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이야기 / 유은희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9/03/04 [09:23]

장롱 이야기 / 유은희

새만금일보 | 입력 : 2019/03/04 [09:23]






입주가 한창인 신축아파트
잔디밭 구석에 장롱이 서있다
선반사다리가 20층을 내려오고
이삿짐 차는 저녁을 부리고 빠져나간다
오래된 장롱은 서랍을 무릎처럼 받치고
비스듬히 기울어져 목을 빼고 있다
먼 길 어지럼증인지 팔 한 쪽을 게워낸다
빼곡한 옷들의 무게를 버텨왔을 장롱,
뼛속까지 스며드는 바람을 견뎌보지만
이미 수평을 잃은 지 오래
마디마디 삐걱거린다
휜 옷걸이 하나가 좌우 어깨를 흔들어
불안한 중심을 잡고 있다
엇나간 옷들 붙잡고 털썩
주저앉고 싶은 나날을 견뎌왔을 것이다
뜯기고 흐려진 내력을 덜컹이며
마지못해 따라나섰을까 관처럼 박혀 
서랍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때로는 날 선 모서리로
가족들에게 호통을 날리기도 했지만
넓은 등으로 벽의 균열을 가려야 했을 것이다
지금은 폐기물 서열에서도 밀려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있다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는 수시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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