여류시인 이매창(李梅窓1573-1610)은 홍길동전의 저자 당대의 명사 허균(許筠)과 함께 꽃피는 내 고향 도화동과 우슬재를 넘어 남수동 석재 와우 어수대(御水臺)를 지나며 향기로운 국화주에 띄운 시 한수를 읊었는데, 나당연합군과 마지막 항전을 하다가 패망한 개암사 주류성 백제 풍왕(豊王)을 두고서 거문고 가락에 맞춰 애절한 봄노래를 이렇게 불렀다.

왕(王)재(在) 천년(千年)사(寺) -왕이 있었던 천년 옛 절터에

공(空)여(餘)어(御)수(水)대(臺)-쓸쓸히 어수대만 남았구나

왕(往)사(事)빙(憑)수(誰)문(問)-지난 일을 누구에게 물어 보랴

임(臨)풍(風)환(喚)학(鶴)래(來)-바람결에 학이나 불러 볼거나  -이매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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