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의 『혼불』에 대한 오해와 진실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9/02/18 [16:58]

최명희의 『혼불』에 대한 오해와 진실

새만금일보 | 입력 : 2019/02/18 [16:58]


최명희(1947~1968)의 『혼불』은 7년 2개월에 거쳐 창작된 작품으로서 한국현대문학사에서 가장 특이하면서도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남원에는 ‘혼불문학관’이, 전주에는 ‘최명희문학관’이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있으며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에는 『혼불』의 주제어인 ‘꽃심’이 전주정신으로 지정된 바 있다.
최명희의 『혼불』은 사실 그렇게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다. 두터운 매니아층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이 작품에 대해서 실망하거나 오해하는 이들 또한 없지 않다. 이 작품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첫째 미완성작이라는 점, 둘째 서사 진행이 더디고 곁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점, 셋째 근친상간, 투장, 불륜, 멍석말이, 횡령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 넷째 신화적이거나 비현실적인 현상이나 행위가 자주 제시되고 있다는 점 등일 것이다.
첫째, 이 작품이 전 5부 10권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완성작인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작가가 한창 작품을 창작하던 와중에 병을 얻어 급하게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완성작이라고 해서 이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이 작품은 일반적인 소설처럼 유기적으로 구성된 작품이 아니라, 마치 ‘조각보를 잇대어 만든 이불’처럼, 혹은 겉으로는 허술하게 이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뿌리가 서로 얽혀 있는 잔디(리좀)처럼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이 어느 부분에서 종결되더라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혼불』의 서사 진행이 더디고 곁 이야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혼불』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애초에 이 작품을 통해서 전북의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지역어, 다양하고 특색 있는 향토문화 등을 복원하고자 하는 뜻을 세웠다. 이 작품에는 흡월정, 명혼굿, 연날리기 같은 민속, 음식, 의상, 관혼상제의 자세한 절차, 설화, 야담, 시가 등이 풍부히 담겨 있다. 이와 같은 문화적 요소들은 작품의 내용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전북 지역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전북인의 자존감을 높이는 문학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셋째, 근친상간, 투장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특히 근친상간에 대한 독자들의 거부감이 강하다), 이는 작품 전체의 맥락을 고려하여야 이해되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일제의 잔악한 민족말살정책이 극악을 떨었던 일제강점기 말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남원군 사매면 노봉리에 위치한 매안마을은 양반, 중인, 천민들이 일정한 경계 내에서 살아가며 그 경계를 함부로 넘나들 수 없었던 봉건적이며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 경계는 강모와 강실의 근친상간, 청암부인 묘에 자신의 부모 뼈를 몰래 묻는 백단네의 투장, 그리고 천민 춘복의 양반가 여성 강실의 겁탈과 임신, 강호와 강태의 사회주의 사상, 창씨개명 등으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 간다. 이와 같은 파행적 사건의 배치는 봉건질서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극적인 과정을 매안마을을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창작 의도가 반영된 결과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신화나 전설에 가까운 내용이 중요한 장면마다 눈에 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들은 거북바위, 혼불, 그리고 흡월정이다. 거북바위는 1910년, 국권이 상실된 시기에 청암부인이 거액을 들여 거대한 호수를 만듦으로써 마을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거북 모양의 바위이다. 혼불은 청암부인의 혼이 종가집에서 빠져나오면서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불빛이며, 흡월정은 달의 정기를 빨아들여 효원과 춘복의 아이를 갖고자 하는 소원을 이루어지게 만드는 행위이다. 거북바위, 혼불, 흡월정 등은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가 하나의 생명 체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김승종(전주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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